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섬은 내가 태어난 섬에서도 배를 타고 한 시간 가량 들어가야 하는 외진 섬이었다. 어릴 적 그 섬은 내게 신비한 신화의 세계 같은 곳이었다. 나를 비롯한 동네 꼬맹이들은 어른들의 입에서 전해 들은 사랑섬에 관한 이야기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사랑섬에 대한 풍문은 그 이름에서 풍겨 나듯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어여쁜 딸을 사랑하게 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아야 했던 백발노인의 전설이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목을 매면 후생에 그 사랑을 맺어준다는 고목나무 전령의 이야기도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한 처녀가 사랑했던 남자에게 버림받자 사랑섬에 간다는 편지 한 장 남겨두고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부랴부랴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 나섰지만 돌아온 건 신발 두 짝이었다. 그 섬은 내게 전설적 공간이자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생각만으로도 식은땀이 배어져 나오는 으스스한 곳이 되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을 맺어준다는 섬, 사랑섬. 내가 그 섬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브라운관 화면을 이리저리 돌리다 아찔한 바위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 영상에 눈이 멎었다. 사랑섬의 옥녀봉이었다. 어릴 적 수도 없이 들었던 사랑섬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시 살아났다. 간단히 짐을 꾸렸다. 집 앞 산책도 꺼리는 내가 여행이라니, 대단한 객기의 발동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랑섬은 낚시와 산행으로 제법 유명해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손이 많이 타지 않은 외진 곳이었다. 선착장을 벗어나니 사람 사는 동네가 맞나 싶게 조용했다. 동네 민박집에 짐을 내리고 '사랑'나무를 찾으러 나섰다. 하지만 그것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마을 어귀에서 발견한 큰 느티나무는 밑동이 굵고 잎도 풍성했다. 허나 사람들 많이 다니는 마을 입구에서 목을 매다니, 이 나무는 아니다 싶었다. 뒷산 입구의 고목나무에도 눈길이 갔지만 사랑을 이루어 준다는 나무가 으레 풍길 듯한 크고 정갈한 나무는 아니었다. 뭔가에 굶주린 듯 축 늘어진 보잘것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나무의 영험함을 믿고 목을 맺을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바위 위에서 몸을 던졌을지 모르는 그 여자는 다시 태어났을까.
소문 속 '사랑'나무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은 어찌 된 영문인지 불편한 진실처럼 외면하고 싶어 졌다. 더위에 지친 발걸음은 힘 없이 마을 뒤편 언덕을 향했다. 넓은 억새밭이 펼쳐졌다. 한쪽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디선가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광활한 우주 공간에 저 아득한 뱃고동 소리만이 내 곁에 머물렀다. 외롭다기보다는 아주 익숙하고 평안했다. 우울하면서도 아름다운 쳇 베이커의 음악이 마음 어딘가에 떠다니고 있었다. 뱃고동 소리가 그의 트럼펫 소리와 하나가 되었다.
위의 글은 대학교 3학년 때 쓴 소설의 일부분이다. 내게도 신화와 같던 '사랑섬'에 대한 이미지를 소설에 재현하며 상상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당시 한동안 애태우던 짝사랑이 스스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요즘 학생들은 남녀 사이가 참 스스럼없이 친한 것을 보면 부럽다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여중, 여고를 나와 '남자'는 가까이하고 싶지만 조금은 어려운 당신, 같은 느낌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수강신청을 하러 간 날 도우미로 나선 과선배의 사소한 친절에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외모에 콤플렉스가 많았던 내게 '사랑'은 하이틴 로맨스 소설에서만 접할 수 있는 동경의 대상이었지 실체는 아니었다.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수 없으리란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어쩌면'이라는 희망에 목마르던 이십 대. 긴 짝사랑에 지칠 때 즈음 쓴 소설이었다. 마음의 상처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사랑을 찾아 사랑도로 떠나는 이야기였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기에 사랑을 확신할 수 없었던 그 여인은 바로 나다. 소설의 결말을 두고 많이 망설였다. 소설이 해피엔딩이면 격이 떨어진다는 나름의 소신에 따를 것인가. 순수한 남자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들이며 소설 속에서 대리만족을 할 것인가.
