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터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혜진 Jun 06. 2021

더글라스 케네디 "미국, IS 만드는 데 일조"

<비트레이얼> 출간 더글라스 케네디 인터뷰



더글라스 케네디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페이지 터너(page turner)’ 작가다. 즉 그의 작품은 독자들이 ‘책장 넘기기 바쁠’ 정도로 흥미진진한 것이 특징이다. 과거 영화와 잡지에 관여했던 경력답게 ‘읽히기 위해 쓰는 글’이 그의 신조다.

성공에의 욕망, 사랑, 실패, 배신을 주로 다룬 그가 발표한 10편 이상의 소설은 22개 나라에서 번역되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이 지닌 미덕은 재미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그의 소설을 읽으며 흥미진진함에 취해 있던 독자는 이야기의 끝에서 단순하지만 강렬한 질문을 덤으로 얻어가게 된다.

1월 말 발표된 그의 신작 <비트레이얼>은 로맨틱한 모로코 여행 와중에 갑작스레 남편이 실종된 미국 여성 로빈의 모험담이다. 이번 소설 역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영화를 보는 듯한 생생한 장면 묘사와 속도감 있는 이야기가 특징이다. 실종된 남편을 찾아 헤매던 중 로빈은 숨겨져 있던 비밀과 마주하게 되고, 거의 죽을 뻔한 위기에까지 놓이기도 한다. 숨 가쁜 모험의 여정에 에사우이라, 카사블랑카, 사하라 사막, 와르자자트 등의 모로코 도시 풍광을 떠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독자들은 이야기의 끝에서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는 외부가 아닌 우리 안에 있으며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라는 메시지에 도달하게 된다.

1월 말 한국을 방문한 더글라스 케네디. <빅 픽처>와 <템테이션>을 흥미롭게 읽은 터라 그를 만나는 일은 마치 그가 쓴 소설 속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도 들었다. 커피숍 입구에서 짧은 인사를 나누고 테이블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사이에도 사인을 요청하거나 함께 사진 찍기를 청해오는 팬들이 있을 만큼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신작<비트레이얼>과 그의 글쓰기론을 비롯해 불우한 어린 시절과 결혼 실패의 경험이 그의 인생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그의 작품과 뗄 수 없는 사적인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내가 사랑하는 나라 모로코, 모험에 가장 완벽한 장소"



Q 한국에서 인기가 많다. 이번이 몇 번째 방문이며 기분이 어떤가?

두 번째인데, 언제나 한국에 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독자들과 기자들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웃음) 독자들이 내 작품에 대해 해주는 말들에서 감동받기도 한다.



Q 신작<비트레이얼>의 배경은 모로코다. 아랍문화의 다양한 면모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더라. 기존에 주로 배경삼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문화권을 택한 계기가 있었나?

<비트레이얼>은 미국 여성 로빈이 생소한 이슬람 문화권에 떨어져 벌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슬람 테러리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모로코엔 미국, 유럽을 비롯한 여러 이국적인 문화가 섞여 있다는 점이 좋았다. 또한 모로코는 내가 사랑하는 나라이며 이번 작품이 ‘모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만큼 모험하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라고 생각해서 고르게 됐다.



Q 소설 쓸 때 배경이 되는 도시를 먼저 정하는 편인가?

중심 캐릭터를 먼저 정한다. 주로 도시와 캐릭터가 같이 정해지긴 하지만, 나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하는 점에 관심이 간다. 실상 내가 쓴 모든 이야기는 문제에 관한 것이며 문제가 없으면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비트레이얼>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40대의 여성이다. 그녀는 지금이 아니면 아기를 갖기 힘든 상태다. 하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똑똑하고 매력적인 남자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 문제 상황이 이번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Q 여행을 즐기고, 한때 여행작가로도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다면?

전에는 가끔 했는데 지금은 여행작가 활동을 하지 않는다. 지금껏 수많은 나라를 가봤지만 제일 좋아하는 나라나 여행지는 따로 없다. 내가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곳이 좋고, 거기가 어디든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에 가는 것이 흥분된다.



