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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Sep 16. 2021

함께 하는 상상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기에 일에 지칠 때면 책과 관련된 일을 했다면 이러진 않았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럴 때면 나만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가동하여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소설가는 못 오를 나무 같으니 여행작가를 해볼까. 독서지도나 글쓰기 선생님이 되어 보면 어떨까. 출판사 에디터나 번역가도 좋겠다. 독서모임과 글쓰기 수업이 있는 동네 서점 주인도 딱이겠는걸. 그러나 어떤 다른 선택에도 만족할 수 없었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주인공 노라처럼 나도 금세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만다. 현실 빠진 상상은 동여매지 않은 풍선 같아서 통통 튀다 금세 땅으로 떨어지며 볼품없이 쪼그라들었다.


사람이 간혹 들리는 한적한 교외의 북카페를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상상해 왔다. 손익계산은 말도 못 하게 서툴고 아쉬운 말은 한마디도 하기 싫지만 사람과의 끈은 이어나가고 싶은 나. 그런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경제 활동은 그다지 많지 않다. 손님이 간혹 들리는 돈 안 되는 카페라니, 또 얼마나 상상만으로 그치고 말 일인지. 그런데 얼마 전 친구들과 대화 도중 '아무런 조건 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어' 란 질문을 받았다. 뭐든지 혼자서는 어설픈 셋이지만 함께라면 패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기개로 우리는 구체적인 상상 놀이에 빠졌다.  


책이 가득 꽂혀 있는 마당 넓은 북카페. 찻집을 했던 J가 커피를 내리고 책을 좋아하는 E가 북 큐레이션을 담당하고 빵을 사랑하는 나는 부푼 빵을 오븐에 넣는다. 대학생이 된 J의 딸 N이 와서 무심히 책을 들쳐본다. E의 귀여운 조카들은 마당에서 뛰놀고 책을 읽던 현아가 N과 우연히 인사를 나누고 친구가 된다. 책을 기증한 지인들이 와서 차를 마시고 책장을 들추다 돌아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때때로 시간을 허투루 쓰고선 만족한 웃음을 남기고 가고 나면 카페는 고요해진다. J는 평생 써도 다 못쓸 뜨개실을 꺼내 무언가를 엮고 E는 좋아하는 음악을 무한반복 플레이 해 두고 독서 삼매경이 빠져들겠지. 나는 책 속에 파묻혀 글을 쓰거나 책을 뒤적이다 좋은 글귀를 발견하면 흥분해서 '이것 좀 봐봐' 하며 호들갑을 떨며 훼방을 놓겠지.


아...'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가능성 0%의 상상도 20대 땐 바로 눈앞의 솜사탕 같았지만 가능성 50%의 상상도 40대엔 스르르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다. 설탕처럼 달달하던 상상이 소금처럼 짠짠해져 간다. 그러나, 혼자가 아닌 함께 그리는 상상은 '어쩌면' 이란 희망의 무지개를 눈앞에 펼친다.

아, 상상만으로도 좋은 일.... 함께 무언가를 꿈꾸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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