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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un 06. 2021

'무한도전' DNA 엄홍길, 그가 오를 17번째 봉우리

<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 엄홍길 인터뷴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엄홍길의 말말말

"산이 인간을 선택하고 받아줄 때만 인간은 올라갔다가 살아 돌아올 수 있어요. 그래서 산에 오를 땐 겸손한 마음과 순응하는 자세로 초심의 마음가짐을 잃지 말아야 해요."

"(산 정상에 올랐다가) 출발한 지점에 내려오면 그제야 100%의 완전한 성공을 만끽할 수 있는 거예요. 성공 이후에 거기서 얼마나 잘 관리하는지에 따라 성공은 빛날 수도 있고, 퇴색할 수도 있는 겁니다."

"산에서 절대 ’나’, ’개인’은 있을 수 없어요. 혼자 살겠다고, 정상 가겠다고 하면 되겠어요?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면 상대를 배려하게 되고, 상대를 이해하게 돼요. 그러다 보면 좋은 팀이 돼요."



  

[프리즘②] 열여덟 번의 실패 이야기로 ‘거꾸로’ 쓴 자기계발서

▷ 엄홍길 대장은 누구? : 산악인 엄홍길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원도봉산 아래서 성장했다. 부모님이 산에서 음식점을 하셨기 때문이다. 산을 놀이터 삼아 뛰놀던 작은 꼬마 엄홍길은 성장해,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8000미터급 히말라야 16개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완등한 대한민국 대표 산악인이 된다. 영광이 빛나는 만큼 그 긴 여정에는 고통도 시련도 많았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하는 그의 도전은 그야말로 ’극한’, ’무한’의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는 현재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로, 저개발 국가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지원사업에 힘쓰고 있다.

▷ 어떤 책을 냈지? : 엄홍길은 지난 1월 <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책을 냈다. 산 오르기의 고수인 엄홍길이 산을 오르며 얻은 인생의 교훈을 자기 삶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다.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서인 셈인데, 엄홍길은 그것을 ’거꾸로’ 풀어냈다. 그는 이 책에서 화려한 성공보다는 ‘16좌 완등’ 뒤에 숨어 있는 열여덟 번의 실패를 이야기한다. 거대한 자연, 웅장한 산 아래 작고 무력한 인간인 자신을 상기한다. 산이 가르쳐준 것은 낮출수록 높아지는 기적이었다. ’거꾸로’ 자기계발서를 낸 영화 ’히말라야’의 실제 주인공 엄홍길을 만나봤다.

▷ 인터뷰 현장 스케치 : 인터뷰를 위해 서울 장충동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청해왔다. 그가 건넨 병풍식으로 접힌 초록색 명함을 펼치니 그의 작은 ‘도전 포트폴리오’가 펼쳐진다. 완등에 성공한 8000미터 이상 히말라야 봉우리들의 이름이 연도순으로 적혀 있고, 최근 네팔에 짓고 있다는 학교 사진도 실려 있었다. 빛나는 도전의 기록, 하지만 그 사이사이엔 말해지지 않은 좌절, 한숨, 눈물, 재기의 흔적이 조용히 숨어 있을 것이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엄홍길 대장님의 휴먼원정대(2004년 히말라야 등정 중 목숨을 잃은 고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2005년 결성된 원정대)를 소재로 제작한 영화 ’히말라야’가 흥행했죠. 당사자로서 영화를 본 소감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개봉 이후 다섯 번 봤고, 연초에 또 한 번 봤어요. 11년 전인데 저는 아직도 그때 일이 1년 전, 아니 불과 몇 개월 전인 것처럼 생생해요. 영화 장면과 당시 상황이 교차하니 일반 관객들보다 감동이 더 컸어요.





Q 영화를 연출한 이석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서양인의 관점으로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다시 산을 찾는 원정대의 마인드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실제 서양인과 동양인의 관점이 그렇게 다른가요?

본인이 좋아하던 산을 등반하다 죽었으니까 그 자리에 시신을 둬도 상관없다는 것이죠. 물론 저도 그렇게 놔둘 수 있었지만, 박 대원 시신이 태극기를 단 옷을 입은 채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매달려 있었어요. 사람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입에 오르내릴 것이 마음에 걸렸어요. 그 후배와 저 사이의 엄청난 인연과 우정도 이유였지만, 산악인으로서의 자존심,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이유가 그냥 놔둘 수 없게 했어요.





Q 하얀 설원에서 펼쳐지는 따뜻한 휴머니즘이 영화에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책에서도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정상을 찍고 내려왔느냐가 아니라 끝까지 함께 했다는 사실’이라고 끈끈한 동지애를 강조하셨지요.

산에서 절대 ’나’라는 것, ’개인’은 있을 수 없어요. 산은 혼자 오르는 게 아니라, 함께 오르는 거잖아요. 혼자 살겠다고, 정상 가겠다고 하면 되겠어요?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면 겸손한 마음을 갖고, 상대를 배려하게 되고, 상대를 이해하게 돼요. 그러다 보면 하나의 좋은 팀이 돼요. 그래서 늘 훈련할 때 ’하나’라는 생각을 갖도록 강조해요.









