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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Oct 03. 2024

서툰 위로

황순원의 <모든 영광은>을 읽고

경주 국립 박물관에 들렀다 숙소로 들어가니 어묵탕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C가 벌써 어묵 탕을 끓여놓고 삼각 김밥을 만들고 있었다. 얼음물 한 잔을 들이키니 더위에 놀란 몸도 진정 이 되어 손을 씻고 김밥 만드는 걸 거들었다. 그렇게 앉아 한 숨 돌리는데 그새 C는 새우를 씻고 가지를 잘라 튀김옷을 입히고는 또 다시 불 앞에 서 있었다.

"맥주 한 잔 해서 배가 불러요."

따뜻할 때 어서 먼저 먹으라고 권하는 C. 오후 3시 넘어 마신 맥주 한 캔이 오늘의 첫 끼라 는 C는 정성껏 만든 음식에 정작 자신은 손도 거의 대지 않고 포도와 강냉이를 안주 삼아 맥주만 마셨다. 올해는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모임에 따라오지 않겠다 했다며 '저녁 식사 준비는 제가 할게요.' 하며 장도 다 보아왔다. 사실 아이가 어렸을 때도 C는 숙소를 예약하고 장을 보았고 요리를 했다. 일년에 두어 번 경주로 여행을 와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는 건 그녀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녀가 준비한 어묵탕을 안주 삼아 우리의 밤은 깊어갔다.


우리는 평탄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크고 작은 일들에 부딪혀 왔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눈물 짓게 했던 일들의 매듭은 체념으로 느슨하게 풀려버리거나 단칼에 끊어져 과거분사가 되곤 했다. 가끔 이렇게 술자리가 마련되어 쥐포 씹듯 과거사를 씹어 댈 때면 무공훈장을 단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한두 군데 오작동 하는게 당연하다는 듯 굴었기에 밤을 새도 모자랄 만큼의 이야기 거리가 우리 앞에 있었다.

"내가 아파야만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마시는 게 무섭지 않아요."

C는 여전히 끊어낼 수 없는 밧줄에 묶인 사람처럼 끙끙대고 있었다. 그날은 딸이 동행하지 않아서였을까. 빈속인 탓일까. 술을 많이 마신 C는 한참을 울었다.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하고 계속 되묻는 그녀의 눈빛이 너무 간절해서 마주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C의 잘못은 무엇인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내팽겨 치지 않으려 인내해 온 것 밖에 없었다. 책임감 강하고 착한 사람에게 ‘가족을 등지고 너 살길 찾아라’고 말할 수도, ‘조금 더 참아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위로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할 말을 잃고 마는 짝사랑처럼 어렵기만 했다.


위로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황순원의 <모든 영광은>은 손가락질 한번으로 사람을 죽이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한국 전쟁 당시 자신이 순경에게 밀고한 동료가 죽어버린 것을 직감 한 남자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죽은 동료의 처자식을 보살핀다. 그러나 시간은 기억도 바래게 하는가. 속죄의 대상이었던 동료의 아내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하며 그의 죄책감은 더 깊어만 갔다. 성격이 꽤 팍팍해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 받는 걸 싫어하던 ‘나’는 선술집에서 그와 몇 번 마주치고 작가로서 관심을 가지게 된다. 화자는 자신에게 사연을 털어놓으며 괴로워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숫제 그 여인과 부부가 되어버리면 어떻겠소?'란 말을 하려다 말고 삼켜 버린다. 책을 처음 읽었던 때의 나는 화자의 부부가 되라는 작가의 갑작스런 말에 주인공 사내처럼 당황했던가. 그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이가'하고 써 놓은 흔적이 있었다.

작가는 숫기 없는 친구가 눈이 온 김에 좋아하던 여자의 손을 잡아버렸고, 그 덕분에 결혼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며 자기네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된 건 눈의 공덕이라고 하는친구의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이 후행을 서겠다며 나섰다.


이 사내는 그 여자와 부부가 될 그럴 만한 어떤 계기를 찾고 있다. 그 계기라는 것이 이 사내 에게는 외부에서 오지 않는 한, 그것을 만들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것은 마치 어떤 나무가 적 당한 곳에 가지를 내지 못할 경우에 원예사가 그곳에다 어떤 자극을 줌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과도 같다.(모든 영광은p147-황순원)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착한 이 사내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당위를 만들어 준 것, 상대방의 속내를 헤아려 먼저 ‘네 생각이 옳아’라고 말해주는 것은 최고의 위로였다.

그가 나의 지인이라면 고뇌로 인하여 입까지 돌아간 그에게 뭐라고 말을 건넸을까. 그 때도 말없는 인형처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을 것 같다. 그가 행복할 자격을 얻어도 될까? 그는 스스로 책임져야할 일을 당연히 하고 있을 뿐이야. 나중에 아이들이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그인 걸 알면 어쩌지. 하지만 그가 한 일이 살인이라 할 수 있는가. 그도 시대의 희생양 일 뿐이야. 무엇보다 두 남녀는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어. 그에게 동정이 가지 않는 건 아닌 데 나는 왜 작가처럼 그렇게 명쾌한 결론에 이를 수 없는 것일까. 아마 그의 괴로움보다 내가 한 말에 따를 책임이 더 두려웠던 건지도 모른다.


<모든 영광은>은 1인칭 관찰자시점으로 작가인 ‘나’가 화자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이건 황순원이 직접 현실에서 겪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건 작가가 의도한 소설적 효과임을 모르는 바 아니나 나는 이게 실화라 여겨진다. 단편소설을 주로 써 온 작가의 작품치고 이 소설엔 우연히 만난다는 설정이 많아 오히려 개연성을 해치는 부분들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의 한 인간(p148)’을 위로하기 위해 소설의 형식을 빌려왔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어쩌면 위로의 말을 전해야할 때 나처럼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혜란 임기응변이 아니라 심사숙고에서 나온다. 그래서 소설가의 방식으로 공들여 그를 위로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라 나는 믿고 싶다.


달력을 보니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나 벌써 8월의 마지막 날 밤이다. 아침나절 애달프게 울어대던 매미도 어쩔 수 없이 귀뚜라미에게 바통을 넘겨주는가. 에어컨 바람이 닿질 않아 동남아시아 같던 주방에도 소나기가 지나간 듯 더위가 한 풀 꺾였다. 집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풀벌레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저녁을 준비한다. 저녁 메뉴는 어묵탕이다. 저번 주에 C가 끓여 준 어묵탕 생각이 나서 낮에 장을 보며 어묵을 사 두었다. 뚝배기를 꺼내 찬물에 먼지를 씻어내고 물을 받았다. 코인 육수 두 알을 넣고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어묵을 꺼내 썰다 한 개 손으로 집어 먹었다. 따뜻하지 않아도 기름진 어묵은 입맛을 돋웠다. 멸치 내음이 나며 물이 끓어오르자 어묵을 넣고 가츠오부시 장국, 참치액을 두른 후 소금 한 꼬집을 넣어 주었다. 파도 큼직하게 썰어 듬뿍 넣었다. 어묵은 점점 몸집을 부풀리고 국물은 기름기를 머금을 때 물에 담가 둔 떡을 넣고 센 불로 한소끔 끓이니 어묵탕이 완성되었다. 술을 즐기지 않지만 오늘은 소주잔을 챙겼다.

“C야, 마음이 아픈 것도 몸이 아픈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야. 네가 잘못한 게 없으니 어떤 선택을 하던 네가 옳아.”

지난주에 했어야 하는 말을 늦게라도 전해볼까. 한 잔 술의 힘을 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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