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다섯 가지 상품 이야기> 저자 홍익희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
자, 시작부터 퀴즈 하나. 앞에 열거해 놓은 다섯 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슈퍼마켓, 백화점, 주유소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그냥’ 상품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이들은 역사상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상품들이다. 일개 상품 따위가 무엇을 하겠느냐고 치부할 수 있으나 이 상품들이 지닌 위력은 크다. 보통 한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이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모두 가진 경우는 드물다. 이럴 때 인간 상호의 필요가 만나 물류가 이동하면서 역사의 궤적을 그려낸다. 그 중심에서 앞에 열거한 다섯 가지 상품들이 유통되고 이동하면서 다양한 화학반응을 만들어 냈다. <세상을 바꾼 다섯 가지 상품 이야기>는 이러한 궤적을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고조선부터 현대 미국까지 다루는 시간과 공간도 넓고 다양하다. 상품을 위주로 역사의 흐름을 살펴낸 게 이 책의 특징이다.
<세상을 바꾼 다섯 가지 상품 이야기>를 쓴 홍익희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입사 후 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 뉴욕, 파나마, 멕시코, 마드리드, 밀라노 등 세계 곳곳에서 무역관으로서 수출 전선에 있었던 인물이다. 퇴직 후에는 <유대인 이야기>, <세 종교 이야기>, <달러 이야기>, <환율전쟁 이야기>, <월가 이야기> 등을 출간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생 2막을 열었다. 세계 경제의 최전선에서의 치열한 경험이 왕성한 책 출간이라는 결실을 낳은 것이다.
우선 <세상을 바꾼 다섯 가지 상품 이야기>에서 수많은 상품 가운데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를 고른 기준이 무엇인지 물었다. “문명사적으로 중요한 상품들이기 때문이에요. 역사를 보면 모든 문명이 있는 곳엔 소금이 있어요. 요샌 소금이 하도 흔한 시대가 됐으니까 사람들이 가치를 잘 모르는데, 과거에는 소금이 정말 귀하고 비쌌어요. 문명을 일으키는 일등공신 역할을 한 게 소금이었고. 모피도 마찬가지죠. 고대부터 추운 지방 사람들은 옷을 입어야 하니까 모피가 중요한 상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거고요. 보석, 향신료, 석유도 경제사적인 가치나 문명사적인 가치가 작지 않다고 봐요. 골라놓고 보니까 잘 고른 것 같네요.(웃음)”
인간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을 찾고자 하는 필요가 문명을 만들고, 그런 움직임이 마침내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당시 소금이 희소했던 나머지 교역에서 화폐와 같은 역할을 했고, 이로써 자원 유통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소금은 청동기 시대를 여는 데 핵심 역할을 했어요. 서양에서도 초기엔 청동기 보급이 원활하지 못했어요. 청동기를 만들기 위해선 구리에 주석을 섞어야 하는데, 주석이 흔하지 못했거든요. 그러다가 기원 전 2000년경에 영국 남부 콘웰 지방에서 대규모 주석광이 발견돼요. (소금을 보유하고 있던) 페니키아 사람들은 소금과 주석을 교환해서 다른 민족들에게 팔아 이익을 봤고, 그때 대량의 주석이 각지에 수입되면서 유럽에 청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던 거예요. 문명사적으로. 청동기를 제대로 발현시킨 게 소금이죠. 소금이 없었다면 콘웰 광에 있는 주석이 그렇게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갈 수가 없었겠죠.” 모피는 우리 역사상에서도 활발한 교역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상품이다. “모피가 초창기 시베리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을 개발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를 크게 개발시킨 요인 중 하나도 모피였어요. 소그드 상인들이 모피를 사려고 자주 왔다 갔다 하던 길이 있는데, 한 러시아 학자가 그 길을 ‘담비길’이라고 명명하며 발견했어요. 그만큼 그 당시 한반도 대륙에서도 모피가 굉장히 중요했던 거예요. 압록강 중상류 일대에서 명도전(청동으로 만든 화폐)이 다량으로 발견되는 건 그곳이 모피 교역 장소였단 걸 입증해주죠. 그만큼 우리 역사에서도 모피는 큰 의미가 있는데 불행하게 우리 역사학자들은 그런 걸 잘 몰라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역사 시간 달달 외우며 익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시절 단발적인 지식은 얻었지만, 바탕에 깔린 서로 연결되는 흐름은 미처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저자 홍익희는 역사를 단순히 기록이나 사료에만 입각해 분석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역사에선 왕이 누구였고, 군대가 몇 명이었고, 반대파를 어떻게 숙청했고 이런 정치사회적 요소를 주로 보는데, 그보단 그 이면에 흐르고 있는 경제적 동인이나 경제적 흐름이 어땠는지를 보는 거죠. 게다가 오래전부터 국력은 경제력이 밑받침되어야 하고, 또 경제력은 무역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그래서 결국 상품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고대 유물 발굴할 때 상품이 나오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역사학자들이 경제사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해요. 그런데 그걸 역사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더 이상의 것이 풀리지 않죠. 하지만 그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오히려 많은 것들을 풀어낼 수 있을 거예요.”
