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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 the 하트히터 Sep 12. 2021

신화의 종말

feat. 흔들리는 아메리칸 드림

신화의 본질을 읽다


팽창과 장벽의 신화,
미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신화의 종말>, 그렉 그랜딘


내 삶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판국에 미국이 어디로 가든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이번에 정말 흥미로우면서도 유용한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다. 바로 <신화의 종말>이다. <신화의 종말>은 지금까지 미국의 역사와 행보를 가장 설득력 있고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관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입지와 영향력을 지닌 나라이다. 때문에 그들의 역사와 행보를 통해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를 바라봄으로써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의 앞날 또한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는 통찰력을 배울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국제 정세나 관계에 대해서 잘 모른다. 관련 뉴스는 잘 보지도 않을뿐더러 가끔 인터넷 신문의 헤드라인 기사나 이슈거리 정도 말고는 굳이 찾아서 보는 편도 아니다. 그런 나에게 이러한 책 한 권은 정말 많은 도움을 준다. 실제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호기심 유발과 관심사의 확장으로 이전과는 다른 분야나 관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의 8할 이상은 모두 책 덕분이었다. 게다가 <신화의 종말>은 논픽션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 할 수 있는 '퓰리처 상(2020)'을 수상했다. 검증된 좋은 책 한 권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기에,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흔들리는 아메리칸 드림


영국 정치가 세실 로즈는 "내전을 피하려면 제국 주의자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팽창과 성장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내부적인 불만을 억누를 수 있었는지에 대해 통렬하게 이야기하며, 그랜딘은 구시대적인 제국주의가 불러온 결과를 설명하면서, 위험천만한 현재 상황을 재조명한다. 엄청난 책.
 
- 판카지 미슈라, <분노의 시대> 저자


책을 읽어가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왜 그토록 경찰국가임을 피력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오지랖을 부리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선진국가임에도 시회 복지 수준은 그리 높지 않으며, 자국 내 인종 차별, 폭력성(특히 살인률), 극단 주의 등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의 정신적 뿌리를 가장 본질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는 바로 '프티어 사관'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프티어라는 단어가 개척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주 긍정적인 의미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프티어 사관이란 팽창의 신화이며, 이는 곧 제국주의 신화였다. 미국은 건국 이래 계속해서 앞으로 밀고 나가며 변경(프티어) 안팎의 모든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도덕적 용어로 팽창을 정당화했다. 끊임없이 앞으로 달아나면서 경제 불평등, 인종 차별, 범죄 및 처벌, 폭력 같은 국내의 사회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할 수 있었다. 변경은 미국 사회에 억눌려 있는 열정과 폭발적, 파괴적 성향을 배출할 안전밸브 역할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더 이상 팽창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미국은 신화의 종말을 맞이했다.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지난 전쟁으로 발생할 증오를 흘려보냈고, 그러는 동시에 다음 전쟁을 정당화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 <신화의 종말>, 148p




신화의 종말 이후


팽창으로 문제가 생겼어도 더 큰 팽창이면 다 해결된다. 전쟁이 낳은 트라우마는 다음 전쟁으로 넘길 수 있다. 빈곤은 더욱 성장하며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변경은 닫혔고 안전밸브는 잠겼다. 어떤 메타포를 사용하든, 미국은 신화의 종말 이후를 살고 있다. (...) 팽창이 보호한다고 했던 모든 것은 파괴되었고, 팽창이 파괴한다고 했던 모든 것은 보존되었다. 평화 대신 끝없는 전쟁이 이어졌다. 비판적이고 꿋꿋하고 진보적인 시민 의식이 아니라 논리를 거부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음습한 허무주의가 나타났다.

- <신화의 종말>, 400p


최근 내가 아는 어떤 리더가 이런 말을 했다.

"미국 놈들 자유주의 국가네, 선진국이네,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코로나에 대처하는 거 보니까 우리나라보다 완전 못한 놈들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미국 주식, 자기 계발서 등 미국 관련해서는 무조건 다 안 믿기로 했습니다! 그런 나라는 더 이상 볼 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최고입니다. 대한민국 화이팅!!!"


팬데믹 상황을 맞아 우리나라가 잘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에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된 '맥락'이란 것이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국뽕에만 취해버리면 우리에게 '그다음'이란 없다. 자부심은 중요하지만 자만심에 둘러싸이면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진다. 한 층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게 되는 셈이다. 인간이 가진 최고의 무기 중 하나는 성찰이다. 잘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반성적 사고'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애국심도 좋고 자부심도 좋다. 하지만 본질을 모르거나 회피함으로 인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신화의 종말 이후를 사는 미국의 다음 행보가 무척 궁금해졌다(이것의 책의 힘이다).  그러면서 이 책의 저자가 본인의 나라에 대해 갖고 있는 애국심이 얼마나 큰지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나라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도 결국에는 그것이 더 나은 미국을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과연 우리나라에도 우리의 뿌리와 현재에 대해 이토록 본질적이고 비판적으로 쓰인 책이 있는지 말이다. 물론 있다고 믿고 싶다. 아직 내가 부족한 탓에 발견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신화를 하루속히 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만 마친다.


확장이 더 이상 국가의 미래를 위한 약속이자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없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 매 응아이, 컬럼비아 대학교 역사학 교수,
<해결할 수 없는 난제: 불법 체류자와 현대 미국인의 탄생> 저자





* 참고 : <신화의 종말>, 그렉 그랜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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