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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Jan 30. 2021

마음의 안부는 어떻게 묻는 건가요?

겨울 들어 숨이 시원하게 쉬어지지 않는 답답한 느낌이 계속되고 있었다. 작년에도 이런 증상이 있었다가 곧 사라지곤 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집에선 괜찮다가 일하러 가면 심해지는터라 마스크를 끼고 수업을 해서 그런가 싶었다. 며칠 전 일을 끝내고 나오니 얼굴에 열이 내리지 않았다. 마스크를 벗고 숨을 편히 쉬어보려 했으나 숨쉬기는 더 답답해져 진정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집에 돌아와 쉬면 낫다가 다시 마스크를 끼고 학생들을 대하면 증상이 심해지기를 며칠 째였다. 밥 한 숟가락 넘기는 버겁게 느껴지던 저녁,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겠구나 생각했다. 불길한 생각이 한 번 들고 나니 눈덩이 굴리듯 커져갔다.     


대학 졸업 후 과외부터 시작해서 대형 학원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그러다 공부방을 운영한 지 10년째이니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어느새 20년이 되어간다. 남의 돈 벌어오는 일 중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눈물은 당연했고 웃음은 덤이었다. 지금은 매일 밥 먹고 책 읽고 잠자듯 아이들을 가르치고 씨름할 뿐이다. 나는 상담 전화 한 번에 식은땀이 흐르고 복잡한 회비 계산은 젬병이다. 그런 일은 같이 일하는 언니에게 미룬 지 오래다. 전에 가르치던 국어는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10년째 가르쳐 오는 수학은 무미건조, 곤약 같은 과목이었다. 몇 문제 풀고 나면 나에겐 ‘훌쩍’ 아이들이겐 ‘겨우’인 시간이 매일 갔다.     

 

“숨 쉬는 것이 앉아 있을 때 힘들다면 몸의 이상보다는 신경정신과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요. 일단 몇 가지 검사를 더 해 보고 내일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간곡히 돌려 말하셨지만 단번에 알았다.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이었구나. 안심이 되는 동시에 의아한 생각이 뒤따랐다. 내가 스트레스받을 일이 무엇인가? 생활은 단조로웠고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누구나 하는 미래의 근거 없는 불안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일은 일이니까 마냥 즐거울 순 없는 것 아닌가 하는 대목에서 생각은 잠깐 멈추었다. 그 당연한 것을 당연히 의심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 후 세심히 몸을 관찰해보았다. 초등학생 수업 시간에 학생이 질문을 하면 무거운 돌덩이가 묵직하게 떨어지는 듯한 통증이 명백하였다. 그게 몇 차례 반복 후 안개 덮이듯 조금씩 답답해져 오며 숨이 거칠어졌다.      


10명 중 8명 정도는 공부하는 내용을 다음날이면 반은 잊었다. 어려운 공부뿐만이 아니었다. 월화수는 말하기, 목금은 문법을 공부한다는 것을 몇 달간 해도 ‘오늘은 뭐해요? 문법이요? 말하기요?’ 하고 물어오길 다반사였다. 경험 상 내 말을 한 귀로 흘려듣는 것은 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수학이 정말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거나 말 한마디 붙이고 싶은 습관일 뿐이란 걸 알고 있었다. 집중을 못하고 앉아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너도 힘들구나, 오죽하면 그러고 있을까, 나의 잔소리에 반항하지 않는 것만도 고맙네.’ 하고 살아야지 싶으면서도 마냥 가만 두고 볼 수 없었다. 그것이 내 성정 때문인지 돈 받고 가르치는 직업 상의 의무인 것인지 헷갈렸다. 화내지 않고 단호히 말하기 그런 것을 연습해보기도 했다. 감정을 배제하며 적당히 조율하며 해 온다고 한 것이 딴에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음의 일에 대해 다루는 책들은 마음의 안부를 묻고 살아야 한다고 한결 같이 말했다. 일상의 문제가 없었기에 나도 잘 묻고 있다 생각했다. 진짜 내심의 소리를 들으려고는 했던 것일까? 듣지 않아도 되는 핑계를 계속 대고 있었던 건 아닐까. 펄펄 끓는 주전자를 두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서도 뜨거운 줄 몰랐다. ‘앗 뜨거’ 하고 내려놓으면 그만이었을 텐데. 뜨거운 것에 익숙해져 손이 다 타는 줄 모르고 미련스레 붙잡고 있었다. 진짜 뜨거우면 내려놓는 게 아니라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걸 몰랐다. 몸도 마음도 회복 불가능한 때가 되기 전에 나는 알맞은 때를 찾을 수 있으리라 자만했던 것이다. 머리에 들어온 개념이 가슴까지 다다르지 못했으니 하물며 손과 발로 행해졌을 리 없다.       


이제야 나는 마음의 안부를 묻는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거냐고 빨리 답을 내놓아라 스스로를 재촉했다. 많이 힘들면 약의 도움을 받아보라는 조언에 따라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부대끼면 약보다 책을 먼저 찾았던 습관상 집에 돌아와 이 책 저 책 넘겨다보았다.

     

“제 마음이 너무도 불안하여 편치 않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십시오.”

 괴로워하는 제자에게 스승은 말했다.

“네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너를 편안케 해주겠다.”

 제자는 마음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꽤 흐른 후 제자는 대답했다.

“아무리 찾아도 찾아도 그 마음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대답한다.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노라.”


들여다보지 않고 밖에서 마음을 찾으려고 했을 이 제자가 마침 나와 같았다. 나는 지칠 때면 옛이야기 속 토끼의 꾀처럼 눈이나 마음도 씻어 널려 말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늘 그럴 수 없는 것이 내심 답답했는데 구겨진 마음도 다시 펼 마음도 없는데 씻을 게 따로 있나 생각하니 리셋되는 기분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네 마음을 다 풀어 펼쳐보아라.’는 말을 듣기 전에 며칠 시험을 해 보고 싶었다.


가르치는 것보다 손수 만든 간식을 나눠 먹는 게 내겐 소소한 즐거움이고 보람이었다. 코로나로 일 년 정도 그 일을 하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몇 가지 간식들을 준비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으며 공부를 했더니 막내가 와서 ‘선생님 메로나를 처음 먹어보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한다. 아직 글도 잘 못 읽는 터라 가르치기에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그 말에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다음날은 새콤달콤을 입에 넣어주고 다음날엔 카스타드를 손에 쥐어주었다. 작은 것을 나누는 삼일 동안 꾀병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증상은 완화되었다.   


“일단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분수를 더하고 뺄 수가 있어. 분모의 최소공배수를 먼저 구해야지. 분모에 곱한 수를 분자에도 곱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맞아 맞아, 그렇지. 위에 3을 곱해. 그렇지.”

오늘도 통분을 가르치느라 5학년 아이들과 한참이나 씨름을 했다. 공통분모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구나. 먹는 순간은 화기애애하나 짧게 끝난다. 그래도 여운은 수업 시간 동안에 힘을 발휘했다.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우리도 조만간 통분될 수 있을까 하는 하는 겉멋 든 문장이 떠오르기도 했으니까. 나를 들여다보고 너를 알아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것, 그게 마음공부이고 삶인가 보다. 떡볶이로 통분될 날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하여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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