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밤은 선생이다>
뒷모습마저 사랑스러운 은성에게
은성아, 징검다리처럼 이어지던 휴일들이 이제 다 끝났네. 빨간 글씨 없는 이번 주 달력을 보니 좀 섭섭해도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이 있다. 검고 흰 구름들 사이로 푸른 빛이 또렷이 비치는 하늘을 향하고서 바위 끝에 앉아 두 손 높이 브이자를 그리고 있는 너의 뒷모습 사진을 본다. 저 멀리 굽이굽이 산 능선이 바라다 뵈고 네 바로 옆에는 휜 소나무가 너의 경쾌한 브이자 손가락 각도에 맞춰 굽어있네. 오랜만에 바뀐 너의 카톡 사진을 보니 호연지기가 내에도 전해지는 것 같아. 아픈 다리는 며칠 지나면 낫겠지만 이 멋진 사진은 평생 갈 거야. 다음에 나도 데리고 가줘.
오늘부터 시작하는 10월의 독서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읽어봤어? 새 책에 대한 기대감에 일어나자마자 그 책을 펼쳤어. 읽고 싶던 책을 사두고 잠시 기다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뭔가 읽기도 전에 기대감으로 벌써 보너스 점수를 주고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아니다. 어쩌면 한 챕터만 읽고도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 찍은, 거친 입자의 사진을 보듯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p23)' 그런 책이 될 거란 예감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겠지. 나는 여름 별장에 막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부분을 묘사한 곳이 마음에 쏙 들었어.
『잎사귀 스치는 소리와 매미, 벌레, 새소리가 한데 섞여 머리 위에서 쏟아져내린다. 풀과 잎사귀 냄새를 머금은 약한 바람. 올려다보니 주변보다 훨씬 밝은 파란 하늘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태풍의 기척은 전혀 없었다. 기온은 도쿄보다 10도 가까이 낮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p25』
이 부분을 읽고 너의 사진을 보았기 때문에 다른 일들을 다 제쳐두고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너의 사진을 간단히 묘사해 보니 쉬이 읽고 지나갈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문장도 작가는 얼마나 고심해서 썼을까 싶더라. 네가 저번에 말한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정말 있어야 할 자리에 잘 들어앉아 있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나면 정신 못 차리고 좋아하게 된다‘는 그런 문장은 아마도 이 정도쯤인 걸까.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려나?
'모든 유리창이 열리고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여름 별장이 천천히 호흡을 되찾아간다(p27)'. 오늘 읽은 마지막 부분, 첫 챕터의 끝은 이야기가 천천히 기지개를 켜며 시작되려는 인상적인 발단 부분이었어. '한 장 한 장 아껴서 읽은 게 오랜만'이라는 J의 말에 내 마음이 함께 설렜어.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나름 까다로운 너희들과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한 권의 책이 생기는 것도 기대하게 되거든. 이 한 권의 책이 넷의 마음을 다 사로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는 네가 말 한 그 '미사여구'에 조금 관대한 편인 것 같아. 물론 '미사여구'가 아름답게 꾸민 고운 문장이라는 사전적 뜻으로 쓰일 때만 말이야. 은유 작가의 문장에 의도된 느낌이 많이 나는 비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너와 그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나 사이의 간격은 우리의 성격 차이에서 오는 것 같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더라도 그냥 그 분위기에 취해 버리는 나와 냉철하게 분석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너. 너는 짧고 담백한 글을 선호하고 나는 유려한 문장들이 있는 글에 점수를 후하게 주잖아.
때때로 나를 이해불능의 상태로 이끄는 문장일지라도 저 속에 내가 모르는 어떤 '미(美')가 숨겨져 있진 않을까 하고 고심한다. 특히 문장가로 알려진 사람의 글이라면 말이야. 역시 나는 허영심을 가지고 문학을 대하고 있나 봐. 왜 좋은지 물으면 대답도 잘 못하지만 '페르난도 페소아'나 '마르셀 푸르스트'의 문장들이 좋아. 문학보다 문학적인 것을 좋아하는 하수 같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너는 어떻게 읽을까 무척 궁금해진다. 네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다면 나도 책장에만 꽂혀있는 저 아름다운 책들을 꺼내 함께 읽고 싶다. <일리아스>의 대장정이 끝나면 더 길고 긴 문학의 문장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는 건 어때?
나는 줏대 없는 박쥐처럼 은유의 책을 읽으면 은유처럼, 사노 요코의 책을 읽을 때는 사노 요코처럼 쓰고 싶어 져. 어떤 단기 목표 같은 것이 생겼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그 작가들을 좋아한다고 말해도 존경한다고까지 말하게 되지는 않더라. 좋아하는 단계를 지나 존경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아. '존경하는 사람'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있어? 따라 하기가 아닌 따르고 싶어지는 사람. 글에 담긴 문장을 따라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의 자세마저도 닮고 싶어지는 사람.
요즘 황현산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어. 그분 글을 낭독해 놓은 것들도 출퇴근길 음악처럼 반복 청취 중이야.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울컥울컥하게 되는 글을 만나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았어.
『평소에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이런 모순에 갑자기 의문이 생기는 순간을 나는 문학적 시간이라고 부른다. 문학적 시간은 대부분 개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사회적 주제와 연결될 때 그것은 역사적 시간이 된다. 그것은 또한 미학적 시간이고 은혜의 시간이고 깨우침의 시간이다.
-황현산 <사소한 부탁> 서문』
문학적 감수성이 역사적 감수성으로 확대된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내 세계가 얼마나 좁은 골방이었나를 돌아보게 되었어. 문학적 시간이 은혜의 시간이고 깨우침의 시간이란 것을 내가 지금 이 책들을 통해서 몸으로 깨닫고 있는 기분이 드는 거야. 그리고 '역사적 시간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속에 움트느라 자꾸 눈물이 나. 내가 읽는 글이 한낱 미문으로 밖에 남지 않는다거나 내가 쓰는 글이 나 스스로에게 조차도 깨우침의 시간이 되지 못할까 봐 두려워지는 거야. '이 정도 글만 쓰지 뭐, 그럴 깜냥밖에 되지 않아.' 하는 비굴심을 버리고 내 읽기와 쓰기의 지향점을 더 높이고 싶어. '시간이 많지 않다, 방향을 틀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편지를 보니 정말 나는 '문득 남을 생각하다가 자신을 돌아보는' 남궁인 스타일이 맞나 봐. 내게도 어려운 숙제였는데 편지가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역시나 너와 같은 방향이 아니라 마주보고 서게 되었다. 오늘은 일정이 빡빡하다. 앉아서 책만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분명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아, 밖으로 나가서 어울리길 잘했구나 싶어 질 거야. 그렇지? 시계가 내 마음을 촉박하게 하는군. 수다를 멈추고 주부로 잠깐 돌아가야겠다. 아쉽지만 남은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
추신 1. 황현산 선생님의 글이 내용과 문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글이란 생각이 들어. 네가 말하는'정말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정직한 수사법'을 구사하는 분이 아닐까. 강권하는 마음을 담아, 한 부분을 더 덧붙인다.
『나는 내가 품고 있던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더듬어내어, 합당한 언어와 정직한 수사법으로 그것을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 생각들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할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 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서문』
추신 2. 존경하는 작가가 있다면 꼭 알려주길!
2021. 9.28
오늘 숙제를 다 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승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