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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May 27. 2021

소설가 김중혁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해피엔딩일까?”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출간 김중혁 인터뷰


김중혁은 산소(O2)가 아닌 질소(N2) 같은 소설가다. 손쉽게 불이 붙어버리는 불안정한 기체 산소말고, 공기 중 78%를 차지하며 지구상 어디에나 있는 안정적인 기체 질소말이다. 그는 심각한 척 하지도 않고, 어떤 인터뷰에서도 최대한 솔직한 태도로 일관하며(그래서 그의 인터뷰를 읽는 건 늘 즐겁다) ‘절친’ 김연수 작가에 대한 질투심도 숨기지 않는다. 이동진의 빨간책방 팟캐스트에 출연해서는 자신 작품보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더욱 열변을 토하는 그다. 힘든 일은 억지로 하지 않고, 사는 게 즐겁다고 말한다. 이런 소설가, 정말 ‘애정’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김중혁의 레이더는 관념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보다는, 눈에 보이고 확실히 손에 잡히는 사물들을 주로 포착해 왔다. 그런 그가 이번엔 사람들의 관계와 감정들에 집중했다고 하니 모두들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김중혁이 쓴 연애소설집이란 이유만으로 화제가 됐다. 책에 실린 총 8편의 단편 ‘상황과 비율’, ‘픽포켓’, ‘가짜 팔로 하는 포옹’, ‘뱀들이 있어’, ‘종이 위의 욕조’, ‘보트가 가는 곳’, ‘힘과 가속도의 법칙’, ‘요요’는 김중혁이 공들여 직조해 낸 각각의 세계들이며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김중혁의 작업실이 있는 일산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김중혁이 유능한 소설가인 동시에 유능한 인터뷰이임을 느끼게 한 시간이었다.



열렬하지 않은, 변두리 감정에 관하여



Q 그간 어떻게 지냈나?

기본적으로 소설을 썼지만, 난 생계형 에세이스트이기 때문에 신문사나 잡지사에 연재를 주기적으로 해왔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씨가 하는 팟캐스트에 출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소설만을 다루는 웹사이트인 ‘소설리스트’도 하고 있다.

Q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김중혁의 첫 연애소설이란 사실만으로 화제가 됐다.

보통은 계간지나 책에 썼던 것들을 모아서 단편집을 내는데, 난 시기마다 주제가 있다. 이번엔 관계나 사람들 얘기들에 주목해서 썼고 그런 얘기들만 여덟 편을 모으게 된 거다. 아직 책이 안 나와서(인터뷰가 진행된 7월 23일 소설집은 미출간 상태-기자 주) 편집부만 봤는데, 이걸 연애소설이라고 팔면 욕먹지 않을까 걱정이다.

Q 사실 연애소설이란 말에 달달한 걸 기대했는데 도입부 <상황과 비율>부터 19금 코드다.

그 작품을 앞에 놓은 건 약간 낚시다. 사람들이 흥미로울 만한 주제라서 앞에 놓은 것이고, 사실은 제일 뒤에 있는 <요요>가 전체를 아우르는 소설이다.

Q 작품 배치에 공을 많이 들이나 보다.

소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작가가 드러나는데, 그 작품을 가장 앞에 두고 사람들을 흥미롭게 한 다음,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 중간에 약간 묵직했으면 좋겠고, 마지막에 모든 이야기를 <요요>가 아울렀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배치를 했다.

Q <요요>가 소설집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인 건가?

그렇다. 원래 책 제목도 <요요>로 하려 했었다. <요요> 마지막에 ‘시간’에 대한 전체 이야기를 아우르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대목을 보면 이걸 쓴 게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날 거다. <요요>가 전체 단편 중에서 중간쯤 쓴 것인데, 쓰고 나서 이게 내 네 번째 단편집의 주제라 생각했고 ‘요요’를 제목으로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효석 문학상을 받는 바람에 <요요>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와 버렸다.

Q 연애소설을 써야겠다 결심한 계기가 있나?

사물 얘기만 쓰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내 소설 속에서 사람들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오더라. 그러다 보니 사람이 중심인 소설을 쓰고 싶어졌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이나 관계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 같다. 

Q 사랑이야기라고 보면 너무 넓은 걸까?

인간 관계의 무수한 관계와 감정들 중에 일부랄 수도 있고, 또 반대로 모든 관계를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랑이라기 보단 사람과 관계에 대해서 이야길 쓰고 싶었다. 그게 사랑 중에 일부였을 수 있다. <종이 위의 욕조> 같은 경우 미요와 남자 큐레이터가 느끼는 감정이 사랑일까? 아니면 그냥 동료애일까? 이 관계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고, 사랑이 시작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호감일 수도 있는데 그런 감정들에 대한 얘길 쓰고 싶었다. 이뤄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이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막 시작되려는 사랑이거나, 끝나버린 사랑이거나, 부서져버린 사랑이거나. 사랑을 둘러 싼 변두리의 감정들이다. 열렬한 사랑 말고 그런 얘길 쓰고 싶었던 것 같다.

