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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Sep 02. 2022

사우스 파크와 조롱

사우스 파크: 비거 롱거 앤 언컷, 포스트 코로나, 코로나의 귀환

타인을 공격하는 유머에는 위험이 존재한다. 드러난 결점을 공격하는 방식은 그 순간에는 쉽게 웃음을 만들지만,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조롱은 대상이 속한 인종, 나라, 계층, 혹은 대상이 가진 특징에 대한 멸시로 이어질 수 있어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특정 대상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아예 검열하는 것은 더욱 바보 같은 일이다. 다른 점을 가진 대상과 접촉하지 않을 것처럼 넘어가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게 만든다. 그보다 올바른 방법은 성역 없이 모두를, 스스로까지 포함하여 조롱하는 것이다.


<사우스 파크: 비거 롱거 앤 언컷> - Mountain Town

사우스 파크 시리즈는 모두를 어디까지 조롱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시리즈이다. 대충 그린 단순한 그림체에 잔혹하고 선정적인 내용을 담아, 20년이 넘는 역사 동안 최선을 다해 조롱하고 있다. 긴 역사 사이에 변한 사회를 따라 시원하게 공격하던 초기의 형태가 의도적 설정과 신규 캐릭터로 비꼬는 방식으로 변형되었지만, 에릭 카트먼 같은 기이한 캐릭터를 필두로 한 특유의 유머는 아직 남아있다. 시리즈의 정수를 보여주는 뮤지컬 영화 <사우스 파크: 비거 롱거 앤 언컷>(1999) 이후, 시대적 변화에 맞춰 <사우스 파크: 포스트 코로나>(2021), <사우스 파크: 코로나의 귀환>(2021) 두 편의 OTT 영화로 돌아와 성역이 없는 코미디 영화의 재미를 보여주었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사우스 파크: 비거 롱거 앤 언컷> - Up There

조롱의 대상은 가장 가까운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매체에서 자주 접하여 가깝게 느껴지는 할리우드 배우들과 독재자들, 제작 국가의 이웃나라인 캐나다 사람들, 가장 많이 보이는 종교인 기독교 등이 그렇다.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편견들과 단점들을 더 과장해서 표현하여 편견의 대상과 편견을 가진 이들 모두를 비꼰다.

<사우스 파크: 비거 롱거 앤 언컷>은 독특한 등장인물로 이런 점을 담아낸다. 지옥에서 동거하는 사탄과 사담 후세인은 등장부터 우습다. 사탄이 가진 험악한 인상과 거주자들을 고문하는 것은 익숙한 이미지와 같지만,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Up there를 부르며 감성적인 면모를 보인다. 사담 후세인은 시대를 대표하는 독재자이자 사탄의 연인으로 그에게 사랑을 노래하며 한없이 한심하게 그려진다. 그 외에도 불필요한 전쟁이 벌어지자 참전하는 예수나 게스트를 체포하는 데에 가담했다가 죄책감에 자살하는 코난 오브라이언처럼 인물들을 독특하게 다룬다. 다른 두 편의 영화에서는 코미디언 지미의 차별적인 농담들로 이를 다뤄내었다.


<사우스 파크: 포스트 코로나> - 위풍당당한 안티 백서 클라이드

시대에 맞춰 새로운 조롱의 대상을 찾아내기도 한다. 첫 편의 경우 아직 최악의 테러를 발생시키기 전이었음에도 악명을 떨쳤던 사담 후세인이 제격이었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과 해결을 다룬 다른 두 편에서는 당연하게도 중국을 조롱한다. 다만 중국의 과도한 검열과 항의를 고려해 오히려 이야기에서는 무시하는 방식을 활용하였다. 그 외에도 최근 몇 년 동안 발생한 새로운 소재들을 첨부한다.

<사우스 파크: 포스트 코로나>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에 대한 양극단 모두를 조롱한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개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탄압하여 격리를 벗어나려는 시민을 총살하는 국가를 보여주면서도, 주변 사람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을 고려하는 이기적인 모습도 동시에 다룬다. 특히 40년이 넘는 코로나 유행 동안 백신을 맞지 않아 마을 전체를 가두는 안티 백서 클라이드나, 이 또한 개개인의 권리이기에 강제로 맞히지도 못하는 상황은 무식한 사람에게 반지성주의라는 근사한 별명을 지어주는 시대를 잘 담아낸다. 이야기가 그대로 이어지는 <사우스 파크: 코로나의 귀환>에서는 전작의 비판하는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비판 대상에 NFT 장사꾼과 그 구매자들을 새로운 조롱거리로 추가했다. 판매자의 아무 의미없는 연설에 휘말려 가지고 있던 것들을 날려먹는 모습은 너무나 익숙했다.


<사우스 파크: 비거 롱거 앤 언컷> - BLAME CANADA

시대를 넘어 교훈을 주는 조롱도 있다. <사우스 파크: 비거 롱거 앤 언컷>의 사건은 어린이들이 테렌스와 필립의 욕설을 모방하며 시작된다. 아무 생각없이 독한 매체를 따라하는 것에는 아이들의 잘못도 있지만, 그 이전에 부모들이 아이를 방치했으며, 교사는 아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It's Easy, M'Kay). 심지어 훈육 대신 욕설을 못하게 하는 생체 시술을 우선적으로 진행한다. 상황이 꼬여가고 있다는 점은 모두가 인지했지만, 비판의 대상을 자신으로 놓지 않았기에 어른들은 모든 일에 대해 자연스레 캐나다를 비난한다(Blame Canada).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모이며 캐나다와 전쟁이 발생하고, 혼란을 틈타 사탄과 후세인도 지상으로 올라오려 시도한다. 그 와중에 선동에 앞장선 인물은 광기와 하나가 되어 한 자리를 차지한다.

결국 다른 사람과 광기에서 눈을 돌려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사건이 해결된다. 모두를 까는 이야기에서 전해지는 자신과 주변부터 돌아보라는 메시지는 정말 단순하고 익숙한 메시지이만 그 전달 방식으로 인해 의미가 커져 여운을 남긴다.


<사우스 파크: 비거 롱거 앤 언컷> - 모두 똑같이 생긴 캐나다인들

그리고 시리즈 또한 미디어와 스스로를 비판하는 점을 잊지 않는다. 등급 매기는 사람을 조롱하기 위해 딱 399번의 욕설을 사용한 것이나 OTT 플랫폼으로 공개되면서도 기존과 거의 비슷한 곳에 맥스와 플러스를 붙이며 OTT 플랫폼을 조롱한다. 테렌스와 필립의 저급한 화장실 유머와 욕설로 가득 찬 영화는 공격성만 올라가는 미디어에 대한 비판이자 팬이 아닌 사람들이 보는 사우스 파크 시리즈의 이미지에 대한 비판이 된다.


세 편의 영화를 비롯한 사우스 파크 시리즈는 생각 없이 볼 때는 찰진 욕설과 비난, 그 욕설과 비난을 흥미롭게 담은 노래들로 즐겁게 볼 수 있고, 깊게 볼 때는 장면마다 까는 대상들을 떠올리며 즐거워진다. 소위 차별을 금지하려는 사람들은 특정 사람들을 성역화하며 그들에 대한 희화화까지 금지한다. 하지만 비판의 배제는 존재 자체를 배제하며 거리를 두게 하며, 그보다 비판과 풍자의 대상으로 시작해야 자연스레 다양성을 포용하며 문제점을 개선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조롱이 누락되어 있는 게 너무나 아쉬웠으며, 앞으로의 더 많은 조롱을 기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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