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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Feb 12. 2023

보름달 안에 반달이 있는 것은?



겉모습은 작은 주황색 전구 같이 반질거리며 반짝인다. 자연이 만들어 낸 쨍하고 고운 주황색 물감을 몸에 칠했다. 자르기 전에 해였던 것을 옆으로 눕혀 반으로 자르고 나면 해바라기가 된다. 톡톡 터질듯한 알맹이들이 해바라기꽃의 씨앗들처럼 중심을 향해 가지런히 몸을 돌리고 빼곡히 앉았다. 여름의 뜨거움을 수렴했다가 추워지면 개화하는 겨울 꽃이다. 겨울날, 티브이를 켜고 이불속에 앉아 하나 둘 까먹다 보면 바구니는 어느 사이엔가 텅 비어 있다. 몸에 들어온 주황색 태양이 마음을 데운 덕일까. 몸은 점점 따뜻해져 오고 겨울밤은 이것 먹는 속도처럼 알게 모르게 잔잔히 흘러간다.


홍옥처럼 빼어나게 아름답지도 않고 수박처럼 덩치가 크지도 않기에 별다른 준비 없이도 자신을 쉽게 내어주는 편안한 동네 친구다. 바나나처럼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며 토마토처럼 슴슴하지 않고 재밌다. 집 안에서는 또 어떤가. 아들 낳길 바라던 집의 셋째 딸 같다. 책임감 강한 첫째도 아니고, 경쟁적인 둘째도 아니다. 응석받이 막내는 더더욱 아니다. 외동딸로 곱게 자란 딸기처럼 비싸게 굴지도 않는다. 형제들에 비해 톡 쏘지 않고 나누길 좋아하는 겸손함 덕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

 

입춘과 정월대보름을 지나며 찬기운도 달력 따라 한 고비를 넘겼다. 오랜만에 과일을 사러 마트로 왔다. 그동안 설을 쇠고 사과니 배니 한라봉이니 냉장고를 가득 채운 과일들을 의무적으로 처리하느라 과일 코너로는 발길이 닿질 않았다. 심심하던 차에 아이들과 나누어 먹을 과일이 무엇 있을까 생각하다 만만한 것이 고놈이라 한 박스 사러 나온 참이었다. 설 전에만 해도 진열대 제일 앞에 크기 별로 가득 있던 상자가 과일코너를 한 바퀴 돌아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한쪽에 쌓여있는 상자를 겨우 찾았을 땐 왠지 섭섭함이 밀려왔다. 두 배가 오른 가격에 양은 두 배나 적어졌다. 따뜻해진 날씨만큼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넉넉히 사지 못하고 한 박스만 사들고 온 것을 나누어 주는데 상자 아래쪽에는 상한 것이 하나 둘 눈에 띄었다. 좋은 것을 골라 아이들에게 주었다. 개수를 맞추느라 크기가 작은 것을 고른 것이 내심 미안한데 아이들은 작은 것이 더 맛있다며 고사리 손으로 열심히 까기 시작했다. 크기가 작을수록, 껍질이 얇을수록 더 달고 부드럽다. 수확 후 시간이 지날수록 알맹이와 껍질 사이가 벌어지면 까기도 쉽고 당도도 높아진다고 한다. 아이들 먹는 것을 보니 침이 넘어가기에 물러진 것을 집어 상한 부분을 떼어 내고 남은 것을 한 입에 넣었다. 순하디 순한 달콤함이 저항 없이 입안에 퍼졌다. 완연히 숙성된 단맛이다. 아아, 포동포동 살이 오른 돌배기의 주먹 같은 외면과 달리 내면은 귀가 순해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예순줄에 넘어선 인자한 할머니다.


끝물과일이 제격이라더니, 물러지는 만큼 성숙하는 蜜柑처럼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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