Q 두 번째 단편 <픽포켓>에서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인용했다.

찰스 디킨스 탄생 100주년 기념 테마소설집 <헬로 미스터 디킨스>를 위해 쓴 작품이다. 작업 의뢰를 받아서 <두 도시 이야기> 문장 몇 개를 가져와서 한번 같이 리믹스를 한 것처럼 해봐야겠다고 해서 쓰게 된 거다. 

Q <두 도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쓴 건가?

영감 보다는 의뢰를 받았다. 의뢰를 받고 영감을 냈다. 찰스 디킨스 작품을 좋아하긴 하지만 난 영감보다 돈이 먼저다.(웃음)

Q 작품 배경이 부산이다. 부산을 애초에 염두에 뒀나?

원래 내 소설에는 특정한 지명이 잘 안 나오는데, 그 작품은 해변에 높은 빌딩이 있는 장소를 떠올렸다. 부산이 제일 어울릴 것 같았다. 아마 그때 부산에 갔을 거다.

Q 부산의 어딘가?

그냥 오래된 동네다.

Q 대부분 작품 배경이 도시다.

시골 안 좋아한다.(웃음) 내가 쓰고 싶은 얘기들은 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역사소설을 쓴다든지, 시골에서 일어나는 일을 쓴다면 감정이나 관계를 섬세하게 다뤄줘야 하는데 그러면 핸드폰도 없고 기계도 없는 일들이 중요해 진다. 그래서 배경을 한적한 곳으로는 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그것보다는 좀 더 복잡한 세계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얘기를 쓰는 걸 더 좋아한다.

Q  <픽포켓>과 <뱀들이 있어>에는 공통적으로 질투라는 감정이 등장한다.

질투는 나의 테마 중 하나다. 창작하는 사람에게도, 평범한 사람에게도 대체로 가장 중요한 감정의 덩어리가 난 질투 같다. 창작을 하는 것도. 인간을 죽이는 것에도 질투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런 감정의 덩어리들이 드러나는 소설을 써보고 싶더라.

Q 여성에 대한 묘사가 무척 세밀한데?

이전 작품까지 내가 받은 평가가 “김중혁은 여자를 진짜 못 그린다.”, “여자를 못 살린다.”, “여자를 모른다.”였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얘기도 전혀 안 썼다. 이번엔 안 그래 보려고 여자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좀 많았던 것 같다.





모르는 걸 상상하는 게 더 재밌다



Q 즐겁게 소설을 쓴다고 들었다. 소설 쓰기에서 어떤 과정이 가장 즐겁나?

요새 제일 재밌는 건 대사를 쓸 때랑, 감정을 묘사할 때다. 대사 쓸 땐 이 사람이 어떤 말을 했을 지가 막 떠오르기도 하고 신난다. 감정은 사실 형체가 없는 덩어리 같은 것들인데 그걸 문장으로 표현하는 게 불가능해 보여서 더 재밌다. 재밌다고 하면 웃기지만 어쨌든 나에겐 흥미로운 일이다.

Q 대사 중에 말장난이 자주 등장하는데, 다양한 종류의 말장난을 설정한 것 같다. 평소 말장난을 즐기는 편인가?

나쁜 일이긴 한데 카페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대화하는 걸 녹음할 때가 있다. 녹음 내용이 궁금해서는 아니고, 모든 사람의 고유한 말버릇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개중엔 두괄식으로 말하는 사람, 의성어를 많이 쓰는 사람, 윽박지르듯 말하는 사람 등 다양한 성격의 말투가 있는데 그 말투를 받아 치기 위해 녹음도 하고, 관심 있게 듣는 편이다. 대사 쓸 때도 초반에 어떤 사람인지만 명확하게 내 머릿속에 있으면 세 명, 네 명이 탁구 치듯 각자의 말투로 자기의 입장을 말 하는 것들이 섞여 든다. 대화에서 재미없는 응답을 하는 사람, 쓸데없는 얘기만 하는 사람, 쓸데없이 진지한 사람들이 얽혀서 하는 말들을 쓸 때 희열을 느낀다.

Q 내 안에 여러 사람이 있는 건가?(웃음)

약간 신비한 게 소설을 쓰다 보면 처음엔 약간 뻑뻑한 느낌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이 실제로 나타나 대화를 막 한다. 마치 이상한 환상처럼 보일 때가 있다.

Q 등장 인물이 많은데, 이번 단편집을 다 쓰는 데는 얼마나 걸렸나?

2~3년 걸렸다.