Q 미국에 비판의 날을 세우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난 미국 문화를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이 있다. 특히 정치는 엉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보수파는 종교를 정치에 이용해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피임, 낙태에 대해서 반대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미국은 세계에 좋은 일도 했지만, 끔찍한 실수도 많이 저질렀다. 그중 하나가 이라크 전쟁이었다. 미국이 ‘ISIS’( IS의 국제 명칭)를 만드는 데 일조한 셈이다. 이 책(비트레이얼)에서 말하고자 한 것도 테러리즘이 아랍 세계 일부의 일이라는 점이다. 작품의 배경인 모로코에서는 ISIS를 이슈화하길 꺼려해 매우 잠잠하다. ISIS는 괴물이자 테러를 일삼는 근본주의자들의 집단일 뿐이다. 미국은 이 문제 더 잘 대응해야 했지만, 부시 정부는 이 점에서는 매우 무지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미국을 좋아하고, 우리의 문화적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자국 비판에 대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계속해서 미국이 한 일들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북한이나 동독 같지는 않으니까. 또한 미국 작가라면 미국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할 일의 일부라 생각한다. 비판도 그 나라를 사랑하고 열정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미국 정치는 엉망... 도널드 트럼프는 종교를 정치에 이용"



Q 전작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때와 마찬가지로 <비트레이얼>의 주인공도 여성이다. 여성의 심리를 잘 아는 것 같다.

아마도 내 전 부인은 좀 다르게 생각할 것 같다.(웃음) 소설을 쓸 때 먼저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가 보려 하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먼저 살핀다. 매우 복잡하더라도, 그것이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인물이 여자든 남자든 간에 그들이 가진 문제가 뭔지를 명확히 하려는 편이다. 무엇이 그들을 걱정하게 하는지, 무엇이 그들을 분노하게 하는지, 그들의 시각으로 보다 보면 그들의 문제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그들이 가진 문제점을 이야기로 이끌어가는 데 이용하는 편이다.

비트레이얼에서도 로빈은 남편 폴이 사라진 후 모로코를 떠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폴을 찾아다닌다. 사실 그녀의 행동 바탕엔 죄책감이 있었다. 자신이 폴에게 상처를 줘서 그가 자신을 떠났다는 죄책감, 그리고 폴에게서 연상되는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그녀에 대한 공감이 이야기를 이끌었다.



Q 정말 다양한 분야의 주제가 등장한다. 언론, 경제, 예술, 관광, 문화, 연예계 등 분야가 다양하며 디테일이 살아있다. 주로 어떻게 자료를 얻는지 늘 궁금했다.

나는 모든 일을 관심 있게 바라보려 하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다. 기억력이 매우 좋은 편이다. 십 년 전에 어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는지, 몇 시에 봤는지, 누구랑 봤는지까지 다 기억한다. 작품을 쓰며 특정 주제에 대해 알 필요가 있을 때는 빠르게 조사를 하기도 한다. 다만 너무 많은 양의 조사를 하면 책 안에 녹아들지 못하고 도리어 방해가 되니, 필요한 자료만 찾아서 본다.비트레이얼을 쓰기 위해서는 여행을 했다. 이번 책에 등장한 장소는 내가 직접 가본 곳들이었다.



Q <비트레이얼>에 등장하는 도시나 장소들, 카사블랑카, 와르자자트, 사하라 사막, 에사우이라 등의 인상은 어땠나?

