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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Mar 02. 2021

나에게 어울리는 옷 한 벌

나답게 산다는 것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는가?


얼마 전 친구가 글을 통해 던진 질문이다. 다음 날 가족들과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실 때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성별도 생김새도 나이도 심지어 목소리까지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면 나를 알아볼 수 있겠어?”

글쎄...... 하며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럼  자신이 그런 난처한 상황에서 나를 꼭 증명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거야?

그건 더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답다’는 것은 무엇이며 ‘나다움’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그 후 몇몇 학생들과 친구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았는데 다들 무척 재밌는 질문이라 했지만 답을 해 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에게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흥미를 주었지만 쉽지만은 않은 이 문제를 잘 풀어보고 싶다는 도전의식이 꿈틀거렸다.   

  

 나는 거울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코로나19로 화장이 무의미해지자 하루에 한 번도 거울을 보지 않는 때가 많다. 거울 없는 방에서 나를 그리라 한다면 질끈 묶은 머리, 안경 쓴 얼굴을 둥글게 그리고 나면 더 이상 그릴 수 있는 디테일한 것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골똘히 물은 적도 정리해 보려 한 적도 없었음이 너무나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수많은 화가의 자화상들도 나는 누구일까,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에 골몰했기에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일까.      


 나답게 살기란 말을 처음 듣는 것도 아니건만 나는 지금껏 이 물음을 너무 무겁고 진지하게만 받아들였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런 추상적인 물음만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근원적인 과정이라 여겼다. 그러나 내가 어떤 순간에 웃는가. 언제 짜증이 나는가. 단 하나의 음식만 일주일 동안 먹어야 한다면 무엇을 먹을까. 신발과 옷, 생필품을 고르는 제1 순위는 뭐지. 100만 원이 공돈으로 생기면 어떻게 처리할까.  친하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 어떤 일에 매력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그만 만나도 되겠다고 판단하는가.  좋아하는 작가를 다섯 명 대고 이유를 분명히 말할 수 있는가. 절대 하면 안 된다는 행동은 무엇이며 다시 하고 싶은 경험은 무엇인가. 고등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무슨 과를 선택할 것인가. 이런 소소한 질문에 하나씩 답을 정리해나가는 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아이스크림은 시원한 게 좋은지 부드러운 게 좋은지 결정하기 쉽지 않고 떡이 좋은지 빵이 좋은지는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는 물음만큼 난감하다. 나는 나를 지금껏 호불호가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좋은 게 좋다 생각하며 마찰을 피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것보다 해야 할 것이나 잘하는 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대충 타협해 왔다. 문학과목을 좋았했으나 시가 좋은지 소설이 좋은지 희곡이 좋은지 깊이 생각지 않았다. 소설도 장편과 단편 중 나에게 맞는게 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못했다.  그것이 나를 잘 들여다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생각하니 나에게 미안해진다.


 몇 년 전 나는 이대로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도 괜찮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자처하고 있었다. 일에 육아에 도대체 안주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음에도 뭔가 준비하고 있지 않는 내가 불안했었던 때였다. 옆에서 같이 공부해보자는 지인의 말에 혹해서 인생에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공부를 시작할 때 친구가 그 일은 너와 어울리지 않는 일 같은데 잘 생각하고 한 것이 맞는지 물어보았다. 시작할 때 항상 의기충천하는 나는 그때는 그 일에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나를 친구는 분명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친구의 완곡한 만류의 표현을 왜 새기지 못했나, 익숙하지 않은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후회하곤 했다. 한 번 시작한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기가 너무 아쉬워 일 년 간 꼬박 고생을 했다.


 나를 아는 것이 나답게 살기의 첫 단추 꿰기다. 내게 맞는 삶을 계획하고 내게 맞는 꿈을 꾸며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려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면 적어도 무엇을 싫어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막연히 느낌 가는 대로 두리뭉실 살아도 좋은 순간들이 있겠지만 때때로 급박한 선택 앞에 실수라는 결과를 내놓을 확률이 높다.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확신해야 남들이 김밥을 먹겠다 할 때 혼자서라도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일 수 있을 테니까. 더불어 조언을 해 주었던 친구처럼 나도 누군가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싶다. 김밥을 좋아하는 친구가 나를 배려해하거나 자신의 바람을 모르고 고민한다면 너는 김밥을 좋아하잖니, 각자 맛있게 먹고 다시 만나자고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림 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손으로 하는 것에 서툴렀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취미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 단정했었다. 아무렇게나 그려도 된다는 생각에 진짜 아무렇게 그렸는데 내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무척 좋았다. 해냈다 하고 속으로 외쳤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또 알아간다. 글, 사진, 그림 등 처한 시기에 맞는 방법을 선택했을 뿐 끊임없이 나를 표현하고 싶고 소통하고 싶었다는 것을. 그림을 그려봐야 알고 사진을 찍어봐야 알고 글을 써봐야 알아진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좋다고 영원히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기에 오히려 오랫동안 꾸준히 즐겨해 오던 것을 소중히 하고 다가오는 것들에 신중하되 겁먹진 않겠다. 나에게 어울리는 옷 한 벌 제대로 입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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