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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May 27. 2021

<글자전쟁> 김진명 “작품에 남북관계 방향 담았다”

<글자전쟁> 출간 김진명 인터뷰






역시, 김진명이다. 8월 1일 출간된 <글자전쟁>, 이번에도 작가는 저력을 보여줬다. 한국 소설의 오랜 침묵도 그는 비켜갔다. ‘인터파크’를 비롯한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권에는 늘 <글자전쟁>이 올라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많은 독자를 김진명 소설에 이끌리게 하는 것인가?

과거와 현재 시대를 배경으로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한민족 역사와 정치 문제에 주목한 그다. 신작 <글자전쟁>은 명망 있는 국제무기중개상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주인공 태민이 법망을 피해 중국으로 도피해 있던 중, 소설가 킬리만자로의 USB를 입수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아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문자’에 관해 은폐돼 있던 진실 밝혀감에 따라 돈밖에 모르던 태민의 의식도 새롭게 거듭난다.

신작 출간을 기념해 평창동 새움 출판사 사무실에서 김진명을 만났다. 작가는 조용한 어조로 질문 하나하나에 꼼꼼하게 대답해주었다. 현실 정치와 역사를 소재로 작품을 통해, 또한 현실이란 가장 밀접한 거리에서 발언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한자는 동이족의 문자

Q <글자전쟁>은 스탠퍼드 출신의 영리한 두뇌를 가진 무기중개상 이태민이 소설가 킬리만자로의 소설을 통해 감춰져 있던 글자의 역사를 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습니다. ‘소설 속 소설’ 형태로 구성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현대인들은 현대가 가장 우수하고 절대적이라, 과거와 아무 상관 없이 존재한다는 착각에 빠져 삽니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자식인데 한국 사회가 워낙 빨리 변하다 보니 과거의 것을 집어 던지는 데만 익숙해요. 유럽은 오래된 건물도 고쳐서 쓰지만, 우리나라는 새로 지은 화려한 건물을 선호하잖아요.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란 의식이 있어야 문화를 존중하고, 자기 존재를 귀중하게 여기는데, 안 그러면 사람이 뿌리를 잃고 헤매게 돼요. 기본적으로 글자는 과거로부터 지속해 온 것이잖아요. 현대와 과거, 두 시점에서 같은 것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소설 속 소설의 구성을 취했습니다.



Q 소설 속에서 주인공 태민은 중국 베이징 대학교의 인문학 심포지엄에서 발표를 하죠. 한자는 원래 동이족의 문자인데, 공자와 사마천이 역사를 왜곡해서 한족의 문자로 바꿔 놓았다는 내용으로요. 이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보시나요?



공자


이전엔 역사가 없었으니 공자가 최초로 역사를 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공자나


사마천은 역사를 쓸 때 한족 위주의 시각으로 동이족을 굉장히 하찮게 여겨서 썼어요.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그들의 저작을 통해서만 받아들이고 있고요. 기본적으로 우리가 우리를 하찮게 볼 수밖엔 없는, 중화 중심주의의 들러리 정도로 여기는 시각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보고 있는 셈이죠.



공자가 그가 태어나기 5백 년 전, 천 년 전의 일을 혼자서 썼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공자나 사마천이 쓴 것이 바르지 않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어요. 다행히 20세기 들어와서 다양한 연구 방법이 개발되고 수많은 유물이 나오면서 황하 문명 이전에 요하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공자는 사료에 근거하지 않고 썼던 걸까요?



그때 사료가 뭐 있었겠어요? 공자가 기원전 700년 무렵 춘추전국시대 사람이잖아요. 은나라는 기원전 1,600년에 생겼으니 공자도 900년 전 일을 쓴 거예요. 하지만 공자가 썼기 때문에 비교해 볼 만한 어떤 역사책도 없어서 그게 정설이 된 거죠. 책에 나온 것처럼


맹자는


“<서경>을 믿느니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어요.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도 그럴 지경이니 한국인이 공자의 생각을 그대로 믿고 우리를 낮춰 보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죠. 