에사우이라는 세 번 정도 방문했고, 카사블랑카는 다섯 번, 사하라 사막은 두 번, 와르자자트는 네 번 정도 갔다. 일단 카사블랑카는 매우 현대적이면서 역사적인 도시다. 샤넬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과 전통의상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공존하며 매우 인상적인 대비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그에 비해 에사우이라는 훨씬 작고 오래된 중세적인 도시의 기운이 강한 곳이다. 길을 걸어다니다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음침한 느낌이 있어서 무서운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사하라 사막은 대서양이 들어오므로 해변과 언덕이 만나는 지점이 있어서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든다. 매우 개방된 동시에 비어 있는 느낌이랄까. (사하라 사막은) 이번 소설에서 로빈이 사고를 당하는 장소이기도 한데, 현지인이 아니라면 모래벌판이 모두 똑같아 보이니 방향을 알 수 없어 길을 잃기 쉽다. 그래서 반드시 운전사를 구하고 4륜 왜건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안 그러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



Q <비트레이얼>에서 로빈은 그의 남편 폴에게서 계속 아버지의 존재를 떠올린다.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자녀들은 어린 시절의 상처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일단 나는 프로이트에 동의한다. 사람은 성인이 되면서 어린 시절 부모님의 행동을 반복하거나 피하게 된다. 작품 쓸 때도 나는 캐릭터마다 그들이 어린 시절에 상처받은 지점이 어디인지를 생각하는 편이다.





"소설의 직접적인 질문, 전 세계 통하는 보편성 확보 열쇠"



Q 작품에서 언제나 대중의 관심을 끄는 섹스, 사랑, 음모, 성공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런 주제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대학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매우 우수한 학생이었다. 교수님은 소설 창작 수업에서 "네 작품은 재밌긴 한데 던지는 질문이 너무 직접적"이라는 평가를 했다. 맞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직접적인 질문이 전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보편성을 확보하는 열쇠였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내 소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여긴다. 내 모순을 알아차릴 때마다 그것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려 하는 편이다. 왜 다른 사람과 살아가는 게 힘들까? 나는 왜 항상 만족하지 않는 삶을 살까? 우리는 진정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내 책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싶다.



Q 주인공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부부 관계가 깨어지기도 하고, 새롭게 부부가 되기도 한다. 결혼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나는 매우 불행한 결혼으로 맺어진 가정에서 자랐다. 어릴 때 내 부모님은 늘 부부싸움을 했다. 그때 불행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시절이 지금 내 소설에 풍부한 소재를 제공하기도 했다. 소설가란 직업이 좋은 게, 아무리 나쁜 일을 겪더라도 모두 작품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이다. (웃음) 아마 그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아주 이른 시기에 내 부모가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결혼이 인생에 깊게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Q 산문집 <빅 퀘스천>에서 ‘우리의 삶이란 필연적으로 위기와 동행하며 본질적으로 비극일 수밖에 없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삶이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라기보다는 인생에는 비극적인 면이 있다. 비극이라면 ‘우리가 모두 죽는다는 것’ 그것 하나다. 삶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이것들에 대응하는지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있는 내 가장 친한 친구는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막내아들이 2년 전 헤로인 중독으로 죽었다. 사랑하던 아들이 죽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용기를 내서 강하게 견뎌냈다. 그녀는 슬픈 일을 극복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또 내가 아는 한 캐나다인이 있다. 그의 결혼생활은 별로 행복하지 못했는데, 부인이 외도를 해서 이혼하게 됐다. 그는 큰 충격을 받았고 분노했다. 하루는 그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충고를 하기도 했다. “결혼생활이 행복했느냐”라고 물으니 “그렇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러면 부인이 배신한 것에 그렇게 분노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라고 물으니 “그렇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6개월 후에 직장에서 해고되기까지 했다. 이런 사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삶에서 비극적 사건이나 화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 상황에서 당신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Q 현재 쓰고 있는 다른 소설이 있다면 한국 독자들을 위해 간략해 소개해달라.

새 소설을 쓰고 있다. 미국의 1970~1980년대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아마 세 권으로 출간될 것 같다. 45년에 걸친 한 미국 가족의 일대기인데, 가족의 비밀, 오랜 가족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다. 미국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전 세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북DB 2016.2.26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63761

매거진의 이전글 '무한도전' DNA 엄홍길, 그가 오를 17번째 봉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