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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Apr 10. 2022

27.꽃 사진 대신 내 이름을 보내준 은성에게

 오사다 히로시 <심호흡의 필요>

은성아, 의령 재래시장에서 '승희네 분식'을 발견하고 어보내 준 사진 참 반갑더라. 나도 간판 이름이 지인과 같으면 '어머'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지만 그냥 지나치거든. '아, 승희다' 하며 웃으며 멈춰 섰을 그 마음이 느껴져서 흐뭇했어. 놀이는 즐거웠어? 나도 지난 일요일, 벚꽃을 원 없이 보고 왔어. 부산에서 진해로 이어지는 벚꽃 가로수 길이 어찌나 예쁘던지. 하늘 한 번, 꽃 세 번, 바다 한 번, 꽃 세 번 번갈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걸음씩 걸을 수 있다는 게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 꽃길은 비무장지대 같아. 국적 불문, 성별 불문, 나이 불문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잖아. 등 뒤에 '착하게 살자'라고 새긴 구절 하나 품고 살 것 같은 외모의 남자가 핸드폰을 높이 쳐들고 꽃 사진을 찍는 모습에도 마음이 설렜어.


이 날 상춘객 인파가 전국 곳곳 유명 벚꽃길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인간은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같은 종류의 센서장치를 달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한정판에 사람이 몰리는 건 백화점뿐만이 아닌가 봐.

아마 사시사철 피어 있는 꽃이라면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이때 호들갑스레 꽃놀이에 동참하지 않았겠지. 삼백예순 날을 기다려왔고 다시 삼백예순 날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잖아. 그렇게 찬란하던 것들도 불과 며칠 사이에 꽃비가 되어 온 땅을 덮은 걸 보니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 탄식했던 시인의 마음을 알 것 같아. 새삼 '무상'이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니 소중하게 바라보자, 끝내 가더라도 오래 슬퍼하지 말자.'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지.


'무상'이란 진리를 꽃일 말고 사람일에도 공평하게 적용할 수 있다면 마음이 좀 덜 무너질까. 주어가 바뀌면 왜 머릿속 진리들은 도무지 실력 발휘를 못하나 몰라. 나는 비슷한 유형도 숫자만 바꾸면 딴 문제라 우기는 공부 못하는 학생 같아. 지난 금요일 고혜령 실종 사건 에피소드가 있었어. 혜령이가 일어나자마자 차를 타고 가다 내리려는데 자신이 발가벗고 있어서 부끄러웠다고 꿈 이야기를 해 주는 거야. 그래서 나도 며칠 전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구절을 외웠지만 깜쪽 같이 잊어버리는 꿈을 꿨었다고 이야기해줬지. 누워서 깔깔거리며 아침을 맞았던 그날. 나는 출근을 해서 쓰던 글 하나를 완성하려고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문득 시계를 보니 혜령이가 도착할 시간이 15분이나 지나있더라고. 친구랑 놀다가 천천히 내려오는가 싶어 학교로 마중을 가는데 운동장에 아이들이 아무도 없는 거야. 선생님께 전화를 해 보니 벌써 아이들이 하교 한 지 30분이 지났다 그러시고.


선생님께 찾아보고 연락을 드리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고.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교통사고나 유괴 같은 무서운 단어들만 떠오르는 거야. 나는 혜령이가 엄마한테 말도 없이 친구 집에 놀러 가거나 했을 것 같지가 않더라고. 동네 가게와 마트까지 한 바퀴 정신없이 돌고, 언니는 언니대로 공부방을 지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언니의 전화를 받은 엄마가 설거지를 하다 말고 아빠랑 택시를 타고 달려오시고. 선생님 도움으로 교내 안내 방송과 학급 단체 문자를 보내고서도 연락이 없어서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해야겠다고 선생님께 말하고 있는데 운동장 끝 계단에서 아이가 친구들과 나오는 게 보이더라.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학급 단톡방에 아이를 찾았고 염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알렸어. 다행이에요, 같은 짧은 답글을 읽었지. '같은 반 한 아이가 친구와 노는라 연락이 안 되어 아이 엄마 걱정을 많이 했구나' 하며 다들 넘어가셨을 거야. 그런 특별한 이슈도 되지 못할 일이 나에게는 부처님, 하느님 다 찾으며 정신없이 왕복 달리기를 몇 번이나 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되었어. 마음이 진정이 되고 나니 흥분해서 어쩔 줄 몰랐던 내가 도장에서 품띠 메고 폼나게 날던 사람이 도둑을 만나 발차기 한 번 못하고 도망쳐온 사람처럼 부끄럽더라. 소중한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느낌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무섭고 기괴했어. 상상하며 글로 써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르더라고. 막상 내 일로 닥치니 '무상하기에 더 아름답다'는 말은 개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평상심을 가진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오던 기도도 다 도장 안에서만 통하는 발차기에 불과했던 거야. 엄마, 딸, 친구, 기억, 사랑, 그 대상이 무엇이든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언젠가 보내야 한다는 것을, 여전히 그것을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던 어느 날이었어.


오사다 히로시의 <심호흡의 필요>란 시집을 옆에 두고 읽고 있어. 일본에서 '길가의 돌' 문학상을 받았다고 책 소개글이 나와 있어. 문학상 이름에 어울리게 일상의 언어로 담백하게 쓴 시들이 마치 햇볕에 몸을 말리고 뽀송뽀송해진 봄날의 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 1부는 <그때일지도 몰라>라는 제목 아래 10개의 시가 있는데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때란 언제일까란 질문에 답을 해나간 연작시야.


