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아있다>를 보고
나는 좀비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차라리 유령이나, 강시가 더 좋다. 좀비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 걸로 안다. 가령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끈 '킹덤'이나 '월드워 Z', '부산행' 같은 영화들이 그런 류일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좀비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세 작품 모두 보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보았다. 왜 보았느냐? 유아인이나 박신혜 배우를 좋아하거나 감독을 좋아해서도 아니고 코로나 시즌이라 마땅히 구미를 당기는 작품이 없었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기엔 한산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만 한 게 없었기에 나는 <#살아있다>를 보게 되었다. 포털 검색 사이트에서 이 영화 제목을 치면 제법 많은 악평이 달려 있다. 메가박스 어플에 영화 평점도 7점으로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박스 오피스 1위.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빠'는 좀 shy 한데 '까'가 극성한 영화라고 봐야 하나? 나도 모르겠다.
모든 재난 영화가 그렇듯 시작은 아주 평화롭다. 주인공 오준호(유아인 분)는 게임 스트리머로 '배틀그라운드'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뉴스 속보가 터져 나온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일군의 사람들에게서 폭력적인 성향이 보이고 있고, 이들 때문에 도시가 마비되었다는 것이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과 혈액이 접촉되면 수시간 내 눈이 충혈되고 사람을 공격하는 폭력적 성향을 보이게 된다. 영화 속에서는 '좀비'란 표현을 쓰지 않는데, 사실상 좀비다. 가족들은 준호에게 자신은 안전한 곳에 대피해 있으니 절대 밖에 나오지 말라고 하고, 아버지는 준호에게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마지막까지 오준호에게 지상명령이 된다.
아파트 밖에선 좀비 떼가 멀쩡한 사람을 공격해서 좀비로 만들어버리고, 이들은 이내 준호가 있는 집의 문을 따고 쳐들어오려고 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문이 일부 열리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영화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흘러가고 준호는 자신의 상황을 영상으로 담아 #살아있다는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올려 구조 요청을 보낸다. 그렇게 고립된 상태로 시간이 흐르고 먹을 것도 떨어지면서 절망이 깊어갈 때쯤 오준호는 삶을 포기할 생각까지도 한다. 그 순간 오준호의 아파트 맞은편에 생존해 있는 김유빈(박신혜 분)이라는 17세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집에 온갖 등산 장비를 갖추고 비상식량도 보유하고 있었기에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박신혜 배우는 영화 시작 38분 후 첫 등장한다.
나 혼자 살아 있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이 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나 보다. 아무튼 그렇게 둘은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힘을 모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온라인 게임 배틀 그라운드가 생각났다. 적이 나타나면 총이나 칼을 사용해서 적을 무찌르고, 비상식량을 먹고 마시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승자가 되는 배틀 그라운드.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게임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 든다. 다만 배틀 그라운드 속 승자가 '마지막 1인'이라면 이 영화는 그걸 부정한다. 혼자 #살아있다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살아있다가 되어야 한다고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배틀로얄 게임 속에 살던 오준호는 비로소 현실 속에서 좀비들과 싸워나가면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존재로 거듭난다. 좀 웃기게 해석하면 솔로 플레이를 즐기던 오준호가 듀오 플레이로 갈아탄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아파트라는 일상적 공간 안에서 좀비들과 싸우는 설정이 이 영화가 제공하는 묘미다. 그 밖에도 배우들의 감정 연기도 칭찬을 받는 모양새다. 다만 이 영화는 그 장점을 상쇄하는 너무나 많은 단점을 갖고 있으며 몇 가지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떡밥을 던져놓고 회수하지 않는다
2) 세계관이 명확하지 못하다(좀비들은 왜 뛰다가 걷다가 하는가, 전염병은 어떻게 발생되었는가 설명 부족)
3) 비슷한 작품이 많다. (부산행, 엑시트, 각종 웹툰 등)
4) 컨셉만 있고 플롯은 없다.
아쉬움을 많이 남긴 영화였지만 그래도 필자는 최악은 아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에 덧붙여 요즘 코로나 팬데믹과 이 영화 속 상황이 많이 겹쳐 보인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바이러스 전파로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어버린 상황, 바이러스의 습격을 피해 집에 틀어박혀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 같았다. 상황이 임시적으로 종료되는 마지막 상황은 우리의 마음속에 작은 희망을 심어주는 것 같은 느낌도 주었다. 아마 영화를 시작하던 시점엔 현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을 텐데 기묘한 우연이다. 우리 인류가 코로나 팬데믹을 성공적으로 종료하고 마음껏 웃고, 걷고, 대면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와주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