입산이라 표현하는 까닭... "산 오를 땐 아래 문명세계 잡념 가지면 안 돼"





Q 1998년 봄 안나푸르나 등정 네 번째 도전에서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쳐 오체투지 하다시피 내려오셨다고요.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신발을 벗어 오른쪽 발을 보여주며) 지금 핀은 뽑았는데 아직도 오른쪽 발목은 장애인이에요. 발목이 움직이지 않아요.





Q 그 후로도 계속 고봉 오르기에 도전하셨는데요. 몸이 멀쩡한 상태로도 오르기 힘든 산을 불편한 몸 상태로 오르신 건데, 무척 고통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발목을 움직이면 아프니까 발꿈치로만 올랐어요. 다리가 부러졌을 때 7600미터부터, 베이스캠프가 있던 4500미터까지 내려온 것 자체가 기적이었어요. 물론 후회도 되고, 고통스럽고, 다리를 아예 못 쓰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죠. 의사는 다리를 너무 크게 다쳐서 앞으로 절대 산에 못 갈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사고 나고 10개월 만에 산에 다시 가서 성공했지요.





Q 책에서, 산을 오름에 있어서 자만을 경계하셨어요. ’정복’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지요.

산뿐만 아니라 자연을 인간이 어떻게 정복하겠어요? 산을 정복할 수 있다면 인간이 산을 제 맘대로, 원하는 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요. 왜 사람들이 산에서 눈사태로 죽고, 낙석 맞아 죽고, 크레바스(빙하나 눈 골짜기에 생긴 깊은 균열)에 빠져 죽을까요?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서 화성도 가는 시대라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지진, 해일, 폭설, 폭염 같은 자연재해는 막을 수 없잖아요. 아무리 첨단 기상 과학 장비를 들여다 놓아도 당할 수 없지요.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지, 정복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겁니다.





Q ’산이 나를 받아들여 줘야 산에 오를 수 있다’고 하셨어요. 산을 일종의 인격체나 신처럼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산에 가면 고개가 절로 숙여져요. 산에서는 돌이든, 얼음이든, 눈이든, 인간이든 다 똑같아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산이 저를 살릴 수도, 다치게 할 수도, 죽일 수도 있으니 선택권은 제가 아니라 산의 신이 가진 거죠.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산이 거부하면 절대 올라갈 수 없어요. 계속 눈 내리고, 바람 불고, 눈사태 일어나면 헤치면서 올라갈 수 있겠어요? 모든 상황이 허락해야 산에 올라가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산이 인간을 선택하고 받아줄 때만 인간은 올라갔다가 살아 돌아올 수 있어요. 그래서 산에 오를 땐 겸손한 마음과 순응하는 자세로 초심의 마음가짐을 잃지 말아야 해요.




      

Q 산 정상에 올랐을 때 기분이 어떠신가요?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이 솟구치죠. 과거 실패한 생각이 떠오르면서 서러워 눈물도 나고요. "엄홍길, 대단하다." "난 참 멋진 놈이란 말이지." 하면서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감격도 순간 반짝하는 겁니다. 이제 내려가야지요. 내려오다가 죽으면, 올라가서 성공한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하산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는 겁니다. 올라온 구간들을 생각하면서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거죠. 출발한 지점에 내려오면 그제야 100%의 완전한 성공을 만끽할 수 있는 거예요.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진정한 성공이 아니란 거죠. 성공 이후에 거기서 얼마나 잘 관리하는지에 따라 성공은 빛날 수도 있고, 퇴색할 수도 있는 겁니다.





Q 목숨을 걸고 하는 도전인데요. 산에 오를 때 꼭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한두 번 가서는 몰라요. 처음엔 자기 능력만 뛰어나면 된다고 생각하죠. 그렇게 여러 과정을 거치고 사고도 나고, 좌절도 겪고, 고통의 눈물을 흘리다보면 산을 바라보는 시선, 태도가 달라지죠. 저는 산에 올라가는 걸 ’입산’한다고 표현해요. 산에 오를 땐 절대 산 아래 문명세계에 대한 잡념을 가지면 안 돼요. 잡념을 품으면 결국 판단이 흐려지고, 사고가 나고 말아요. 당장 이곳에 매진, 몰입해도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 자기만 생각하고 욕심을 갖고 제멋대로 하려 하고, 경거망동하거나 오만하면 안 되는 거예요.









"산은 어린 시절 놀이터... 도전하고 몸으로 부딪히는 과정 즐기는 DNA 생겨"





Q 대장님의 인생 자체가 ’무한도전’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더군요. 어려운 길로만 가셨더라고요. 군대도 일부러 특수부대 UDT로 가셨다고요?

