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 the 하트히터 Dec 28. 2020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다면

feat. 우리는 왜 알아야 하는가

나는 알고 싶다, 알아야 한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가슴을 조여 오는 압박감과 통증, 곧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거의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었다. 내가 처음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것은 5년 전이었다. 건강검진을 받던 중 다른 특이사항은 없냐는 선생님의 말에 내가 겪고 있는 증상에 대해 말씀드렸다. 당시에 나는 폐나 심장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생각했었다(그래서 담배도 끊었다). 하지만 폐나 심장에는 이상이 없었다. 속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내가 공황장애나 우울증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쨋든 그렇게 처음 정신건강의원을 찾았고 그럴 리가 없다는 나의 생각 보란 듯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나 같은 활달하고 건강한 사람이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근거 없는 믿음과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쓸데없는 자존심(나약한 사람만 걸린다던가 나약한 사람으로 보여질까) 때문이었다. 설사 진짜 내가 우울증이 맞다 하더라도 그 정도쯤은 병원이나 약 없이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그릇된 정신승리도 한 몫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갔고 일상과 일이 완전히 무너지고 난 후에야 나는 나의 병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병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살고 싶었다. 그래서 알고 싶어 졌다. 아니, 알아야만 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2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다시 병원을 찾았고 그렇게 우울증과의 길고 지루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상하다는 증상은 많은데,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증상은 하나도 없었다는 뜻이다.

- <블루 드림스>, 8p





정신과 약의 역사와 미래


<블루 드림스>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매력적인 부분은 슬레이터가 조울증 질환에 대한 그녀의 끔찍한 약물치료 이력을 재조명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그녀는 정신과 의사실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주제인 약물을 장기간 복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신체적 부작용을 조명한다. 또한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정신질환 치료제가 없었다면 죽었을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라고, 슬레이터는 자기 자신도 그중 한 명이라고 말한다.

- 워싱턴 포스트


<블루 드림스> 의 저자인 '로렌 슬레이터'는 신경심리학, 정신과 치료, 의료 기술 및 윤리를 연구하는 미국의 심리학자이면서 작가, 칼럼니스트이다. 그녀의 또 다른 이력(?)은 35년간 정신과 약을 복용해온 정신질환 환자라는 것이다. 35년이라니... 정신질환으로 고생한 연수가 누가 더 힘드냐를 가르는 척도는 아니지만 이제 겨우 5년 정도가 된 나의 입장에서는 그저 입이 딱 벌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35년 동안을 그녀가 어떻게(!) 살아올 수 있었는지가 너무 궁금해졌다. 그런 나의 기대감 때문인지 하룻밤을 꼬박 새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이 책을 다 읽고야 말았다.

모든 정신과 약이 그렇다. 약물과 뇌의 복잡한 화합물질에 관해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뿐이다. 우리는 약이 작용하는 방법과 이유를 과거에도 몰랐고 현재까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 <블루 드림스>, 197p


<블루 드림스>는 정신과 약의 부작용을 고발하는 책이 아니다. 게다가 회의적인 시각으로 독자에게 어떤 이분법적인 색안경을 씌우려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대부분은 그렇게 읽을 소지가 있긴 하지만). 주를 이루고 있는 내용이 정신과 약의 부작용에 대한 내용이 많기는 하지만, 이 책은 정신의학과 정신과 약의 창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희망적인 책이다. 물론 저자 스스로가 밝힌 대로 이 책은 편향된 관점에서 쓰였다. 하지만 그녀의 경험은 스스로가 직접 증거가 됨과 동시에 정신건강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에 대해서도 알게 해준다. 이 부분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다. <블루 드림스>는 35년간 약물을 복용해온 저자가 한 사람의 환자로서 진솔한 회고록이자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유용한 가이드북인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약들에는 하나같이 결점이 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무수한 사람이 살 수 있게 도와줬다.

- <블루 드림스>, 451p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다면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어도 정신약리학자들에게 솔직히 묻는다면 아직 어둠 속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인정할 것이다. 여전히 병의 원인은 오리무중이고 연구의 기반이 되는 가설이 전 시대에 존재한 가설보다 특별히 더 타당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블루 드림스>, 37p


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정신과 약의 부작용 사례와 현재 정신의학의 한계점에 대해 알 수 있다. 또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사례들도 살펴볼 수 있다. 플라세보, 사이키델릭(LSD, MDMA 등), 기억에 관여하는 약(PKM제타, ZIP), 심부자극술 같은 것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계와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개인마다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들을 대하는 관점이다. 저자는 우울증이라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과 연구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고려하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의사들이나 약을 못 믿는다거나 현대 정신의학의 한계에 대해 한탄하자는 관점이 아니라 다양한 연구와 사례들을 접함으로써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 5p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각자마다 선택의 기준과 방식이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이라는 것이 '좀 더 나은 선택'이 되어야 함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첫 번째는 제대로 된 정보와 지식의 습득이다. 단순히 과거의 경험을 일반화하거나 (그놈의) 직감만을 내세워 선택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근거로 해야 한다. 특히나 현재와 같이 빠르고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들이 쏟아지는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지식과 정보의 습득하는 데 속도와 양에서 뒤처지면 도태된다. 두 번째는 비판적 사고이다. 좀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는 내가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맥락적 사고이다. 아무리 맞는 지식과 정보라 하더라도 결국 선택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의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노파심에 언급하자면 무조건 정신과 약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부작용은 인지하고 선택하자는 것이다. 부작용을 감안하더라도 꼭 필요하다면 먹어야 한다. 나 또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서 긴 싸움의 토대를 만들었다. 약기운(?)을 통해서 무너진 정신과 육체를 조금씩 잡아갔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부작용은 없었고 비교적 짧은 시간에 약물 치료는 멈추고 지금은 상담치료와 운동(달리기)을 통해서 꾸준히 회복해나가고 있다. 초반의 약물치료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끝으로 우리 주위에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어떤 치료법을 써도 반응하지 않는 우울증 환자가 30퍼센트나 된다고 한다. 가뜩이나 우울증 환자들이 늘어가는 시대인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더욱더 심각한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에게 좀 더 관심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학의 발달이나 약보다도 먼저 따뜻한 관심과 연결일지도 모른다.


극과 극으로 다른 두 가지 견해가 있다는 사실부터가 정신의학이라는 학문의 짧은 역사를 보여준다.
사람과 약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아직 먼 길을 가야 한다.

- <블루 드림스>, 259p





* 참고 : <블루 드림스>, 로렌 슬레이터

매거진의 이전글 천재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