Q 보통 한자는 중국의 문자로 굳어져 알고 있는데요. 한국인과 일본인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동이족이 만든 문자라는 것은 통설을 깨는 파격적 주장인데요.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글자는 시대마다 동시대인들이 쓰면서 바뀌거나 새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중국인이 모든 한자를 만들었다는 건 언어발생학적으로 말이 안 돼요. 다만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유교에 짓눌려서 살다 보니 감히 그런 생각을 못 한 거죠. 은나라는 중국 고고학에서는 동이족의 나라라고 하는데 이걸 한족의 나라로 바꾸어 버린 게 공자란 말이에요. 공자는 머릿속의 유교사상에 근거해 은나라가 한족의 나라라고 역사를 마음대로 써버린 거예요. 은나라가 동이족이라는 건 과학에 의해서 나온 사실이에요.



한자가 동이족의 문자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왜 하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논리적으로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에요. 은허에서 나온 한자가 한 4,500자가 되거든요. 현재 쓰이는 한자가 2,300자 정도니까 이미 은나라 시대에 글자를 4,500자나 썼던 거잖아요. 은나라에서 만들어진 문자니까 그걸 한자라고 부르는 것도 옳지 않아요. 한자가 아니고 은자라 부르는 게 맞고 우리의 글자예요. 한족의 것이라고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죠.



Q 한국을 멸시한 치엔 교수에게 모욕감을 느낀 태민이 그의 스탠퍼드 스승 스티븐스 교수를 찾아가니, 스티븐스 교수가 ‘한글이 한자의 음성 기호’라고 말한 부분도 나오는데요.



당장 도서관에 가서 한자 자전을 찾아보면 과거에는 중국인도 한국인처럼 한자를 발음했다고 나와요. 현재 중국 사람들이 백두산을 ‘바이토우샨’이라고 하지만 과거에는 ‘백두산’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그렇게 발음하는 마을이나 부족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곳이 하나도 없다는 게 미스터리예요. 이제 우리 국민이 그걸 풀어야 해요.



Q 말씀하신 바와 같이 풀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역사 연구와 다른 방법이 필요할 텐데요. 대안적 방법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고고학이에요. 고고학은 인문학이지만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학문인데요. 고고학을 통해 동북방에서 온 사람들이 은나라를 만들었지만 나라가 망하는 바람에 동북방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어요. 이제 중국 고고학자들도 은나라는 동이족의 나라라고들 말해요. 이것 때문에 중국에서 황하 문명보다 더 오래된 요하 문명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중국도 큰 고민에 빠졌어요. 그런데 우리 국민은 유교의 영향 탓에 왜소 지향적으로 키워졌기 때문에, 한반도에 조그맣게 사는 사람들일 뿐이란 의식이 팽배해 있어요. 그래서 은나라가 우리 것이라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덤비죠. 하지만 이럴 때 ‘공자를 믿을 것인가’, ‘과학을 믿을 것인가’ 한다면 우리는 과학을 믿어야겠죠.



Q 최근 그 사실 여부에 있어 논란이 되는 <환단고기>의 내용과도 연관되는 것 같은데요. <환단고기> 내용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다고 보세요?



<환단고기>에는 얼토당토않은 내용이 많아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역사 고증은 문헌학적으로 비정(批正: 비교해서 바로 잡음)을 하거나 과학적 방법을 써야 하는데 <환단고기>는 그렇지 않아서 공허하고 학문적 방법론이 틀려 있죠. 하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부분도 있어요. ‘단군세기’는 상당히 믿을 만하다고 봐요. ‘단군세기’를 쓴 고려 시대


이암은 당시에 문하시중까지 지냈고 학문도 깊은 사람이었죠.


<천 년의 금서>

에서 우리를 한국이라 부르게 된 이유를 문헌학적으로 찾아서 밝혔는데, 그 과정에서 ‘단군세기’에 있는 일부 내용이 바르다는 것이 검증됐어요. <환단고기>는 믿을 수 없는 것투성이지만 100% 믿을 수 없다고 하기엔 버릴 수 없는 알맹이들이 있어요. 우리가 취사선택을 잘해서 그 내용을 분석하고 연구를 해야 하죠.




현실도 작가 삶의 한 영역이다

Q 무기중개상 태민은 작품 속에서 심리를 무기로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역사나 정치에 관한 소설을 통해 적극적으로 국내외 정세에 발언하는 작가님의 모습도 어느 정도 투영하지 않으셨나요?

