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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Apr 21. 2021

엄마, 우리 부사가 덧붙는 날들 살아가요.

이연의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엄마가 6개월 만에 병원에 다녀오셨다. 암 발견 후 5년째 되던 저번 검진에서 가족들은 완치 판정이 나오리라 기대했다. 매번 정기검진에서 이상 소견 없어서 당연히 축하파티를 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암은 아닌 것 같지만 무언가가 보인다.' 하시며 바로 재검에 들어갔다. 너무 작아 초음파로 구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보이지만 염려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6개월 지나서 다시 보자 하셨다. 그 날이 오늘이었다. 검사 후 잠깐 뒤 부를 테니 조금만 앞에서 기다리라 하고 20여분이 지나도 이름을 부르지 않아 언니는 속이 타 들어갔다했다. 엄마는 겁이 많고 긴장을 하면 혈압도 높아지진다. 입으론 '괜찮다' 하지만 손은 덜덜 떠시는 분이다. 오늘도 넓은 병원에서 길을 잃고 당황한 데다 대기가 길어지자 초초해하며 떨었을 엄마는 집에 돌아와서야 한 숨 푹 주무셨다고 했다.


5년이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정말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가족들도 그렇고 엄마 본인도 병에 대해 많이 무뎌졌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엄마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미칠 것처럼 소중하고 감사했던 마음도 일상의 수레바퀴 속에서 다소 잠잠해졌다. 아빠는 다시 집안일에 소홀해지셨고 자식들도 때때로 투정을 부렸다. 대식구 건사하는 엄마의 일은 휴가도 정년퇴직도 없었다. '암'이란 녀석 때문에 갑작스럽게 낸 병가가 끝나자 다시 업무로 복귀하셨다.


이제는 엄마조차 병원 예약증도 잃어버리고 자식들은 검진 날짜도 잊고 있을 때 나는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란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은 인터넷 세상에서도 제법 유효한 말이었다. 영상으로 만들어진 책 소개가 인상적이었는데 한 두 마디의 댓글로 시작된 인연이 책 읽기로 이어졌다. 내 주관적 필터에 검증되지 않는 책은, 특히 에세이는 잘 읽지 않는 편이라 이 책을 산 것은 나에게 조금 뜻밖의 일이었다. 누군가의 첫 책, 그래서 작가 소개란이 화려하지 않은 책, 인연이 아니면 놓쳤을 그 책이 그렇게 내게로 왔다.


혜령이가 돌이 갓 지났을 무렵, 엄마는 감기 증상처럼 몸이 화끈거려 찾아간 유방 외과 진료실에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의뢰서를 받았다. 그리고 수술, 항암, 방사선, 표적치료... 엄마의 투병을 돕고 대식구 건사하기 위해 가족들이 합의하여 내가 1년 간 일을 쉬며 살림을 맡았다. 남편까지 아홉 식구가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모자와 가발을 함께 고르고 식단을 짜고 병원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같이 다녔다. 방사선 치료실에 아기를 데려 왔다고 이상하게 보시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지만 혼자가 되면 심장이 빨라지는 엄마도 여전히 할머니 품이 최고인 혜령이도 그 둘이 다 불안한 나도 그래서 일 년 간 꼬박 함께 붙어 있었다.


서른 한 번의 방사선 치료 살갗이 다 벗겨져 고생하시고 손발이 저려 밤에 잠을 못 주무셨다. 수술 부위가 화끈거리기라도 하면 다음 검진일까지 그대로 있어도 되나 마음을 졸였다. 손, 발톱이 시꺼멓게 변하고 림프 부종이 올까 수술한 팔을 아끼고. 그렇게 마음 졸이며 흘러가던 그 시간들이 책을 읽자 고스란히 떠올랐다. '엄마, 괜찮나? 견딜만하나?' 물으면 항상 '나는 괜찮다. 걱정마라, 견딜만하다' 하시고 다시 누우시곤 했다. 산에 잘 오르시던 엄마가 동네 한 바퀴도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엄마는 생선살보다 머리 부분이 더 맛있다는 그 말처럼 나는 엄마의 그 말을 믿고 싶어 믿어버렸다.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싶어 의견을 여쭈니 의사 선생님이 수영도 괜찮다 하셨다. 혼자선 못가실 것 같고 언니와 나도 함께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부끄러움 많은 엄마가 큰 결심하고 수영장에 등록했지만 수술 상처를 가리며 옷을 입고 벗고 씻고 하실 때는 혹시 누가 보진 않을까 신경을 많이 쓰셨다. '수술하셨나 봐요?' 속으로 생각만 하고 말면 그만인 것을 꼭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화가 났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새 익숙해져 엄마도 나도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다시 난다는 머리는 5년째에도 듬성듬성 빈 곳이 남아있긴해도 제법 많이 자라 파마도 염색도 하신다. 미용사였던 엄마는 자기 머리도 평생 자신이 파마하고 자르고 다듬으셨다. 기력을 회복하신 후 외출이라도 하려면 그 짧은 머리에 가는 모발을 조금이라도 숨기시려 굵은 머리띠를 착용하시고 한 올 한 올 다듬느라 공을 드리신다. 철마다 하나씩 산 모자들이 집에 가득하지만 살다 보니 모자를 쓰고 외출하기 눈치 보이는 장소도 제법 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내가 몰랐을 엄마를, 표현하지 않으셨기에 애써 외면한 엄마의 여러 마음들을 글을 통해 읽었다. 암과 함께 살아도 '우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 시 세끼 밥 먹고 일하고 티격태격하다가 또 사랑한다고 웃었다. 그러나 또 조금은 달랐다. 엄마는 가진 것을 더 많이 나누려 애썼다. 기회가 되면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해보려 하셨다. 엄마는 그 마음 여전했을 텐데 점점 무뎌져 가는 가족들에게 섭섭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엄마가 너무 간절히 보고싶어졌다.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당장 해가 밝으면 엄마에게 달려가야지 하는 마음에 설렜다. 그렇게 날이 밝았고 우리는 다정하게 산책을 했다. 숲길에 취했고 하늘에 감응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장을 보았다. 하루를 온전히 공유했다. 엄마가 있어서 너무 좋다고 그 넓은 품에 안겨 보았다. 옆에서 함께 하겠다고 손을 잡았다. 사실 매번 하는 일들이었지만 '애틋하게' 라는 부사가 덧붙은 날이었다.


엄마에게 책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이 책을 어떻게 읽으실까. 나보다 더 많이 우시려나. 검사 전 급다이어트 이야기엔 나처럼 격하게 공감하실지도 모르겠다. 글은 참으로 수려하여 나도 이런 내 책 한 권 갖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롯이 내 이야기, 위기 순간이라 더 잘 보이는 내 마음과 내 사람들과 내 삶에 대한 이야기. 글쓰기와 책 읽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첫 책이었다. 쓰고 싶어서 쓸 수밖에 없는 글의 품격은 내 책상 위에 쌓인 눈물, 콧물 범벅의 휴지들로 증명되었다. 는 암과 함께 글 쓰는, 작가의 두 번째, 세 번째 책들을 기다릴 것이다. 작가의 책장에 남겨진 스무 권 남짓의 책 이야기는 어떨까, 작가가 좋아하는 숲 이야기가 가득 담긴 책은 어떨까, 혼자 상상하며 팬을 자처한다. 작가 소개란이 조금씩 풍성해지는 것을 천천히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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