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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Aug 18. 2021

글쓰기의 바다에서 표류하기

 

#소설 쓰는 마음 1


백지는 망망대해와 같다. 너무 드넓어 나는 백지 앞에서 종종 길을 읽는다. 어느 방향으로 몸을 틀어야 육지 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좀처럼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첫 문장을 쓴다는 것은 표류해 있던 내가 어느 쪽으로든 방행을 돌려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첫 문장을 쓰는 것이 어렵지 막상 어떤 식으로든 한 문장을 쓰고 나면 다른 문장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딸려 나오게 마련이지만, 그렇게 이어지는 문장들이 나를 어느 곳으로 데려가려는지 나는 모른다.

백수린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 p67


글쓰기의 막막함을 빗댄 이 구절에 고개가 수없이 끄덕여진다. 작가는 '경계한다고 노력했지만 언젠가 읽은 누군가의 문장 표현이 무의식에 남아 내 글에 섞여 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 같은 것'이 작가를 두렵게 한다고 한다. 요즘 문장 쓰기 연습을 하고 있다. 사물을 관찰하여 다른 사람이 발견하기 전의 이면 (물론 내가 모르는 무수한 작가들이 이미 발견했을지 모를)을 찾아내려고 고민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내비게이션이 작동하기 전의 운전대 앞에 앉은 사람 같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영감이 좋은 사람, 창조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는 글쓰기 초보운전자인 내가 또 한 번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는 일이다. 정말 드문 경우, 내비게이션 없이도 목적지에 다다르는 때도 있다. 무의식 속에 잠재되었던 '문장' 하나가 자기 멋대로 툭 튀어나와 주는 것이다. 물론 그런 행운은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이 책, 저 책 뒤적거리거나 이미 누군가가 고심하여 만들어 둔 문장들을 수집해 둔 공책을 훑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변행해 본다.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문장이 하나, 겨우 만들어지는데 어설프기 그지없다. 그러나 표절이 되었든 새로운 창작이 되었든 한 문장 만들기라는 목적지에 오늘도 도착한다. 내비게이션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저장된 데이터의 도움을 받다 보면 새 길을 밝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서.


'언어는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은 자가 뒤늦게 얻는 것입니다.'라는 파스칼 키냐르의 말에 오늘의 한 문장을 얻어간다. '나는 열심히 책을 읽으며 기술을 연마하고 확실성을 얻어간다. 나는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헤엄치는 것처럼 읽었다. 그리고 그렇게 글을 썼다.'라는 메리 올리버의 말에서 작가 정신을 배워간다. '글쓰기는 잃어버린 나만의 단어를 찾는 일이다', '글쓰기는 누군가가 짜 놓은 실로 나만의 옷을 짓는 일이다' 같은 서툰 나의 문장들도 하나씩 낳아간다. '어딘가에 가 닿을지는 알지 못하지만' 표류하는 자체가 즐겁고 '필사적'이라 하기엔 부족함이 많은 글쓰기지만 나도 한동안은 더 그렇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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