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승희 Aug 17. 2021

한 움큼의 용기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슈크림빵/캐서린 맨스필드/가든파티


하지만 가난한 아랫동네에 사는 짐꾼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들뜬 로라의 마음에는 어둠이 드리워진다. 누군가가 불행을 겪고 있는데 파티를 예정대로 열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로라의 마음에 싹터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니와 엄마는 그런 로라의 생각이 어처구니없다며 비웃는다. 그리고 예정대로 열린 가든파티가 성공적으로 끝이 났을 때, 엄마는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딸에게 파티에 쓰고 남은 음식들을 남편을 읽은 "불쌍한" 여자에게 가져다주라고 말한다. 로라는 음식을 남은 음식을 가져다 두는 행위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엄마가 시키는 대로 음식을 갖고 가난한 동네에 조문을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은 이의 얼굴을 보게 된다.

때로는 우리를 압도하고, 송두리째 다른 사람으로 변모시키기까지 하는데도 타인에게는 결코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감정들에 대해서. 그런 감정은 밤의 들판에 버려진 아이처럼 인간을 서럽게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우리에게 한밤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가르쳐주는 소설들이 있는 한, 우리는 밤이 아무리 깊어도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

'다정한 매일매일' p93 p94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행복'이 삶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목표는 달성 가능한가 한 번씩 의문이 든다. '나'의 행복, '우리'의 행복, '인류'의 행복. 소유격의 주체가 몇 인칭인지에 따라, 단수인지 복수인지에 따라 목표 달성의 불가가 달라진다. 타인의 고통에 이웃의 불행에 민감해지면 나의 안위에 감사해하는 '행복'이란 감정에 푹 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눈먼 자들의 도시' 마지막 장을 덮었다. 8월의 반을 주제 사라마구에게 마구 휘둘렸다.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도시에 혼자 눈이 멀지 않은 여자가 있다. 그녀는 눈 먼 남편을 격리시키는 앰뷸런스에 눈이 먼 척하고 올라탄다. 모두가 눈이 먼 세상에서 혼자 눈 뜬 그녀는 과연 행복할까. 그래도 눈이 먼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하고 책의 전반부까지는 생각했다.


그녀는 발 딛일 틈 없이 가득한 인분을 봐야 했고 사람의 산무덤을 봐야 했으며 농락당하는 여자들을, 썩어가는 상처를, 동물이 되어가는 인간들을 보아야 했다. 눈먼 자들의 식량과 안전을 책임져야 했으며 삽으로 사람을 묻어야 했으며 사람을 죽여야 했다. 자신도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끝까지 스스로 눈을 감지는 않았다. 눈 뜬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어깨가 내려앉는 고통을 감수하며 짊어졌다.


 그 희생의 댓가는 인간다움의 회복이었다. 많은 사람이 죽어갔지만 연대한 사람들이 더 오래 견뎠다. 희망을 놓지 않고 손을 잡은 사람들은 정화의 빗줄기에 몸을 씻었고 다시 사랑을 고백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 안 보이는 척 살아가는 사람, 보고 아파만 하는 사람, 아픔을 나누어지려는 사람. 어떤 사람이 되어야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 들의 가든파티에서 뛰쳐나와 앰뷸런스에 탈 자신이 없다. 다만 이런 소설들을 통해 '서러움'을 아는 인간이기를, 그리하여 밤길을 헤쳐나갈 한 움큼의 용기를 마련할 수 있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스다 미라 '주말엔 숲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