처음에는 육군 입영 통지서를 받았어요. 지금껏 육지에서 뛰어놀았는데, 육군 가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구보든, 행보든, 유격훈련이든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이왕이면 새롭게 물과 바다와 친해지고 싶어서 해군을 지원했지요. 그래서 배를 타게 됐는데, 배가 좀 잘못되는 바람에 폐선돼서 운항을 못 하게 됐어요. 대기발령 상태로 있던 차에 UDT 특수요원 모집 포스터를 본 거예요. 그 순간 ’내가 있을 곳은 저기다’ 생각이 들었죠. 지원해서 6개월간 훈련받으며 고통스러워서 후회도 많이 했죠.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긴데 힘들다고 자포자기하면 안 되겠단 생각으로 이겨냈어요.





Q 2002년 한국외국어대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해 늦깎이 대학생 생활도 하셨죠.

중국 티베트 쪽 산을 다니다 보니까, 언어소통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답답했어요. 기회가 되면 중국어를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지요. 물론 힘도 많이 들고 한참 어린 동생들과 공부하려니까 힘들기도 했지만, 동기들이나 교수님이 많이 도움 주고 신경도 써줘서 무사히 학위를 마칠 수 있었어요.





Q 그런 도전정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세 살 때부터 원도봉산 산골짜기에 살았는데, 산에서 체력과 정신력만큼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성장했어요. 산 자체가 어린 시절 저의 놀이터였기에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놀았죠. 자연에 적응해 살다보니 계속 도전하고, 새롭게 계획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안 되면 몸으로 부딪혀서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DNA가 형성된 것 같아요.




        

Q 요새 중년층 사이에서 등산이 붐인데요. 이 현상을 어떻게 보고 계세요?

굉장히 좋은 현상이죠. 처음 등산 붐이 일어난 게 IMF 때였어요. 정리해고 되거나 권고사직 당한 사람들이 마음의 위안과 용기를 얻고, 위기를 극복했던 장소가 바로 산이에요. 그때를 기점으로 등산 인구가 부쩍 늘어났지요. 보통 산을 오르는 게 힘들다고만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산에 오르다 보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나를, 상대방을, 주변을 생각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돼요.




          

Q 현재 상명대 석좌교수로 계신데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등산을 시키신다고요?

네. 학과도, 성별도, 학년도 다른 아이들이 산에 갔다 오고 나서 수업하면 더 융합이 잘 되고 서로 가까워져요. 일반 수업할 때와 등산하러 갔다 왔을 때 학생들끼리도 친숙도가 확 달라요.









"산이 나를 살려서 내려보낸 건, 내가 받은 것을 나누고 갚으며 살라는 뜻"





Q 16좌를 완등하시고 17좌 도전으로서 엄홍길휴먼재단을 통해 네팔 히말라야 오지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을 위해 16개의 학교를 짓겠다는 꿈을 밝히셨습니다.

요즘 그것 때문에 네팔에 자주 가요. 지금까지 아홉 개의 학교를 완공했고, 2월 중순 10번째 학교가 준공해요. 어디에도 그런 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곳에 학교 건물을 지으니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요. 처음엔 함께 등반하다가 목숨을 잃은 셰르파를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에 짓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학교가 절실하게 필요한 오지들에도 짓고 있습니다.





Q 엄홍길휴먼재단에서 하는 그밖의 사업들은 무엇이 있나요?

국내에서는 청소년들이 자연을 통해서 도전정신이나 인내심을 기르게 하려고 대학생 1만 명을 선발해서 ’평화통일대장정’을 열고 있어요.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부터 서쪽 임진각까지 155마일, 약 360km 정도 되는 거리를 15박 16일 동안 걸으면서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는 거지요. 안보의식도 갖게 되고,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갖게 되니까요. 국외로는 교육사업 지원과 의료 봉사활동을 주로 하고 있고, 유가족(산을 오르다 목숨을 잃은 동료 대원들의 유가족) 지원사업도 벌이고 있습니다.





Q 이런 활동들은 살아남은 자가 지녀야 할 책임감에서 연유한 것일까요?

산이 저를 살려서 내려보낸 것에는 분명, 산이 이렇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제가 받은 것을 남과 나누고 갚으며 살라는 뜻이 있다고 생각해요. 히말라야 산이 저에게 준 깨우침이 17좌 도전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되었어요.





Q 살아오면서 끝없이 도전을 해오셨는데요. 그렇다면 대장님의 다음 도전, 18좌는 어디입니까?

생각은 있지만 일단 17좌를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시작할 겁니다. 네팔에 16개 학교를 짓는 게 목표인데, 짓다 보니 학교만으로는 부족한 겁니다. 왜냐하면 학교가 워낙 오지에 있고 멀리서 통학하는 학생들도 있어서 기숙사도 만들어야겠고. 병원도 짓고, 의료시설이 열악하다 보니 의료진 숙소도 만들어야 하고. 만에 하나 위급한 상황에 쓸 수 있도록 헬리콥터장도 필요할 것 같아요. 학교 짓고, 홍보하고 손 털 수도 있지만 유지보수도 중요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일이 계속 늘어나고 있네요.(웃음)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북DB 2016.2.18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6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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