갑자기 이 습작 소설이 떠오른 것은 벼르고 벼르던 사량도 여행이 다음 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소설 속 배경인 '사랑도'는 통영시 사량면 소재의 섬이다. 한국의 100대 명산 중 사량도의 지리산이 있어 연간 10만 명이나 되는 등산객이 이 섬을 찾는다고 한다. 엄마는 여름밤이면 나와 동생을 데리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 다이어트가 필요한 남매를 위해서였다. 억지로 끌려 나온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지 엄마는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각 지방의 전설들을 하나 둘 꺼내셨다. 혜령이가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요구할 때면 준비된 레퍼토리가 몇 개 없어 나는 좀 곤란해지곤 하는데 그것에 비하면 엄마의 이야기보따리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특히 엄마가 잠시 살았다던 통영 사량섬에서 전해오는 옥녀봉 이야기는 내가 특히 좋아하는 이야기였다. 엄마가 한 다리 건너 전해 들은 딴 고장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에게 엄마가 살던 곳의 이야기라는 것 만으로 그 전설은 내게 사실이 되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사랑도'를 검색했으나 자료가 없었다. 섬의 이름이 사랑섬이 아닌 사량섬蛇梁島라는 것들이 그때에야 알았다. 사랑섬과 사량섬은 점 하나 차이이만 님과 남 같기만 했다. 왜 사랑섬이 아니라 사량섬이냐고 따지듯 물었을 때, 엄마는 '사량도가 왜 사랑 도니?'라고 되물으신 걸 보면 섬 이름을 착각한 것은 나 혼자였던 것이다. 섬 이름 조차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렸던 것이 틀림없다. 속았다는 느낌은 끝나지 않았다. 옥녀봉 전설은 엄마가 자주 들려주던 이야기와 전혀 달랐다. 딸을 구하려다 바위 절벽에서 떨어져 버린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 이야기는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가 어린 우리를 위해 각색한 옥녀봉 이야기를 줄기차게 들으며 사랑과 섬에 대한 환상을 키운 셈이었다.
엄마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언니 둘과 오빠와 살았다. 통영에서 태어나 살던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자 사량도에 사는 고모댁으로 보내지셨다. 이미 나이 차가 많이 났던 큰 이모는 부산에서 결혼하여 살고 계셨고 둘째 이모는 마산의 다른 친척에게 맡겨졌다가 서울로 가게 되셨다. 한참 뒤 서울서 이모부를 만난 이모는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 통영을 다 뒤진 후 우여곡절 끝에 부산에 자리 잡은 가족들과 다시 만났을 때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산가족 상봉을 떠올리게 했다. 공부를 시켜주겠다는 말을 믿고 따라간 그 섬에서 엄마는 열다섯 살 무렵부터 2년 정도 그곳에서 사셨다 한다.
학교가 걸어서 두 시간이나 걸리는 마을에 덜렁 남겨진 엄마는 공부는커녕 집안일에 밭일까지 해 가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유람선 선장이셨던 고모부를 따라 고모네 식구들은 한 번씩 통영으로 나가 며칠씩 집을 비웠다. 평소에는 외로운 줄 모르다가 식구들이 모두 뭍으로 나가고 혼자서 빈 집을 지키는 신세가 되면 집성촌 동네라고는 해도 시골집이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혼자 빈 집을 지키고 있는데 마당에서 조심스레 엄마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섬뜩한 마음에 빼꼼히 문을 열고 보니 마당 앞 쪽 옥수수 밭에서 웬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다시 문을 닫고 꼼짝 않고 있으니 발걸음 소리가 조심조심 문 쪽으로 가까워져 오며 또 엄마를 불렀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외삼촌이 마당에서 "금이야"하고 엄마 이름을 부르며 손짓하고 서 계셨단다.
