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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Feb 02. 2022

가방의 역사

쓰담쓰담 글쓰기 -가방-

가방의 역사


입학 전, 가방은 필요 없었다. 엄마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넣을 것이라고는 과자 하나, 색종이 하나. 걱정 뺀 가방은 무척 가벼웠다. 그것도 팽개치고 그냥 놀았다. 그때는 어렸다.


초등학생이 되며 책가방이 생겼다. 알림장, 준비물, 물통과 수저. 엄마는 어린 내가 메기에 제법 무겁다고 걱정하셨지만 이 정도 무게쯤 감당할 수 있었다. 아직은 어렸다.


고등학생이 되며 가방은 돌덩이가 되었다. 도시락 두 개와 혹시나 볼까 하며 들고 갔다가 역시나 보지 않는 책들이 들어 있었다. 옆 친구들도 다 하나씩 돌덩이를 메고 다녔고 꿈의 무게라 하기에 견뎠다. 그때는 젊었다.


청년이 되며 서류가방을 들었다. 가방 속에는 여러 종류의 스트레스가 서류로 둔갑해서 들어 있었다. 얼른 버리고 싶은 보기만 근사한 가방이었다. 그래도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아직은 젊었다.


때때로 여행 가방을 멨다. 어떻게 이 무거운 걸 메고 돌아다니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풍선처럼 가벼웠다. 나를 하늘 위로 뜨게 만들어 주었다. 잠깐 다시 젊어졌다.


아이가 생기고 가방이 커졌다. 내 짐을 하나씩 빼고 네 짐이 담겼다. 처음 들어보는 가방이라 좋았다. 무거웠지만 무겁다고 하려니 미안했다. 이제 젊지는 않았다.


지금 내 가방은 단출하다. 어깨병이 도지고 무거운 걸 들 수가 없다. 화장품, 지갑이 먼저 떠났다. 핸드폰과 일터의 열쇠는 그대로 남았다. 열쇠는 챙겨도 책은 못 본 척할 때가 많다. 아직도 꿈은 생계에 밀린다. 여전히 젊지는 않은데.

 

내 가방에 앞으로 무엇을 담고 무엇을 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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