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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May 18. 2023

그리운 내 친구, 은성에게

'오늘도 많이 덥데'하는 너의 조언에도 긴 팔 셔츠를 입고 집을 나섰어. 요즘엔 반팔을 입고 얇은 외투를 하나 챙겨다니는데 낮에만 걷다보니 며칠 째 외투를 가방에만 넣어가지고 다니더라구. 그거 하나 챙기기도 거추장스럽단 생각에 긴 팔을 입었는데 15분쯤 걷다보니 땀이 나더라. 공기도 얼룩진 안경 쓴 듯 뿌옇고 탁해서 마스크까지 썼더니 마냥 즐거운 산책이라기 보다 살기 위해 걷는 시간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특별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 하나 있었어. 집과 학원의 중간 즈음에 사하 성당이 있거든. 5월이라 성당 담벼락을 따라 빨간 줄장미들을 길게 이어져 있었어. 평소 둘러가는 길들을 걷느라 꽃이 예쁘게 핀 걸 몰랐거든.그걸 어제 우연히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지. 오늘은 그 길을 한 발자욱씩 세면서 지나왔어. ㄱ자로 꺾이는 모퉁이에서 장미행렬이 계속 될까, 이제 끝일까 하며 도는데 15보 정도 장미길이 더 이어진다는 걸 알았던 순간도 기뻤지. 큰 나무가 아니라 도로에 그늘을 많이 만들지 못하지만 그 길을 따라 장미꽃들을 보며 그늘 아래 바짝 붙어 걷는 게 좋았어. 사실 아직 내게 소녀감성이 남아 있는 걸 즐기는 게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해. 매일 빙빙 도는 이 골목에서도 계절에 따라 우리를 미소짖게 하는 무언가들이 소소히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는 게 참 재밌다.



오전엔 엄마와 딸이 뉴욕 거리는 산책하며 사납게 싸우는 이야기를 다룬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다 읽었어. 네가 강추했던 환생을 소재로 한 일본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도 두 편 보았구. 4번째의 환생에서 친구들과의 사이가 멀어져 간다는 것을 알고 쓸쓸히 돌아가는 아사미의 뒷모습에 눈물을 훔쳤다. 아마 월요일부터 읽고 보기 시작한 이 두 작품이 묘하게 크로스오버 되면서 '친구, 산책, 글쓰기'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어. 아, 너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비비언 고닉', 이 작가의 책은 처음인데 3일에 걸쳐 딱 세 번 책을 펼쳤는데 한번에 100페이지씩 정도 쭉쭉 읽었어. 엄마와 딸이 뉴욕거리를 산책하거나 차를 마시며 이웃들과 사랑했던 남자들, 서로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거야. '전에 우리 옆집에 살던 누구누구 엄마 말이야'로 시작하는 몇 번 이나 들었지만 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이야기들을 말이야. 실력이 쟁쟁한 두 맞수가 팽팽히 탁구공을 주고 받는, 말발이라면 지지 않을 딸과 엄마의 캐미가 너무 재밌더라구.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이웃들, 실패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라 우울해 질 법도 한데 T임이 분명한 비비언 고닉의 지적인 문장과 프루스트식의 참신한 비유 덕에 오히려 명쾌하고 유쾌한 느낌이 들게끔 잘 적어 놓았더라.



이 부분 한 번 읽어봐.


우리가 주고받은 게 딱히 대화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목소리를 높여, 속사포처럼 빠르게 쏟아내는 우리에게 대화란 고속으로 움직이는 물체들의 대치 상황 같기도 했다. 우리에게 말이란 주장, 부정, 방어로 이루어져야 했다. 좀더 시급한 관심을 요하는 대결일수록, 그러니까 더 변덕스럽고 휘발적인 주제가 등장할수록, 우리는 더 자극받았고 더 확신으로 불타올랐다. 어떤 문제를 놓고 끝까지, 그 배경까지 낱낱이 분석하며 파고드는 성향은 우리가 가진 이 무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그것을 말로 풀어낼 수 있는 지성을 얼마나 풍부하게 갖추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였다. 서로를 설득해 각자가 생각한 진실을 상대로 하여금 보게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알아서 중심축을 바꾸어주고 우리를 좌절시킨 모든 것은 저 멀리 무해한 공간 속으로 사라져버릴 터였다.

