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승희 Jun 13. 2022

올라가고 있는 중일까 내려오고 있는 중일까

와와 소리를 유독 많이 하게 되는 날이 있다.


'와와-'는 나를 감싼 알껍질찌이익하고 금이 한 줄 그어지는 리다. 운명에 의한 금은 상처를 동반할 때가 많지만 '스스로를 경계 밖으로 추방' 하여 얻어진 금은 내가 긋는 것임으로 주로 기쁨을 동반한다.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이 독서와 여행이다. 낯선 세계를 끊임없이 만나게 되는 것이 여행, 익숙하던 것을 낯설게 보게 하 것 독서다. 여행은 몸을 독서는 마음을 고단하게 한 후 안팤으로 더 단단해지도록 한다. 아마도 사람들  둘을 귀히 여기고 즐겨 찾는 이유일 테다.


길은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로 시작되었다. 5분도 안되어 횡격막이 수축 이완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다리에 묵직한 추를 단 듯 걸음이 느려졌다. 다행히도 늘씬한 모델 같은 나무 군락지가 우리를 반겼다. '와아-'첫 탄성이었다. 마음을 주고 나니 오르막의 경사도가 돌연 낮아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나의 오르막 끝에는 '와아-'하는 본능적인 감탄사밖에 내뱉지 못하는 풍경이나 건물들이 나타났다. 배롱나무, 모과나무, 매화나무 정원 맞이했다. 인간이 공들여 빚은 건축도 자연에 버금가는, 아니 오히려 인간이기 만든 것이기에 더 경이롭게 여겨지는 곳들을 지났다. 길은 평탄에게 이어지다 다시 내려가고 또 올라오며 이어졌다. 들꽃들이 나비와 꿀벌의 구애를 받으며 지천으로 펼쳐져 있는 오솔길을 지났다. 기도하는 석상들이, 사유를 자극하는 명구들이 길과 쉼터 곳곳에서 불쑥 나타났다. 이윽고 숭고함에 전율케 한 건축물이 새끼손가락 손톱만 한 크기로 보이는 정상에 섰다.


여름 산이 전시되고 있는 노천 전시장에 관람객을 위한 족욕탕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침없이 먼저 양말을 벗고 탕 속에 들어가 앉기에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신을 벗었다.

"거대한 브로콜리 밭이네. 그라디에이션 좀 봐."

나는 '너무 다'는 상투적인 표현법 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대단한 비유법이다. '멋지군' 속으로 칭찬하며 싱싱한 브로콜리 밑동을 잘라 나무들을 해체하여 입에 한가득 넣는 상상을 했다.

"멋있던데." 이 말은 어떤 경험에 대한 설명으로 요청받아 나온 것이지만, 그 표현의 빈곤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대화 상대가 살면서 겪은 일들을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하게 방해한다. 우리는 자신이 지닌 인상의 외부에 머물면서, 마치 성에가 낀 창문 너머로 그 인상을 바라보듯 한다.

알랭 드 보통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p122

프루스트를 읽어도 '멋있는데' 라거나 '너무 좋은데' 밖에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거다. 마치 성에가 낀 창문 너머로 밖에 인상을 전할 수 밖에 없는...... 어마 어마 한 금액의 복권에 당첨될 정도의 행운이 아니면 자리를 내주지 않을 야무지게 행복한 순간이다. 프루스트가 되려면 다른 곳은 포기하고 한 풍경에 머물러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상념이 스쳤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직 '와아-' 외치게 될 순간이 많이 남았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좋은 것들을 다 못 보고 갈 수 있다는 조급함이, 무엇이 더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잠시 찬물에 담갔을 뿐인데 다시 양말 속으로 들어간 발은 차가운 소프트 아이스크림 한 입 베어 문 듯 부드럽 시원다.


정상에 올랐으니 엄밀히 따지면 일정의 반을 지나 내려가는 여정이다. 바로 옆에 1인용 돗자리 크기 만한 지붕 바닥에 12방위도가 그려진 전망대에 올랐다. 오르는 계단에도 전망대 위에도 난간 하나 없다. 방위표 중앙에 서서 탁 트인 사방을 둘러보았다. 무서움도 잠시. 지금 이 순간, 하늘과 제일 가까이 선 유일한 자라는 인식이 가슴을 들끓게 했다. 서쪽을 향해 섰다. 길을 오르는 길에 숲에서 누군가의 포효 소리를 들었는데 고요한 수목원의 분위기를 해치는 상식적이지 못한 소리반감이 들었다. 아, 아까 그 소리는 이곳에 오른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내지른 호연지기의 탄성이 아닐까. 괜히 그런 생각이 드니 그이의 자유로운 외침이 부러워졌다. 나도 내 안의 뜨거운 것을 뿜어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리라. 고작 '와아-'하는 작은 탄식에 그치고 말리라. 그런 생각들을 하는데 느닷없이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소낙비는 걸음을 재촉했고 눈앞에 나타난 작은 성당에 우리를 잠시 가두었다. 긴 의자 두 개와 벽 앞에 세워진 나무 십자가. 성경을 놓 곳인 듯한 작은 나무 책상과 그 앞의 의자 하나. 위쪽 벽에 뚫린 유리 없는 창, 열린 문만이 조명 역할을 해내는 곳. 비를 피해 함께 들어온 두 팀이 나가고 문을 닫으니 빛이 줄어든 어두운 공간은 더 아늑해졌다. 혼자라도 문을 닫고 어두운 이곳에 마음의 동요 없이 평안히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인생에도 후두둑 후두둑 뜻밖의 소낙비에 놀라고 우거진 숲에서 길을 찾지 못해 두려움이 일 때가 있다. 지도가 있어도 길은 언제나 아리송하고 엉뚱한 샛길에 홀린다. 버팀목이 된다는 건 길을 알려준다거나 우산을 구해다 주는 것이 아니라 옆에 앉아 있거나 같이 길을 찾아 헤매는 존재가 된다는 걸까. 


검은 구름은 저 멀리 물러나고 햇빛이 다시 내리쬐었다. 양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 사진을 찍고 찍히는 동안 구름 흘러가듯 시간도 흘렀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마감 20분 전이다. 서둘러 내려가야 할 판이다. 그래도 내려가는 건 오르는 것보다 심리적 부담이 덜다. 좀 쉽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횡격막 운동 대신 발가락들이 아우성이다. 양말을 뚫고 나올 기세다. 넘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에 시선은 아래로 향하고 속도는 느려진다. 좋았던 만큼 아쉬움도 커진다. 오늘 이 둘은 정비례 직선의 관계식을 갖는다. 이별 앞에서 자꾸 머뭇거리며 미련을 갖게 되는 건 오늘 하루 잘 보냈다는 증거이겠지.


돌아와 사진을 본다. 한 장의 사진 유난히 시선이 오래 머문다.

"지금 너의 인생, 오르막이니?"

이 사진을 찍어주며 친구가 던진 질문이다. 별히 새로운 풍경이 뭐 있을까... 보아왔던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살자 싶었던 걸 보면 내리막길에 들어섰나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눈앞에 뭔가 더 근사한 게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남아 발걸음이 무거워도 더 걸어가 보고 싶 걸 보면 여전히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나 싶기도 하다. 야트막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 있겠지만 궁금하긴 하다.


나는 올라가고 있는 중일까, 내려오고 있는 중까.


2022년 6월 12일 사유원을 다녀와서






매거진의 이전글 포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