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새해 첫 장 달력의 숫자도 벌써 1/3을 지나고 있어. 잘 지내고 있지? 매일 독서인증으로 만나고 있는 너는 늘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1월이 되며 너의 스케줄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 일상의 소회들도 궁금하다. 시시콜콜한 감정들과 사소하다 싶을 일상다반사를 나누는 일에는 나도 너도 인색하잖아. 그래서 어떨 때는 무슨 책을 읽고 어느 부분이 좋았다느니 하는 것보다 오늘 점심엔 '콩비지찌개를 늦은 점심으로 먹었어' 라던가 '너무 좋은 건 혼자 감당이 안된다'라고 보내오는 아이유 음반 링크 같은 너의 인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새벽 기상을 핑계로 예쁜 알람시계를 새로이 구입하고서 혼자 즐거웠을 너를 떠올리는 것, 그럼에도 너의 늦은 기상 시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나는 큰 즐거움이야.
나는 인적 드문 호숫가의 잔잔한 물결 같은 새해를 보내고 있어. 새벽에 책 읽고 저녁엔 tv를 보며 집과 일터를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이야. 밖에서 오는 시련도 없고 마음의 부대낌도 없어서 하루가 고요히 흘러가는 게 감사한 날들이네. 12월엔 '왠지 억울해' 하는 근거 없이 무작정 공격해오는 회한에 조금 움츠려 들기도 했는데 그때 울고 났더니 찌꺼기들이 함께 잘 쓸려간 것 같아. 그런 감정들로 내 시간들을 낭비한 것이 다 나쁜 건 아니었구나 싶더라. '외식 제연(外息諸緣) 내심 무천(內心無喘)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 마음의 헐떡임이 없다'는 이 구절이 절벽 아래 꺾을 수 없는 꽃이 아니라 눈앞에 흐드러지게 핀 들꽃같이 느껴진다.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이런 순간이 귀하다는 걸 알기에 감사하게 여기며 오래 이어가고 싶어 져.
바깥세상의 기준에 빗대어보면 무슨 재미로 살까 싶은 심심한 일상이지만 매일 지겹지 않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어. 누가 알아주길 원하는 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 '저는 충분히 즐겁게 잘 살고 있습니다.'하고 소리치고 싶어질 때도 많아. 며칠 전 오랜만에 글을 한 편 완성한 순간도 그렇더라. 기획의도까지 쓰고 목차에 부제목까지 다 정해놓고 쓰기 시작한 글인데도 첫 스타트는 좀 힘들더라고. 내 차가 글쓰기라는 길에 들어서자마자 핸들은 마음대로 돌아가지만 목적한 곳으로 잘 데려다주는 성능 좋은 자율주행차는 아닌 게 분명해. 잠깐 쉬며 목적지를 다시 수정하여 달려도 좋으련만 달려온 게 아까워 후진보단 직진하는 편이야. 한참 달리고 나면 조금 지치기도 해서 이제 그만 달려도 되지 않을까 싶어 져. 문을 열고 나와 바라보는 풍경이 나쁘지 않으면 '에이, 여기도 좋네'하며 시동을 꺼버리고 만다. 그리고 누군가 오길 기다려. 내가 찾은 풍경을 어떻게 볼까 긴장하면서. 괜찮다고 해주면 그때야 '진짜 여기도 괜찮은가' 하며 마음을 놓는 거야.
드라이브를 즐기지 않으면 절대 못해낼 일이다. 차 안에서 혼자 부르는 음악에 영혼이 취하고 낯선 동네의 들판이나 하늘에 마음이 흔들리기에 길을 잃고 불안해도 또 달리고 싶어지는 거야.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일은 잘 안돼도 비명소리가 다르더라고. 조급해하지 말자. 남들에게 하듯이 나 자신도 너그럽게 봐주고 칭찬도 해주자. 그렇게 다짐한다. 항상 부족하게만 보이는 내 글들도 사랑스럽게 보듬어주고 싶어. 그래야 '저도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하고 소리치고 싶어지는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 테니까. 불이 꺼질 즈음 하나씩 던져주는 장작처럼 은은하게 타오르고 싶다. 속에 감춰둔 열기 만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내는 잔불이 되어도 좋겠고.