-비비언 고닉 <사나운 애착>


이런 문장을 읽고 어떻게 널 떠올리지 않을 수 있었겠니? 평생 '고속으로 움직이는 물체들의 대치 상황'같은 대화를 나는 왜 즐기지 못할까를 생각했어. 서로의 논리만 다툴 뿐 감정은 다투지 않는다. 이게 왜 나는 잘 안 될까. 내 생각이 부정당하는 것이 내가 부정당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 좀 유치하지 않니? 그걸 알면서도 '너만은' 내 편이, 무조건 내 편이 되었으면 하는 그 바람. 하여튼 난 이렇게 내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그리고 밀어내고. 그게 내 사랑, 아니 나란 사람의 한계 아닐까. 걱정마, 그래도 남편 이외의 사람에겐 나를 다 이해해달라고 떼쓰지 않으니까^^(그게 더 문제인가?)



우리는 생긴 대로, 자기 욕구에 따라 살 뿐이다. 네티는 유혹하고 싶어했고 엄마는 고통받고 싶어했다. 나는 책을 읽고 싶었다. 우리 셋 중 어느 누고도 스스로를 잘 다스리고 절제하여 이상적이고 정상적인 여자의 삶의 성공적으로 추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실 우리 셋 중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을 성취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여자의 삶이라는 개념은 우리를 절대 놓아주지 않고 매년 다달이, 날마다 우리를 더 깊은 갈등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었다. 삶에 대한 확신이 약하면 약할수록 자기 방식이 옳다고 독단을 부리게 된다. 우리 각자는 자기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더 숭고한 목적에 헌신할 목적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서로를 분리시키면서 연민도 함께 거둔다.

-비비언 고닉 <사나운 애착>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꼭 쓰지 않더라도 여성으로서 일과 사랑, 가족의 의미에 대해 진진한 성찰이 담긴 문장들이 너무 많더라. 비비언 고닉, 믿고 읽을 만한 작가를 발견한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다. 넌 이미 읽어봤을 수도 있겠지만 <짝 없는 여자와 도시>란 책을 같이 읽고 싶어. <사나운 애착>과 마찬가지로 뉴욕을 거닐며 사유하고 기록한 글인데 연인, 엄마 뿐 아니라 읽은 책과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하데. 책 소개에 보니 이 책의 주제를 '사랑의 단념과 우정의 예감'이라고 하니 친구들과 꼭 같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있잖아, <브러쉬 업 라이프>의 친구들, 꼭 우리 같더라. 차 타고 가며 '네가 운전을 하다니~~"하면서 놀리고 과자 잔뜩 사서 밤새 수다 떨고, 돈 모아 생일 선물 사고 맛있는 식사도 함께 하고. 드라마 이야기에 푹 빠지고 옛날 노래를 함께 열창할 수 있는 친구들, 친구의 친구까지 다 알아서 마치 내 친구 이야기 듣는 것 같은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참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잘 지켜나가는 것이 재산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 드라마 한 편 한 편이 매회 어찌나 나를 웃게 하고 친구를 그리워하게 하는지. 소소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즐거움, 그걸 더 자주 함께 누리고 싶다.



아, 벌써 일 할 시간이다.

저번 주에 만났는데도 이렇게나 할 이야기길 많다니.

아쉬워, 아쉬워. 그래서 매일 그리워.

만날 때까지 또 잘 먹고 잘 자고 좋은 생각 많이 하기,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내기^^

그럼 남은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


2023년 5월 17일에 승희가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저미는 듯해 그 고통을 감히 느낄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정말 그러네." 나는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제대로 살지도 않았는데. 세월만 가버려."
엄마의 부드러운 얼굴이 결심이라도 선 듯 확고하고 단단해진다. 나를 보더니 강철 같은 목소리로, 이디시어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

-비비언 고닉 <사나운 애착>



ps.붙여넣기 한 것 같은 이런 내용들을 작가들은 왜 책끝부분에 덧붙이는걸까?

알면서도 따라할 수 없는 이 영역에 대해서 또 이야기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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