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과의 전쟁이 선포되었다

'가스라이팅' 당하지도 가하지도 말자

by 하트온


요사이 유난히 귀에 자주 들려오는 단어, ‘가스라이팅(gaslighting)’. 오늘은 맘먹고, 이 단어를 심층 검색하였다. 최근 몇 년간 한국과 미국에서 대중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단어인데, 그 배경이 무엇일까?


일단, 나처럼 문화적 사각지대에 살아서 혹은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가스라이팅’의 정확한 뜻을 알고 있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아주 짧고 굵고 간단히 설명을 해 보자면.


가스라이팅은 ‘상대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작 세뇌’다.


이 말의 유래는 ‘가스등’이라는 1938년 영국 극작가가 쓴 심리 스릴러 연극 작품에서 시작된 말이라고 하며, 1940년 영국과 1944년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끈 바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내의 재산을 노리는 남편이 아내를 스스로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게끔 몰아가는 과정에서, 고의로 집안의 가스등들을 깜박거리게 만든 후, 불이 자꾸 깜박거리지 않냐고 하는 부인에게 전혀 그렇지 않다고 계속 주장해 결국 부인은 스스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믿게 된다는 이야기다. The phrase originated from a 1938 mystery thriller written by British playwright Patrick Hamilton called Gas Light, made into a popular movies in 1944 starring Ingrid Bergman and Charles Boyer. In the film, husband Gregory manipulates his adoring, trusting wife Paula into believing she can no longer trust her own perceptions of reality. In one pivotal scene, Gregory causes the gaslights in the house to flicker by turning them on in the attic of the house. Yet when Paula asks why the gaslights are flickering, he insists that it’s not really happening and that it’s all in her mind, causing her to doubt her self-perception. Hence the term “gaslighting” was born.(https://www.vox.com/first-person/2018/12/19/18140830/gaslighting-relationships-politics-explained)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트럼프의 대중을 상대로한 정치 전략을 비하하는 단어로 쓰이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퍼졌다고 하며, 2018년, 옥스포드 사전이 뽑은 가장 인기있는 (popular) 단어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가정과 사회 생활, 혹은 각종 관계안에서 겪는, 지금까지 뭐라 이름붙여야 할지 몰랐던 심리적 고통의 이유를 속시원히 설명해 주는 '사이다' 단어로 각광받고 있는 듯 하다.


결국 '가스라이팅'이 하는 역할은 ‘네가 문제야’라고 계속 말해 상대방이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만큼 가스라이팅 하는 주체 -가스라이터-에게 더욱 의존하고 끌려다니게 만든다.


이야기를 다 듣고 정리해보니, '가스라이팅'은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고 끌고 다니고 싶은 사람이 상대를 통제하기 위해 쓰는 아주 익숙한 전략이다.


일본은 압제의 시간 동안 한국인들은 맞아야 정신 차리는 나쁜 습성이 많은 민족이므로 일본어를 말하게 하고 일본 이름으로 바꾸게 하여 더 훌륭한 일본 시민으로 거듭나게 도와주겠다는 ‘민족 정신 말살 정책’이라는 ‘가스라이팅’을 대대적으로 했고,
해방 후 정권을 잡은 독재자들은 전 국민을 상대로 ‘빨갱이 위협에 처한 가난한 국민들을 위해 안보를 튼튼히, 잘 먹고 잘 살게 만들어준 대통령/리더 말에 복종하라고 ‘가스라이팅을 했고,
수많은 직장 상사와 교수들은 나한테 잘 보이고 충성하면 너 같은 뭔가 많이 부족한 - 혼자 두면 도태되고 말 - 인간도 덮어주고 이끌어서 회사 및 학계에 발붙이게 해 줄 테니 바짝 기라고 ‘가스라이팅’,
시부모는 제대로 친정에서 가정교육 못 받은 너 같은 모지리를 우리 '뼈대있는 집안'에서 받아줘 가풍을 전수해 줄테니 납작 엎드려 그대로 똑같이 배워 시부모와 남편 봉양을 잘하라고 며느리들을 ‘가스라이팅’해왔고,
부모들은 너같이 게으르고 혼자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애를 다 너 잘되라고 부모가 힘써 뒷바라지해주고 스펙 만들어 주고 있다고 자녀들을 ‘가스라이팅’하고 있다.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내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휘두르는 일종의 ‘갑질’에 다름없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메타포를 이해하는데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긴 했으나, 이것을 이해한 지금, 나는 우리 문화가 이렇게 약자를 괴롭히는 교묘한 방법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분석해 내는 것이 매우 반갑다. 아마도, 이런 심리적 학대를 당하며 힘들었던 누군가가 이 '단어'를 쏘아 올렸을 것이고, 이것이 자신을 평생 괴롭히는 것이었음을 깨달은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이 이 단어를 지금 여기저기서 '미투'하며 일어서게 만드는 것이리라.


나는 나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하는 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한 말과 쓴 글에 대해 계속 돌아보며 ‘네가 한 말이 옳은 것 맞아? 누군가 네가 어릴 때 주입한 거짓말일 수도 있어.’라고 곱씹는 경향이 있다. 나라는 사람을 이룬 부모와 주변 사람들, 내가 속했던 사회의 문화, 사고의 영향에 대해 나는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타국에서 대학원 생활, 직장 생활을 하며 타국 사람들과 많은 문화 사고 충돌을 경험하고 더 그렇게 되었는지 모른다.


좋은 점도 있고 좋지 않은 점도 있다.


좋은 점은 나를 계속 돌아보고 자아성찰을 끊임없이 한다는 점.

나쁜 점은 점점 내 생각을 주장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지고 있다는 점.


나를 믿지 못하는 건 전반전으로 좋지 않은 일이겠으나, 덕분에 나는 내 인생의 시간들을 샅샅이 점검하며, 내가 '가스라이팅'을 당한 적은 없는지, '가스라이터' 역할을 한 적은 없었는지 꼼꼼히 훑어보고 있다. 나에게 '가스라이팅'을 가한 부모, 교수, 교사들,... 에게 원망을 품으려는 순간, 동생과, 자녀들에게 말을 함부로 했던 시간들이 나를 습격한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 가스라이터 역할을 하는 사람, 이렇게 명확히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누구나 누군가 나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를 통제하고 싶은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특히 자녀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내가 결코 '가스라이터'라는 이름에서 100% 완벽하게 자유롭기 힘들다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던, 모든 과거의 경험은 뒤로 하고 새로 시작해 보자.


‘내가 뭔가 잘못된 인간이 아닐까, 내가 이 사람들에 비해 너무 모자란 건 아닐까, 내가 느끼는 게 너무 예민하거나 비정상적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의 고통을 당하지도 말고, 약자에게 뒤집어 씌우지도 말자.


'가스라이팅'에 대항하는 무기를 우리는 이미 소지하고 있다.


‘네가 뭔데!'

'너나 잘해!’

‘나나 잘하자!’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할 일, 내 미래는 내가 알아서 책임집니다!'

'나는 나를 위해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줄 아는 건강하고 성숙한 어른입니다.'

‘함부로 평가질 재단질은 무례한 겁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지금은 ‘가스라이팅’과의 전쟁이 선포된 상황이라고 본다.


한동안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지겹게 듣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너무너무 진부해질 때쯤, 유행 지난 낡은 코트처럼 아무도 입으려 하지 않게 될 때쯤, 우리 가정과 사회 안의 각종 ‘가스라이팅들’이 깨끗이 청소, 소멸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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