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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Feb 02. 2022

된장찌개

쓰담쓰담 짧은 글쓰기 - 음식 -

된장찌개


토요일 오후,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엄마 전화기의 벨이 울렸다.

"외숙모가 조개 많이 깠다고 갖고 가란다. 좀 들렀다 가자."

상습정체 구간에 들어서자 차는 달팽이가 되어버렸고 해는 지쳤다는 듯 후딱 모습을 감추었다. 현아는 멀미를 하는지 속이 불편한가 창문을 열었고 혜령이는 언제 도착하냐고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엄마 된장찌개 끓여 먹자"

"그래, 조개 넣고 뽁짝 뽁짝 끓여보자."

시장 안에 있는 외숙모 댁에서 조개를 받고 두부와 호박을 사서 얼른 집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겨울이라 파장 시간이 이른가 시장 골목이 한적했다.

채소만 보이고 두부는 보이지 않았다.

'두부 빠진 된장찌개는 앙꼬 빠진 찐빵이다.'

엄마가 콩나물과 호박을 사는 동안 나는 자진해서 문 열린 두부가게를 찾아 시장 종단을 시작했다.


'어, 이 집도 없네, 아, 이 집도 없네. 또, 없네...'

문 닫힌 가게들 틈에 드문드문 열린 집들을 지나서 이제 그만 포기할까 싶을 때 골목 마지막 집 가판에 보물처럼 장식된 흰 두부 세 모를 발견했다.

'엄마 내가 두부를 샀어' 속으로 의기양양, 100m 달리기 하듯 신나서 달려왔다.


"배가 좀 고프네."

하시는 아빠 말씀에 손놀림이 더 빨라진다.

엄마가 큰 다시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만든다. 물이 끓자 된장을 풀고 조개를 가득 넣는다. 그 사이 나는 호박을 사분원으로 썰고 양파도 사각으로 썰어 냄비에 퐁당. 버섯과 고추를 썰어 그릇에 모은다. 굶주린 배가 생두부도 마다하지 않는다. 두부를 썰며 입안에도 쏙쏙. 옆에서 수저를 놓는 혜령이 입에도 쑥쑥 밀어 넣어준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새 김치를 썰어 두 군데 놓고 밥을 펀다.

혜령이 된장찌개를 먼저 그릇에 옮겨 담고 마지막으로 고추를 넣어 불을 세게 올려 한 소끔 끓인다.

불을 끄고 큰 그릇에 가득 담아내어 놓는다.


김치와 된장찌개 하나만으로 차려낸 밥상.

오직 된장찌개에만 집중할 수 있는 소박한 밥상.

한 냄비 가득 끓인 된장찌개 줄어드는 게 흐뭇한 밥상.


시장이 반찬인 가족들의 늦은 저녁 식사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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