Q 단편 작품마다 확연히 다른 직업과 캐릭터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새롭게 캐릭터 만드는 일 어렵지 않나?

보통 단편집엔 지극히 작은 사건들이 작은 사건들 가지고 등장할 때가 많은데 나는 약간 벌려놓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단편이라도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얽히는 걸 좋아한다.

Q 성인 영화 감독, 게임 제작자, 큐레이터, 시계 제조공 등 등장인물 직업이 정말 다양하다.

소설 시작할 때 장편이든 단편이든 가장 먼저 정하는 게 직업이다. 한 사람을 떠올릴 때 그 사람 나이는 몇 살이고 직업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겼고, 키는 몇인지를 먼저 생각한다. 이때 직업이 나와야 그 사람의 일상이 완성이 되고 그로부터 사건이 생기기 때문에 직업이 내겐 무척 중요하다. <요요> 같은 경우에는 주인공이 시계를 만드는 사람이라서 그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고. <뱀들이 있어>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이야기, <종이 위의 욕조>는 큐레이터가 바라보는 세계를 그린 거다. 내가 제일 꺼리는 건 소설가가 주인공이 되는 거다. 내 작품 중엔 거의 없다. 굳이 글 쓰는 사람은 테크니컬 라이터 정도? 소설가가 주인공이면 내가 알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아서. 내가 모르는 직업, 해보지 않은 직업일 때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하는 게 재밌다. 가령 큐레이터는 상상 속에서만 하는 거라 실제와는 다를 수밖에 없을 거다. 물론 나도 큐레이터에 대해서 완전히 모르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전시를 어떻게 하는 건진 모르는 분야이니까 그런걸 상상하는 게 재밌다.

Q 작품마다 직업이 다양한데 따로 조사를 하나?

직업과 관련된 소설적이지 않은 매뉴얼적인 책들을 주로 본다. 시계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면 시계를 조립하는 법에 관한 책을 본다거나 한다. 취재를 하거나 하진 않는다.

Q 취재 말고 책을 통해서 보는 이유가 있나?

사람을 만나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얘기를 듣게 될텐데 너무 구체적이라 상상하는 데 지장을 받을 것 같다. 오히려 책을 통해 접근하면 그 사람의 일을 상상할 여지가 더 많아진다.

Q <상황과 설정>의 경우 성인 영상물에 관한 책도 봤나?

그건 완전히 허구의 상상이다. 그런 건 자료도 없고 취재를 할 수도 없다. 실제 한국에서 에로 필름을 찍는 사람들은 그렇게 찍지도 않을 거다. 일본의 남자 에로 배우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은 있지만, 구체적 자료 조사를 한 적은 없기 때문에 완전히 허구의 이야기다.

Q 작품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면 단편소설이 장편보다 더 힘들 것 같다.

단편 소설이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장편이든 단편이든 구상을 해야 하는 세계라는 건 비슷하다. 장편소설이 좀 더 큰 세계이거나 좀더 치밀한 세계여야 하긴 하지만 새로운 걸 하나하나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인물을 만들고 관계를 만들고 들이는 시간은 비슷하다.

Q 주인공 중에서 본인과 닮았다고 생각한 캐릭터가 있나?

다들 조금씩은 닮았을텐데. 지분이 특별히 많은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의 알코올릭이 나와 비슷한가? (웃음) 농담이다. <뱀들이 있어> 주인공의 약간 소심한 마음도 분명히 내게 있고, <종이 위의 욕조>에 나오는 큐레이터의 그런 성향도 있고. 다 조금씩 있는 것 같다.

Q 남자 캐릭터에 본인이 다 섞여 있다는 건가?

아니다. 남자 캐릭터가 다들 찌질하기 때문에 나와 닮았다고 하면 안 된다.(웃음)

Q 김연수 작가는 글에서 마흔이 된 감회를 여러 차례 밝혔는데, 김중혁 작가는 어떤 편인가? 

나는 나이에 대한 감회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냥 현재에 사는 사람 같다. 그래서 잘 잊어버리고. 계획을 안 하기도 하고, 못 하기도 한다. 문득 생각해보면 “이 나이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이 나이가 지금 어떤 나이고 어떤 과정 속에 있는 지에 대한 파악이 되게 느리다. 나이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 같고. 그건 김연수와 나의 차이다. 그래서 둘이 만나면 매일 싸운다.(웃음) 김연수는 만나면 예전 얘기 많이 하고 그러는데, 나는 다 까먹고 기억이 안 난다.

Q 나이에 별로 연연해 하지 않는 타입인가 보다.

연연하지 않는다기 보다, 감각적으로 그렇게 사는 것 같다. 그렇게 살아야지가 아니라 잘 잊어버리고 계획을 안 세우기 때문에. 나에겐 앞으로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만 예측이 가능할 뿐이다. 어제, 그저께 일은 잘 기억하지만 지나간 일에 대한 기억이 잘 안 난다. 첫 책 언제 냈냐고 물으면 기억이 잘 안 난다.