그런 어느 '그때'가 너의 진짜 '그때'일까. 아이와 어른은 전혀 다르다. 아이 그대로인 어른 같은 건 있을 수 없고, 어른이기도 한 아이 같은 것도 있을 리 없다. 경계선은 역시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정말이지 언제였을까. 아이였던 네가, "난 이제 아이가 아냐. 이젠 어른이야"하고 분명히 알았던 '그때'가.

심호흡의 필요, <그때일지도 몰라> p12


어때, 재밌는 질문이지? 시인은 '걷기의 즐거움을 스스로 잃어버리고 걷는다는 것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간다는 의미밖에 지니게 되지 않았을 때', '지금보다 더 클 수 없고, 좋든 싫든, 자신에게 꼭 맞는 키 높이밖엔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마음이 아파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처음으로 스스로 알았을 때' 등등의 이야기를 추억의 언어로 변환하여 들려주시는 거야. 1부는 시라고 하기보다 짧은 수필 한 편을 읽는 느낌이더라. 너는 어때? '내가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구나, 이제 어른이구나.' 하고 경계선이 그어지는 사건이 있었어? 조금 더 어른이 되었던 사건이 아니라 생애 단 한 번의 '그때'말이야.


'멀리'라는 곳은, 갈 수는 있어도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곳이다. 어른인 너는, 그걸 잘 알고 있다. 어른인 너는, 이제 아이인 너에게로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리까지 와 버렸기 때문이다.
아이인 너는, 어느 날 문득, 이젠 누구한테서도 "멀리 가면 안 돼"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된 걸 깨달았다. 바로 그때였다. 그때 너는 이제, 한 명의 아이가 아니라, 한 명의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심호흡의 필요 <그때일지도 몰라> p30~31


'멀리 가면 안 돼, 혼자 가면 안 돼' 이 말은 내가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었어.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혼자 있는 건 외톨이가 되는 거란 생각을 했었어. 그때는 친구가 삶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던 시기였잖아. 매점도 독서실도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함께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던 때. 혼자인 아이가 오히려 당당하다고 자유롭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했던 것 같아. 안쓰러워 나라도 같이 있어주고 싶다고 속으로 종종 생각했어. 그러다 대학생이 되어 소설에 흠뻑 빠졌지. 어느 날 국민일보사에서 유명 문학가들을 초청하는 문학강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어. 취미와 시간이 맞는 친구를 찾는 게 쉽지 않았고 나는 혼자 지하철을 탔어. 당시 제일 좋아하던 '김형경 작가'나 전설 같은 '김승옥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


수업이 6시인가, 7시 즈음에 시작했던 것 같아. 일찍 도착해 강의가 시작되길 기다리는데 밖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배가 슬슬 고파오는 거야. 아무리 배가 고파도 혼자서는 서서 먹는 떡볶이 하나도 먹지 못했던 숙맥이었던 나. 식욕을 참지 못하고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시켰어. 혼자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게 누군가의 눈총을 받을 일이 아니건만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후다닥 밥을 먹고 강의실에 혼자 앉았고 문학의 열기에 흠뻑 취해 집으로 돌아왔어. 처음으로 밖에서 혼자 밥숟가락을 뜨던 때, 내가 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을 넘은 건 그때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 이후로 항상 멀리 가고 싶었고 혼자 가고 싶은 사람이 되었어.


일찍 마치는 날이라 조금 놀다가도 되겠다고 스스로 판단했던 혜령이는 오히려 어리둥절했어. 친구가 방송에서 저를 찾는다고 찾아온 것도, 갑자기 엄마가 학교 운동장에 나타나서 울먹이는 것도 놀랐을 거야. '멀리 가면 안 된다, 혼자 가면 안 된다' 열 번을 말하고 족쇄도 하나 채워두었다. 내년에 사기로 한 핸드폰을 뜻하지 않게 저절로 갖게 된 혜령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좋은 아침입니다'는 문자를 보내오면 너무 웃긴 거야. 어른인 척하는 이 꼬마가 언제 어른이 될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나는 언제쯤 아이에게 '멀리 가지 마' 란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될까?


애초에 없었던 것은 사라질 수 없다, '없다'는 말은 '있음'을 전제로 하는 말이라고 하더라. '없음'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것은 '있었음'의 대가를 치르는 것, 사랑이 있기에 이별의 아픔이 있겠지. '무상하기에 더 아름답다'는 말이 '개뿔'은 아니더라. 꽃이 다 져버려 아쉬운 마음까지 어찌해 볼 도리가 아직은 없지만 '더 예쁘게' 보기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사라져 버릴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더 예쁘게 보이더라. 꽃이 다 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보러 가야지.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시 한 구절 떠올리며 가만히 바라봐주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밖에 무엇이 있겠어. 함께 있을 때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은성아, 꽃잎들이 하는 작별 인사 잘 받아주는 '찬란한 슬픔의 봄' 보내자.

2022. 4.10 승희가


PS.

참, 그날 우리 집에 꿈을 꾼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어. 아빠가 엄마 침대에 낯선 남자가 누워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경찰에 신고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에 엄마가 깨웠다는 사실. 꿈, 제법 재밌는 녀석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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