혹시나 무언가 훔쳐가기라도 했다는 오해를 사면 안 되니 집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겠다는 외삼촌은 날이 샐 때까지 우거진 가지 넝쿨과 옥수수 대에 의지해 잠깐 눈을 부쳤다. 떨리는 마음으로 짐을 싸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을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날 그 마당에 보름달이라도 훤하니 떴을까. 죄도 없는 두 사람은 마치 죄인처럼 그 섬을 몰래 빠져나와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그날 이후로 엄마가 다시 사량도를 찾은 것은 30년이 지난 뒤였다. 오십이 넘어 산악회 모임에서 부부동반으로 옥녀봉에 다녀오셨다. 잊고 살던 그 섬이 엄마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한 번씩 엄마는 사량섬에 대한 향수를 은근히 내비치셨다. 옥녀봉 산행이 아니라 전에 살던 고모네 집 마을을 찾아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고단했을 그 시절을 그리움으로 승화시킨 것은 무엇일까. 세월의 힘인가. 외삼촌을 향한 사랑인가. 신기루처럼 느껴지던 그때를 확인해 보고 싶으신 걸까.
남편은 엄마의 사량도 이야기를 듣고서는 섬 여행을 적극 추진했다. 어릴 때 품었던 환상 속, 사랑 섬의 실체를 만날 날이 며칠 후로 다가왔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그 마을을, 엄마와 삼촌이 마주 섰던 그 마당을 찾을 수 있을까. 로프와 철계단을 이용해 오르는 공포의 옥녀봉 절벽길을 걷는 느낌은 어떨까. 사랑섬의 느티나무와 고목나무가 눈앞에 있다거나 쳇 베이커의 트럼펫 소리가 바다에서 들려오기라도 하면 어떤 느낌일까. 소설 원작의 영화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 든다. 기대감과 실망할까 미리 염려하는 두 마음이 공존한다. 소설에 욕심이 있던 그 시절 나는 '사랑의 대리만족' 보다는 '소설의 품격'을 선택했다. 사랑을 해보지 않았기에 사랑을 의심했다. 새드 엔딩은 소설적 장치가 아니라 그때 나의 진실이며 한계였다. 살아보니 삶은 고단해도 사랑은 그렇지 않았다. 삶이 이어지는 동안 '사랑'을 정의할 나만의 문장을 완성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러나 '사랑섬'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랑'에 대한 환상은 쉽게 훼손되지 않을 것만 같다. 마음은 발보다 빠르게 설렘을 품고 '사랑섬'으로 출발한다.
옥녀봉 전설의 진실
옛날 이 섬에 옥녀라는 딸과 아버지가 살았다. 그러나 옥녀가 아리따운 처녀로 성장하자 아버지의 눈에 옥녀가 한 여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욕정을 주체 못 한 아버지가 옥녀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이에 옥녀는 꾀를 내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옥녀는 자신이 뒷산에 올라가 있을 테니 아버지가 멍석을 쓰고 소 울음소리를 내면서 기어서 산을 올라오면 허락하겠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어 지어낸 이야기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실제로 멍석을 쓰고 음매음매 소리를 내면서 기어서 산을 올랐다. 이에 절망한 옥녀는 천륜을 지키기 위해 벼랑 아래로 몸을 던졌다. 지금도 옥녀가 몸을 던진 옥녀봉에는 붉은 이끼가 자라 있어 그 안타까운 전설을 뒷받침한다. 이 전설은 천륜을 저버린 아버지의 비뚤어진 욕망이란 특이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어쩌면 고단한 섬살이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통영 사량도 지리망산 - 옥녀의 전설 안고 오르는 한려수도 조망대 (길숲섬, 김산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