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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Aug 15. 2021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어떤 원인도 내가 제공한 것 같지 않은 일이,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찾아왔을 때 절망했다. 길 건너려고 횡단보도 앞에 얌전히 서 있던 아저씨가 신호를 위반하여 달려오던 차를 피하려고 튼 핸들 탓에 변을 당했다던가,

철거 중이던 건물이 달리던 버스를 덮친다든가, 데이트 간다고 차려입은 아가씨 어깨에 새똥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에도 인과관계를 벗어나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존재한다. 내 탓이 아니었기에 내가 손 써 볼 도리조차 없는 일에 휘말리면 자신의 불행을 탓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꽉 막힌 도로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정체상황이 풀리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껏 열심히 달렸는데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 서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주저앉아 일어서고 싶지 않을 것만 같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어느 복권 당첨자가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겠다. 늦잠을 자서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하고 달려 나갔는데 눈앞에서 놓친 버스에 대고 욕까지 했는데 그 차가 철거 중이던 건물에 깔리고 말았을 때, 한적한 길거리에 떨어진 5만 원권을 주웠을 때는 행운에 감사하며 기꺼이 맞아들인다. 전우들이 대부분 전사한 전쟁을 두 번이나 겪으면서도 총알이 쏙쏙 비켜가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히틀러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 그런 일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한다. 마른하늘의 날벼락도 나에게 유리하면 하늘에서 떨어진 돈뭉치가 된다. 그리고 그 모든 행운의 원인은 다 내 덕으로 돌린다. 내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복권을 샀으니까, 내가 마침 오늘은 늦게 일어났기에, 내가 밑을 보고 걸어서, 나는 특별하니까 하고 온갖 유리한 이유를 끌어와 필연으로 만든다.


어쩌면 세상사가 모두 우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스펀지 구멍 같은 우연이 아니라 스펀지 구멍 같은 필연의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연은 넓은 강가에 듬성듬성 놓인 징검다리 같은 것이다. 물에 빠질 것을 염려하여 주저앉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강을 건너려는 사람은 발을 디뎌야 한다.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은 낚싯대를 드리워야 하고 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은 공부를 해야만 한다. 인기 작가가 되고 싶으면 일단 글을 써야 한다. 무사히 강을 건널 수 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대어를 낚을지 피라미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을지 알 수 없다. 시험에 합격할 수도 한 문제 차이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쓰지 않는다면 작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때때로 억울하고 때때로 감사한 말이다. 그러니 대천명에 방점을 찍지 말고 진인사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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