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지승호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은성아, 너에게도 귀한 손님이 도착했니? '봄바람이 내 속눈썹 끝에 앉아 그네를 탄다'는 네가 만들어낸 이 문장은 말 안되는 문장이 아니라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바람을 일으키는 문장이었어. 어찌나 설레던지. 정말 예쁜 문장이라 밑줄 그어뒀다. 이 문장을 보니 너에게 먼저 봄손님이 도착했구나 싶었어. 며칠 전 격리하던 가족들 모두 일상으로 돌아왔어. 혜령이도 새 학기를 온라인 수업으로 시작했는데 정상 등교를 할 수 있게 되어 학교를 갔어. 일찍 점심을 챙겨 먹고 동네 산책 삼아 출근길에 나섰어. 뚜벅뚜벅 혼자서 걷는 것도, 음악에 온전히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라 마냥 누구에게 인지 모르게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 상쾌하게 느껴지던 공기가 조금 걷기 시작하자 적도 쪽을 향해 걷고 있는 것처럼 더워지기 시작하더라. 털이 들어간 점퍼를 입은 사람은 나뿐인 듯. 행인들 옷차림은 한결 가벼워져있었어. 겉옷을 벗어 손에 들고 봄바람을 즐겼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당 한쪽 천리향 나무에 꽃이 활짝 피어 있었어. 가까이 다가가 있는 힘껏 숨을 들이쉬어 보았어. 봄님이 오신 줄 몰랐는데 어느새 우리 집에도 와 있었어. 자기를 알아보고 환대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던가, 은은한 꽃향기로 나를 반겨주더라.
3월은 끔찍한 악재들 소식으로 시작되었잖아. 바이러스의 창궐, 폭격 소리와 울부짖음, 후퇴하는 민주주의, 걷잡을 수 없는 불길. 기다리던 봄이었기에 더 안타까웠고 내 힘으로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에 몸이 아픈지 마음이 아픈지 모르게 사나운 날들이었어. '전쟁과 불로는 장난치지 말라.'는 속담이 농담처럼 현실 속에서 재현되다니 말이야.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티브이에서 폴란드 국경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는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하여 전쟁영화 같은 장면들을 속속 보도하고 있더라. 11살 소년이 국경을 넘어 혼자 1200km의 피난길을 떠나 친척집에 도착했다는 이야기, 아무도 우리를 돕지 않았기에 우리는 도와야 한다고 말하는 폴란드인의 목소리, 아내, 부모, 자식을 국경까지 바래다주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뒷모습, '단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일 뿐입니다.' 고 말하며 피난길 반대방향의 버스를 타는 조지아인, 매년 20회가 넘는 태풍으로 대피소 시설이 많으니 언제든 피란민들을 받아들이겠다는 필리핀 정부의 발언. 반면 병원과 민간인 마을, 하물며 원전을 향해서도 폭탄을 날리는 러시아군과 이 기회에 국방비를 3%로 올리겠다는 독일의 모습 등을 보면서 온도차가 너무나 커서 절대 서로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구나 싶더라.
누군가를 변화시키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간극을 좁혀보려는 노력은 다소 헛되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아. 너는 너, 나는 나. 평행선이 외로워도 평화로워 보였기도 했고. 마음은 불편했지만 생활은 불편하지 않았기에 사회의 문제에 대체로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는 항상 한 발 늦게 찾아오더라. 뜻과 다르게 흘러가는 선거를 보면서 기후와 바이러스로 지구가 망가져가는 것을 보면서 전쟁이 소설 속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눈앞에서 보면서야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낀다. 내가 침묵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알았어. 연고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집을 내주고, 차를 빌려주고, 식량을 나누어주고, 구호품을 보내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말이야. 바위로 계란 치기 같은 일들이 모여 사람들 마음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더라. 사진가는 사진을 음악가는 음악을, 시인은 시를 자신의 계란으로 삼아 묵묵히 던지고 있었어. 계란 하나가 손마디 하나만큼이라도 누군가의 발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그건 결코 작은 일이라 말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승호 씨가 철학자 강신주를 인터뷰하여 정리한 책,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가 얼마 전에 발간되었어. 친필 싸인이 있는 한정판을 사기 위해 예약까지 해가며 유난을 떨었는데 그렇게 기다린 책이 도착했어.