어젯밤엔 12시가 되어도 들어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는 엄마 마음으로 너의 글을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어. 너는 목적지를 앞에 두고 마음이 놓인 토끼처럼 한숨 잠이 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12시 마감시간에 맞추려 신데렐라처럼 막 달려왔겠지? 너의 드라이브는 어땠어? <어느 날 갑자기 독립>을 쓰며 너도 길을 잃고 헤매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네가 닦아 놓은 그 길을 너무나도 즐겁게 거닐었다. 이번에 쓴 너의 글은 평소 내가 생각하던 너의 문체와 달라서 참 신선했어. 대화 부분이 많아서 장면들이 구체적이며 생생하게 와닿았기 때문에 지루할 틈도 없이 긴 글이 끝나버리더라. 독립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는 재미가 너무 쏠쏠해서 다음 이야기가 벌써 기다려진다. 다음 주엔 신데렐라 하지 말고 부지런한 거북이가 되어주길 바라. 엄마에게 내쫓긴 딸, 보편적이진 않잖아. 네가 엄마 등살에 떠밀려 독립하게 되었을 때, 나야 너에게 간간히 들어왔던 말들이 있었으니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우리 식구들은 '같이 살면 의지되고 더 좋을 텐데 왜 딸을 내 보니지' 하며 의아해했었거든. 이 글을 보여주면 아마 우리 식구들도 그럴 수 있겠다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 같아.
'이해'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추천하고 싶은 책이 한 권 있어. '테드 창'의 단편소설 8편을 엮은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책 띠지에 "독보적인 상상력과 인간애. 페이지를 넘기며 전율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라고 적혀 있거든.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뭐 이런 생각을 하지?" 하고 책 띠지에 인용된 이 말을 내가 계속하면서 감탄하고 있는 거야. 작가와 스토리, 주제, 내용까지 다 제대로 파악되는 게 없어서 나의 녹슨 머리를 무지하게 혹사시킨 책이야. 어려우면 그만 읽으면 되겠지만 이게 또 무척 재밌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좀 더 이해해보고자 머리를 싸잡게 되더라. 모든 소설의 키워드에 이해란 단어를 뺄 수 있을까마는 이 책은 주제 범위를 좁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이해'라는 단어라고 생각해(확신이 없어).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내게 되면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그런 의문이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인 것 같아.
다 신선했지만 제일 의미 있게 다가 온 작품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이해'를 선택하겠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될 뻔한 주인공이 뇌기능을 향상시키는 신약의 실험자로 발탁이 돼. 뇌 손상을 많이 입은 환자일수록 약의 효능이 더욱 커져. 엄청난 지능을 소유하게 된 주인공을 CIA가 추적을 하기 시작해. 향상된 지능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쫓아오지 못하게 완전히 따돌려 버리는 첩보 영화 속 장면들이 소설 속에서 펼쳐지지. CIA의 추적은 이제 눈감고도 따돌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를 위기감에 빠뜨리는 존재가 나타나. 자신보다 조금 일찍 약을 투약한 자. 인류를 위해 지능을 쓰고 싶어 하는 그와 미를 사랑하는 주인공.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목숨을 건 승부가 시작되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 그 사람을 사랑하기에 납득하고 싶어 지잖아. '저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닌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막상 일어난 일보다 더 자신을 괴롭히는 거야. 이해해야 수긍이 되고 용서(적당한 단어는 아닌 것 같지만)를 하고 불신을 지우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테니까. 오늘 읽은 프루스트의 책에 이런 구절이 있더라. '진심으로 괴로워하려면 먼저 그 사람을 완전히 믿어야 한다'. 그 말은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괴로운 일이야, 그래도 믿음을 가져볼 테야? 너 그럴 용기 있어? 하고 따져 묻는 것처럼 들렸어. 결국 상대를 먼저 이해하게 된 주인공은 붕괴되고 말아. 나를 주장하며 너를 이해하는 그런 어정쩡한 상태는 불가능하다고 작가가 단언하지. 뭐지, 이 불경(不敬)하면서도 불경(佛經) 같은 소설? 완전 내 멋대로 해석일 확률이 90%이기에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해.
아침에 생칼국수를 들깻가루 풀어서 끓여먹었어. 보들보들한 면발에 몸도 마음도 보들보들, 국물까지 마시고 나니 몸도 마음도 후끈해지네. 겨울철 따뜻한 칼국수 한 그릇이 지구를 지킨다는 보일러보다 성능이 더 좋네. 너와 따뜻한 밥 한 끼 먹어야 하는데... 언제가 될까? 겨울에 유난히 몸이 약해지는 은성아, 오랜만에 숙제 내줄게. 다음에 만날 때까지 따뜻한 음식 많이 먹고 너를 잘 지켜줘. 글도 한 편 완성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도 완독 한 날이다. 게다가 토요일이잖아~. 편안한 마음으로 즐거운 시간 보내길.
2021. 1.8
그래도 '이해'는 희극 명사라고 생각하는 승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