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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Sep 03. 2021

냄새에 대한 단상들

 



 무더위가 절정을 지나 그 기세가 한풀 꺾이자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정체불명의 쿰쿰한 냄새. 집안에서 나는 것인지 바깥에서 나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의심 가는 것을 찾아 직접 맡아보기도 했다. 며칠 동안 범죄현장을 탐색하는 탐정이 되어 내 몸을 비롯, 집안 곳곳에 코를 가져다 대곤 했다. 그러는 사이 그 냄새가 사라진 것인지 적응한 것인지 모르게 의식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사 온 셋집의 나무 싱크대에서 나는 정체불명의 큼큼한 냄새. 몇 날 며칠 문을 열어두어도 숯과 방향제를 넣어보아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시련'의 냄새, '처량함'의 냄새는 한 동안 익숙해지기 힘든 것이었다. 1년이 넘어서도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많이 무뎌졌고 '지금도 충분하다', '셋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사라져 버릴까 두려운 행복이다' 라는 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련은 '만족'을 알게 하는 단어치곤 냄새가 조금 고약했다.


 중학교 2학년 남학생 4명이 모여있는 반, 정체분명 혼합물 냄새.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숨을 머금게 하고 미간이 오므라들게 된다. 나만 알고 저희들은 도무지 모르는,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 그 냄새. 재빨리 미간을 편다. '제발 씻어라' 말하지 않는 것은 냄새로 인해 인간을 혐오하지는 않겠다는 노력이며 배려다. 그렇게 생각하며 참는다. 거품 푼 목욕탕에 4명을 한꺼번에 밀어 넣고 싶다. 제발 알아서 씻고들 오면 좋겠다.


 이 살들이 다 어디서 왔을까 싶게 나는 못 먹는 것이 많다. 대체로 살집이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잘 먹는다는 편견을 깨뜨리는 사람이다. 어릴 적 집안에 삼겹살을 구우면 나는 라면을 끓여 문을 꼭 닫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비린 생선에도 취약하여 매운탕과 회는 손에 대지도 못했다. 국물에 빠진 고기, 순대, 수육 보쌈은 지금도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먹는 것이라 미각의 문제라 여겨왔는데 고기에 취약하고 나물에 환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후각 탓인 것 같다.


 일 년에 두세 번 밖에 보지 못했던 외삼촌은 말 수가 적은 분이셨다. 시커멓게 탄 얼굴에 곰보자국이 있었고 왜소한 체구에 축 늘어지는 파란색 점퍼를 입으셨다. 삼촌은 올 때마다 두 손 가득 과자를 안고 있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맞이하는 엄마와 달리 언니와 나를 양팔에 앉아 올려 볼을 비비곤 하면 까슬까슬한 수염에 얼굴이 아프기도 했지만 삼촌 점퍼에서 나는 비릿한 향을 견디기 힘들어 몸을 뒤로 쑥 빼곤 했다. 고기잡이 배에서 어시장에서 삶에 스민 냄새. 삼촌을 생각하면 비린내도 향기가 되는 것은 그 후로도 시간이 훌쩍 흐르고 나서다.


 땀이 많은 아이는 땀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뙤약볕 아래서도 늘 부지런히 움직인다. 한 번 씻고 나면 몸에 다시 땀이 날까 염려하는 나와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아이가 샤워를 막 하고 나와 로션을 바를 때의 향도 좋지만 신나게 뛰어놀고 땀에 절은 아이의 정수리 냄새도 참 좋다. 내가 그 시큼하지만 달큼한 그곳에 코를 갖다 대면 변태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그냥 흐뭇해져 버린다. 냄새의 이면, 사랑에 심취한 사람만 맡을 수 있는 향이다. 전과 달리 요즘 남편이 자주 씻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차리게 되는데 아, 이건 무슨 뜻일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눈을 감으면 그만이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이어폰으로 차단할 수 있지만 풍겨오는 냄새는 내 힘으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각 중 개인의 의지가 제일 무력해지는 감각이 후각이 아닐까. 내 힘으로 제어하기 꽤 곤란한 영역, 마치 세상 같다. 때로는 향기로웠다가 때로는 혐오스럽고, 원인을 알아도 원인을 몰라도 혼자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의 사회. 자리를 탁탁 털고 일어설 용기도 크게 없고, 그것만 빼면 그럭저럭 다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향초나 향수로 대충 돌려 막으며 또 하루하루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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