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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Aug 30. 2021

LOVE

 


늘상 깍지 손을 잡았고 차가 신호에 걸릴 때마다 서로를 바라보았고 가는 곳마다 영역 표시를 하듯 짧은 입맞춤을 나누었다. 누군가를 사랑하여 나 자신이 사라져 버려도 좋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작은 눈빛과 의미 없는 몸짓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게 되던 날들. 그리하여 나를 잃지는 않을까, 이 사랑이 나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가버릴 것만 같아 설레면서도 두렵던 날들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안내 문자 없이 배달된 택배 상자를 보고 어리둥절하여 주인을 잘못 찾아온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세상사가 다 그러했겠지만 유독 사랑은 내게 더 뜬금없었다. 35년 동안 서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 단숨에 무수히 많은 역사를 지닌 지인들과 동등한, 아니 더 높은 마음의 자리에 서 버리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뜬금없이 나타났듯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까 두려웠다.


그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여 가족으로 9년째 함께하고 있지만 '아내가 된 나', '엄마가 된 나'는 여전히 어색하고 기적 같기만 하다. 한 번씩 인상 깊은 구절을 캡처하여 모아둔 연애, 신혼 시절의 카톡 사진을 본다. 호칭이 변하고 오직 둘만 있던 세계에 가족들이 등장한다. 서운함과 신뢰, 실망과 화해가 번갈아가며 쌓여 단단한 지층을 이룬다. '언젠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은 정도만 덜할 뿐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서 불쑥 고개를 쳐들기도 한다. 그러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감정 없던 사람에게 갑자기 애틋함을 느껴 일하러 먼저 나선 남편의 빈자리를 손으로 쓸어보고 허공에 대고 남편을 소리 내어 불러보곤 한다.


'점심은 먹었어? 마음의 힘은 내가 주고 몸의 힘은 밥이 준다~~'

"오빠도 한 때는 시인이었어" 하며 함께 카톡 속 서로의 시들을 열람하는 밤, 둘이서 희희낙낙하는 것을 보고 혜령이가 달려온다. "엄마, 아빠 둘이서만 뭐가 그렇게 재밌는데?" 하며 자신도 보여달라며 핸드폰을 낚아챈다. 그리고 국어책 읽듯 한 자 한 자 큰소리로 읽는다. 분명 은유 가득했던 시였는데. 손발 오그라드는 로맨스 영화의 유치하고 상투적인 대사에 불과하다.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동안 열렬한 사랑의 세레나데들은 염려의 잔소리들로 변해간다. 그렇게 사랑의 시들은 다시 코미디 영화의 대사로 변주되며 한바탕 웃음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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