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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Feb 18. 2023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A 씨 있잖아. 며칠 전에 길에서 만났거든. 남편이랑 아이들과 산책 나왔나 봐. 건강이 호전되었나 싶어 너무 반가워서 손을 번쩍 들고 'A 씨~'하고 크게 불렀거든. 그 소리를 들은 A 씨가 소리 나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어. 나는 성큼 다가갔지. 그런데 나를  바로 보지 않고 조금 옆을 곳을 보는 거야. 남편이 A 씨 팔을 잡고 'B 씨, 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인사하더라. 눈이 점점 보이지 않아지고 있었던 거지. 길게 인사를 나누었다간 아직 어린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겠더라. 또 보자는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지나오고 말았어.


얼마 전에 J언니 딸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잖아. 혼자서 키운 착한 딸,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 딱 맞겠더라고. J언니가 평소 사람들한테 보살소리 들었잖아. 세상에 나쁜 놈들 많고 많은데 착하디 착한 사람한테만 자꾸 시련을 주는지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겠더라고. 다 같이 긴 수술 시간 잠 못 이루고 '살려만 주세요' 하고 한 마음으로 기도했을 거야. 수술이 잘 끝나서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잠이 오더라. 그런데 한 고비 넘기고 나니 이제 활짝 꽃피지 못한 청춘 앞에 놓인 시련을 생각하니 어떻게 살아갈까, 또 막막해져.


 어렸을 때 엄마가 예쁘게 입고 학교에 와서 꽃꽂이 해주고 가면 진짜 어깨가 으쓱했지. 친구들이 '너희 엄마니'하고 물어보면 자랑스럽고. 왜 네 친구 중에 늦둥이 있었잖아. 자기 엄마 늙어 보인다고 참관 수업할 때 우리 엄마처럼 화장도 하고 치마 입고 올 거 아니면 오지 말라고 울고 불고 했었다는 그 친구. 엄마가 옷도 잘 입고  젊었을 땐 날씬했잖아. 얼굴 검다고 슈퍼 나갈 때도 화장하고 립스틱 바르고. 손녀랑 밖에 나가면 딸이냐 그러고. 근데 요즘 엄마가 갑자기 훅 늙어 보이는 때가 있더라. 오랜만에 만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나는 바빠서 주말에 엄마랑 시간을 보내기가 힘들어졌는데. 지금 더 많이 추억을 만들고 싶은데...... 내 나이가 드는 것보다 엄마 나이가 들어가는 거, 그거 좀 슬프다.


우리가 매번 밤늦게 시골에 가잖아. 어두운 마을 어귀를 지나 집 마당에 들어서면 개들이 늦은 밤인지도 모르고 시끄럽게 짖어대잖아. 개 짖는 소리에 우리가 온 줄 알고 어머니가 깨서 나오시고.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시며 어서 오라고, 고생했다고, 등을 두드려주시잖아. 시골에 갔는데 개들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왈왈왈 시끄럽게 짖어대는데 문을 열고 나오는 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슬퍼지네.


요즘엔 이상하게 꿈에서 죽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네. 느그 외삼촌도 보이고 할머니도 보이고. 어제는 재작년에 돌아가신 느그 큰아버지가 꿈에 나왔데. 다들 아무 말 없이 그냥 멀리서 보다가 간다. 보고싶은 사람들인데도 가까이 가지도 않고 서로 보고만 있는기라. 깨고 나면 마음이 좀 그렇네. 전에 한 번 큰 일 겪으면서 마음의 준비가 좀 됐는지 죽는 거는 이제 겁이 안 난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니는 언제 슬프노?

그 물음에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아이가 나 대신 말한다.

"내일 태권도 승급심사를 보는 날이잖아. 내일 내가 원하는 장이 안 나올까 봐 좀 슬퍼. 뭐, 그건 슬픈 게 아니라 걱정이라고? 어떻게 다른 건데?"


슬픔을 알지 못하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2000년 전 살았던 황제 철학자가 '자연의 한 과정을 보고서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린아이일 뿐이다'라고 한 말을 떠올린다. 아무리 애써도 스스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두려움을 느끼고 저항한다. 그러다 자연의 일을 받아들이면 맑은 하늘 아래서도 눈물이 난다. 슬픔을 알아버린 자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아아. 맑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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