최악은 세상이 막연히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절망하는 거고,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분노하고 바꿔버리는 거예요. 내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더럽게 똥을 싸질러 놓았는데, 아무도 내 앞에 있는 똥을 치워주지 않아요. 스스로 치워야 돼요.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생각은 때를 놓치게 만들어요. 부모님이 아프다고 하면 오늘 병원에 가는 게 낫지,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처럼 무책임한 태도는 없을 거예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p255
좋아하지만 빚진 것 같은 단어 '실천(實踐)'이란 단어를 오래 들여다본다. 열매 실(實), 밟을 천(踐). 열매를 따기 위해선 창을 들고 두 발로 나무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는 뜻이 담겼네. 말은 희망사항이고 행동은 진행사항이라 사람을 알려면 그의 말을 보지 말고 그의 행동을 봐야 한다고 늘 생각했지만 그 기준에 맞춰 나 자신을 보면 지금껏 말조차도 하지 않은 겁먹은 벙어리였어. 내 앞의 똥을 치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책이 내게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마침 네가 준 세 개의 '책상, 묘비, 연애' 단어 중에 눈에 콕 들어오는 게 있더라. 살아서 내 묘비명을 지어본다는 건 반성문 한 장을 써보는 과정 같아.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쌍둥이 문장과도 같아서 반성문은 계획표가 되기도 하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반성하고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지 한 문장으로 적어보는 것이지. 에밀리 디킨스 '불려 갔음 (called back)', 어니스트 헤밍웨이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 (pardon me for not getting up)' 같은 짧고 유머러스한 묘비명도 좋고 니코스 카잔차키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i hope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김수환 추기경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이 없노라', 윌리엄 예이츠 '차가운 시선을 던져라. 사람에 대해, 죽음에 대해. 말 탄 자여, 지나가라(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 같이 삶도 죽음도 초월한 자유가 느껴지는 진지한 문장도 좋더라.
보부아르는 20대보다 70대에 정치적으로 더욱 활발히 활동했다. 수십 년간 주저해온 끝에 그녀는 여러 조직에 자기 이름을 빌려주었다.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및 알제리 전쟁과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항의했다. 감옥에 수감된 저항 세력과 검열당한 예술가, 쫓겨난 세입자들을 도왔다.
보부아르는 노인 행동주의라는 유구한 전통을 따른 것이었다. 책에서 그토록 대담했던 볼테르는 노년에 이르러서야 그 대담함을 행동으로 옮겼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P468
각자 등불을 들고 타인을 비춰주는 사람들을 강신주 선생님은 '등불의 패밀리'라고 부르고 마구 자랑하고 싶다고 하시네. 강신주 선생님은 <역사 철학, 정치철학>을 집필한다고 몸이 많이 상하셨데. 보부아르와 볼테르, 강신주의 용기를 빌려 내 묘비명 하나를 어설프게 만들어 본다.
'자신의 등불을 밝히기에 늦은 때는 없다'
'등불의 패밀리'라는 말에 가슴이 심하게 뛰더라구. 그 북소리에 따라 목숨을 걸고 썼음에 분명한 강신주 선생님의 두꺼운 책 두 권을 주문했어. 언젠가 너와 같이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봄비가 무척 반가운 일요일 아침이야. 200시간이나 계속되던 동해의 불길을 비가 잡아줄 수 있을까. 기대하며 인터넷 창을 열었어. 산림당국이 아침 9시에 주불이 진화되었다고 발표했네. 세상일이 내 뜻대로 안 되어서 속상했는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소식에 마음이 놓인다. 폴란드의 국경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존 레넌의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책을 읽어야겠어. 강신주 선생님의 목소리가 어두운 곳에 울리는 존 레넌의 노래에 오버랩된다.
세상이 좋아지리라는 막연한 희망도 버려야 해요. 또 세상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비판도 버려야 하고요. 자본과 국가라는 구조적 악은 여전히 강력하게 거대한 요새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어요. 이 요새의 문은 개개인의 노력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죠. 그렇지만,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문을 밀어붙여야 해요. 열리지 않더라도 그 문 앞에서 외쳐야 돼요. '거기 누고 없어요? 저랑 함께 이 문을 열어젖힐 분 없나요?'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p256>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같이 부르자, 평화의 노래를.
사랑하는 은성아, 오늘은 너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기도할게.
추신.
네가 준 단어 선물 고마웠어. 네가 보낸 씨앗을 즐겁게 받아들고 천천히 정성껏 키워볼래.
2022년 3월 13일 생명의 비가 오는 일요일에, 승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