그렇죠. 한 작가가 쓴 작품은 그의 가치관, 철학, 꿈, 생각의 반영일 텐데요. 현실에서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것도 작가의 삶의 한 영역이거든요. 우리나라가 지금 북한과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나빠져 있는데, 더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글자전쟁> 속에 중국이라는 제3 지대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만나 서로 술잔을 나누고 정답게 지내는 모습처럼요. 이웃이 망치를 가지고 있으니 우린 도끼를 준비하자. 식칼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는 일본도를 준비하자. 권총을 가지고 있으니 기관총을 준비하자는 게 지금 우리가 북한을 대하는 자세인데요. 진정 북한이 우리 이웃이라면, 우리가 무기를 사들이는 돈 중 일부는 그들이 춥지는 않은지, 밥은 먹고 있는지를 살펴서 사람을 순화시키는 게 먼저죠. 이런 부분을 꼬집기 위해 무기중개상을 주인공으로 설정했고요.

Q 현 정권과 북한 사이에 친화적이기보단 냉랭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데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어떻게 보시나요?

상당히 모순적이죠. 현 정권은 처음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출발했는데요. 신뢰 프로세스라는 건 ‘우리 맘에 들게 행동하면 좋게 봐 주겠다’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어떤 행동을 기대하기 이전  먼저 행동을 보이는 게 기본인데, 한국에선 아무것도 먼저 안 보여주려 해요. ‘통일은 대박’이라고 해서 돈벌이, 밥벌이 된다는 식의 접근은 잘못된 거예요. 지난 인천아시안게임 때 북한에서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비서, 김양건 비서가 내려왔잖아요. 그건 북한의 지휘부가 이동해 온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때 한국의 유길재 통일부 장관, 정홍원 총리와의 간담회 정도로 만날 일은 아니거든요. 당시 북한은 굉장히 푸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북한 같은 전체주의 국가는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중요해요. 아무리 큰 국가의 일도, 그 사람들의 기분에 따라 좌우 되거든요. 이 사람들이 내려왔을 땐 무조건 청와대로 데리고 가서 실컷 먹이면서 거기서 할 얘길 다 해야지. 정작 핵심 인물들이 내려왔을 땐 푸대접으로 보내고, 그다음에 대화하자는 것은 소용이 없어요. 이 사람들이 돌아가는 순간, 남북관계는 끝인 거예요. 앞서 세 인물이 내려온 의미는 뭔지, 그들의 지위가 뭔지 정확하게 분석을 못 하기 때문에 그런 대처가 나오는 거예요.

Q 전 영부인 이희호 여사가 북한을 방문했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못 만나고 온 것에 여론이 안타까움을 표했는데요. 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김정은이 이희호를 만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지금 정권은 진보나 좌파나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이희호 여사에게 친서를 보낸다든지 힘 있는 역할을 안 줬어요. 북한에서도 남한에 대해 상당히 화가 나 있는 상태예요. 남한 측에 실망했고, 앞으로 큰 싸움으로 갈 뿐 어떤 대화도 없을 것이란 분위기를 주려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희호를 김정은이 만났지 않았던 거죠.

Q 작가님께서는 현직 정치인을 거론한 실명소설도 쓰고, 현실에 대한 발언도 종종 하시는데요. 작품 바깥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운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작가는 끊임없이 현실비판을 하는 존재인데, 우리 작가들의 현실비판은 그동안 외부의 자극에 대한 개인의 의식으로만 주로 국한돼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나 변화가 빠르고 직선적인 데다가 웬만한 은유나 비유로는 꿈쩍 안 하는 세력이 너무 많아요. 개인의 삶을 흔드는 건 정치나 경제 등의 굵직굵직한 이데올로기인데, 작가들이 이것들에 대해 전혀 못 쓰고 있는 건 대단히 큰 문제죠. 우리 정치권의 의식이 워낙 낮아서 권력이 들어야 하는 소리에 귀를 안 열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적 방법으로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분야에 있는 인물에게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발언을 많이 하고요. 실제 내 소설을 국정원이나 북한에서도 많이 보기 때문에 그들의 잠재의식에 내 메시지를 던져서 끌고 가려 하는 의도도 있어요.

Q 과거에 북한에서도 김진명 소설을 읽는다 해서 화제였는데요. 요새도 북한에서 작가님 소설을 읽나요?

