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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Feb 02. 2022

멀리서 봐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쓰담쓰담 짧은 글쓰기 - 바다 -

멀리서 봐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을 앞두고 처음으로 친구들끼리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다.

그때 이미 바다와 사랑에 빠졌다.

부모님 없이 우리끼리만 떠나는 무전여행이라니, 설레어 잠도 오지 않았다.

넷이서 모이면 눈이 번쩍번쩍 빛났다.

식단을 짜고 준비물을 챙기고, 교통편을 알아보는, 번잡한 일들도 신나기만 했다.

 

바닷가 모래밭에 텐트를 치고 쏟아져 내릴 듯 한 별빛 속에서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저 멀리 달그림자 시원한 파도 소리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질 않네.’

나도 모르게 노랫소리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바다는 낭만과 자유라는 예쁜 겉옷을 입고 나를 유혹했다.


바닷가에 도착해 먼저 와 텐트를 치고 있던 친구를 향해 두 손을 힘껏 흔들었다.

감천항이 한눈에 내려다 뵈는 학교에 다녔던 부산 여고생들이 마치 처음 바다를 본 듯 한산도 바다 앞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겉옷은 바닷바람에 하나 둘 벗겨졌다.

텐트 치는 걸 돕는 걸로 시작된 일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고 완성된 텐트에 짐을 내리고 나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버너를 이용한 냄비밥이 이론처럼 잘 될 리도 없었다.

햇빛은 쨍쨍했고  땀이 줄줄 흘렀다.


그러나 제일 큰 고난은 밤이 되자 시작되었다.

자갈 위에 친 텐트에 등이 배겨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비좁은 텐트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결국 새벽녘에 혼자 밖으로 나와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친구들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고독했다.


다음날 '집에 일찍 돌아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다들 동시에 꿀꺽 삼켰을 것이다.

철없던 열입곱의 나는 그런 불편함을 추억으로 여길 만큼 어른스럽지 못했다.

절대 도움을 받지 않는다, 독립적으로 2박 3일을 보낸다는 우리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텐트를 걷고 친구네 할머니 집으로 슬그머니 기어들어갔다.

그렇게 예정된 시간을 채우고 넷은 새까만 까마귀가 되어 돌아왔다.

그때부터 오토캠핑이라는 우아한 용어가 등장하기까지 ‘야영’은 내게 근접 불가한 기피의 단어로 오래 남았다.

 

낭만은 불편함과 등을 맞대고 있고 자유는 고독을 품고 있다.

멀리서 봐야 예쁘다, 바다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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