마음만은 진짜인, 가짜 팔로 하는 포옹


  

Q 여덟 편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작품은 뭐였나?

<가짜 팔로 하는 포옹> 같은 경우 주인공들의 감정을 따라 가야 하잖나. 그런 게 참 어렵더라. 그 속에 나온 주인공들이 아파하고 이럴 때 나도 아파하게 되는데, 그 감정을 따라가서 감정을 쓰는 게 힘들더라. 그래서 술 먹고 쓰고 그랬다. 편의점가서 제일 싼 양주 사 가지고.

Q 술 좋아하나?

사실 양주 별로 안 좋아하고, 맥주 좋아한다. 취하기 위해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Q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 끝나는 대목에서 남자 시선은 한 곳에 고정돼 있는데, 여자는 떠나버린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처음에 쓸 때 연극 무대처럼 중간에 테이블이 하나 있고 남자 여자가 앉아서 계속 얘기를 하는 그거였다. 중간에 다른 얘기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건 마치 연극을 앉아서 쓴다고 하면 이렇지 않을까 했던 거다.

Q 그런데 소설 제목이 왜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인가?

소설도 쓰기 전에 어느 날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생각해 봤다. 포옹이니까 가짜 팔로라도 포옹을 하는 건 좋은 일일까? 아니면 가짜 팔이니까 포옹의 의미가 없어지는 걸까?라는 두 가지 생각을 하다가 이야기를 써보게 된 거다. 이건 정말 제목이 먼저 만들어지고 글을 쓰게 된 경우다.

Q 소설에선 제목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란 말이 직접 등장하진 않는다.

가짜 팔이 의미가 여러 개인데, 이건 너무 자세한 설명일 수 있겠지만 빈말들 있잖나. “많이 힘들지”, 많이 힘든 지에 대해 자신은 상대가 많이 힘들다고 못 느끼는 상황. 하지만 빈말을 함으로써 그 사람에게 위로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만은 진짜일 거다. 그런 가짜 말이 아마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의 의미일 거다.

Q <가짜 팔로 하는 포옹> 단편에선 헤어진 연인이 재회한 내용인데, 남자는 미련이 있는 상황인 건가?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그들의 관계는 그들이 해결해야 한다.(웃음) 남자가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외로워서 그런 건지, 그냥 술친구가 필요한 건지 그건 내가 정해주고 싶지 않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을 책제목으로 뽑게 된 이유는 이 소설의 이야기가 포옹하는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사랑의 포옹일 수 있고, 다독여주는 포옹일 수 있다.

Q ‘명사분실증’이란 말이 <종이 위의 욕조>에 나오는데 실재하는 병명인가?

말을 깜빡 하는 증상은 있지만 실제 그런 병명은 없다. 난 새로운 말 만들기를 좋아한다. 랩퍼들이 라임을 만들듯이 작가는 말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이다.

Q 최근에 새롭게 만들어 낸 말이 있나?

<미스터 모노레일>이란 장편소설에서 ‘볼교’를 만들었다. 볼을 숭상하는 종교다. 그들의 교리는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며, 기도를 할 땐 어떻게 하며, 주기도문처럼 볼에 대해 어떤 기도를 배울까? 이런 걸 혼자 막 상상을 하는 거다. 그러면 그게 하나의 세계가 되어서 그 세계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단편도 그런 식으로 많이 움직이는데 명사분실증도 그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거다.

Q SF를 닮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소설이 SF같다. SF가 엄밀한 의미에서는 사이언스 픽션, 과학 소설이지만 현실적인 리얼한 세계를 다루지 않는 것을 SF라 친다면, 내 소설엔 특별한 지명이 나오지 않고, 어떤 한 시기를 구체적으로 쓰는 게 아닌 미래, 근미래일 수도 있는 허구적 얘기들을 다루는 거라서 SF적인 뉘앙스는 있다. 옛날에 자주 내 작품을 5cm SF라고도 불렀다. 땅에서 5cm 정도 떠 있는 정도의 아주 미세한 SF같은 느낌을 쓰고 싶었다.

Q 다음 생각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장편을 한두 개 더 쓰고 단편은 천천히 갈 계획이다. 지금 에세이 쓴 것들 정리하고 있다. 과거 몸과 신체와 이런 것에 대한 에세이를 연재한 것들을 묶어서 책으로 낼 예정이다. 우주 비행사와 스탠드업 코메디언에 대한 장편도 쓰고 있다. 지금 우주란 주제에 관심이 있고, 말, 코미디 등에 대한 관심을 이 작품에 담을 예정이다.


- 북DB 2015.7.3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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