내가 대중, 대미, 대일 관계에 대해서 많이 쓰니까 북한에서도 많이 보고 있어요. 지난번에 북한 작가들이 대거 내려와서 남북작가회의를 했는데, “김진명은 왜 안 나왔느냐?”, “김진명이 보고 싶다”고 한 이들이 많았다고 해요. 이렇게 현재까지 북한에서 내 책을 상당히 보기 때문에 나도 책을 통해 남북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함의를 자꾸 담으려 하는 편이에요.



<고구려>, <삼국지>보다 재밌게 쓰고 싶다

Q 한 인터뷰에서 “나는 노블리스트지 문학가는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본격 문학보다는 대중 친화적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한국소설이 외면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국 소설의 위기는 갑자기 닥친 게 아니고 예견되어 있던 거죠. 소설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글쓰기 형식이거든요. 모든 게 다 담겨야 하는데, 한국은 그걸 보는 잣대가 굉장히 엄격하고, 문학적 향기가 있는지만 보는 거예요. 작가는 온 세상을 호흡하고, 온 세상을 느끼고 모든 걸 다 아는 존재가 돼야 하는데, 그 많은 시간을 수없이 읽고 사색하고 여행하면서 자기 걸로 빨아들여야 할 시간에 문체연습이나 하는 건 작가가 아니죠. 그래서 그 어려운 신춘문예를 통과해도 그 후에 작품이 안 나오는 거예요. 특히 지금은 인터넷 등등으로 정보가 넘쳐 나잖아요. 웬만한 시시한 작품으로는 독자 수준에 따라가지 못하고, 전 세계 문학작품들이 빨리 번역되어 나오고요. 그러니 어설픈 풍토에서 나온 작품들이 독자의 수준에 맞출 수가 없는 거죠. 소설은 자기 풍토에서 나와야 가장 재밌고 가장 유익한 건데, 어설픈 남의 것을 어설프게 번역해서 지금 읽고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건 독자들의 불행이기도 해요. 작가들이 분발해야죠.

Q <글자전쟁> 독자 리뷰 중에 긍정적인 평가도 많지만, 5편까지 나온 <고구려>의 6편은 안 쓰고 새로운 신작을 내는 거냐는 팬들의 성화(?)가 빗발쳤습니다. <고구려> 6권 언제 나오나요?

고구려는 그야말로 내가 필생의 역작으로 쓴 것이거든요. 중국이 근래에 점차 강성해지면서, 고구려나 요하 문명도 자기네 역사로 끌어오려 하고 있어요. 이런 중국을 지배하는 문화가 <삼국지>거든요. “<삼국지>를 읽지 않으면 인생을 모른다”고들 하잖아요. 하지만 <삼국지>를 읽는다는 건 중국의 눈으로 우리를 본다는 뜻이에요. 이문열, 황석영 다들 <삼국지> 번역을 해놨는데 잘못된 거예요. 중국이 우리 역사를 뺏어 가는데 우리 사회가 일조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저는 여기에 반대해 <고구려>를 쓰는 거라 이 작품은 진짜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글을 굉장히 빨리 쓰는 사람이라 ‘그냥’ 쓰면 두 달에 한 권쯤은 문제없이 낼 수 있어요. 하지만 현재 고구려 기록이 하나도 없어서 내가 쓴 소설이 교과서가 될 수밖에 없거든요. 700년 지속한 나라인데도 고구려가 남긴 종이 한 장, 글자 한 자 없고 광개토대왕비, 중원고구려비, 비석 두 개밖에 없어요. 그래서 내가 굉장히 잘 써야 하는 거고요. <고구려>는 우리 역사니까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식은 아니에요. <삼국지>보다 더 재밌게 쓰고 싶은 거예요. <삼국지>가 나관중 한 명이 쓴 게 아니고, 몇백 년에 걸쳐 수많은 가필이 된 거잖아요. 당대에 일천한 내가 그것보다 재밌게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워요. 그런데도 재밌게 쓰려다 보니 생각을 많이 하게 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예요. 내가 지금 노는게 아니고(웃음) 머리가 부서질 정도로 쓰고 있으니 독자들이 좀 더 기다려 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 북DB 2015.8.2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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