우리나라 역사 연구에서도 좀 더 광범위한 시야 확보는 필수다. 정통 역사학계에서 기록이나 유물에 의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사실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기록이 없던 시절의 우리 역사를 이런 것들만 가지고선 파헤칠 수가 없다. 가령 수메르 민족의 역사는 문자가 있으므로 많은 사실이 밝혀져 있지만, 고조선의 역사는 그렇지 않아서 연구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역사학자들이 연구 대상을 기록이나 유물에 한정시켜놨기 때문에 더 연구할 거리가 없는 거예요. 이런 기록이나 유물뿐만 아니라 이제는 유전자학, 비교언어학, 인류학, 지질학 같은 다른 주변 학문의 시선을 가지고 기록으로 대치할 수 있는 증거들을 수집해야 해요. 이건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선 안 되고 이 분야의 전문가들의 그룹을 만들어 융합 학문을 만들어야 해요.”
저자는 코트라 무역관 생활에서 물러난 후, 여러 권의 저작을 출간했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유대인 이야기>와 <세 종교 이야기>였다. 그가 유대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코트라 32년 생활 마지막에 느낀 게 있어요. 당시 내가 한 일은 우리나라 제조상품의 수출 지원 업무였는데, 우리나라가 한 번 더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제조업만으론 한계가 있고, 미국처럼 금융산업, 문화산업, 영상산업, 유통과 같은 서비스 사업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코트라 졸업 작품으로. 서비스 산업에 대한 책을 써서 그 중요성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죠. 이 중요성이 피부에 와 닿게 하려고 서문에서 서비스 산업을 창안하고 주도한 유대인 이야기를 썼는데, 너무 많이 써버린 거예요. 서문이 자그마치 책 10권이 됐어요.(웃음) 그 책이 앞으로 나올 <유대인 경제사>(8월 출간 예정)이고 그 내용을 축약한 것이 2013년 나온 <유대인 이야기>였어요.”
유대인은 조국 땅을 떠나 기반을 잃은 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생활하다 보니, 해당 지역의 주류인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을 택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서비스 업종에서 월등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
“현대에만 유대인들이 서비스 산업을 주도한 게 아니라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비스 산업은 그들이 항상 주도해 왔어요. 동양에서 상인이란 말이 만들어진 것도 상나라(은나라)가 주나라한테 망하면서 상나라 사람들이 자기네 땅에서 쫓겨나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장사를 했기 때문에 오늘날 상인이란 명칭이 된 거예요. 결국, 상업은 주류 세력에 있지 못하고 쫓겨난 사람들이 떠돌아다니면서 시작한 거라고 할 수 있죠. 유대인의 운명과도 비슷해요.”
홍익희는 32년 간의 무역관 생활에서 실제 서비스 산업에서 활약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계속 관찰했고, 그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제조업 비중이 10%밖에 되지 않는 미국 같은 나라가 세계 경제를 리드하는 건 순전히 서비스 산업의 힘이에요. 바로 그 서비스 산업을 유대인이 전부 장악하고 있고요. 우리나라가 서비스 산업으로 승부를 보려면 지피지기의 관점에서 그들이 가진 장점을 배워야 해요.”
경제와 역사에 관해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저자지만, 인터뷰 내내 자신의 책에 대한 장식은 덧붙이지 않았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와도 비견된다는 얘기를 한 서평에서 보았다”며 “오히려 나를 대신해 독자들이 좋은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 의미를 붙이는 건 독자의 몫”이라 담담히 운을 띄우는 그다. 그만의 ‘경제계’에서의 현장 경험이 ‘역사’와 만나 보여줄 새로운 ‘틈’들을 기대한다.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 북DB 2015.7.16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60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