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야기 2
어떻게 이 어려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암담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 이 순간, 나는 힘을 얻기 위해 '토니 라빈스'의 인터뷰를 떠올려 본다.
'토니 라빈스'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를 덧붙이자면, 그는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고 4번이나 아버지가 바뀌는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라며, 약물 중독자 어머니에게 심한 학대를 당하다가, 17세에 집을 가출해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과거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그의 과거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일어나 자신처럼 학대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변화 심리학의 최고 권위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심리 치유를 도왔을 뿐 아니라, 스스로가 수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성공적인 삶의 본보기가 되어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또한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작 '무한능력(Unlimited Power)',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Awaken the Giant Within)'의 저자이기도 하며, 유명 운동선수, 프로 선수팀, 국가 대표팀, 연예인, 대기업 CEO들, 정치인, 고위 관료, 전-현직 대통령들까지 찾아가 조언과 상담을 구하는 이 시대 '지혜의 샘물' 같은 존재다.
나는 그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그가 그를 학대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할 때 얼마나 담담하고 객관적인지에 한 번 놀라고, 그 학대의 경험이 자신을 무너지게 한 인생 실패의 이유가 아니라, 자신이 과거의 자신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의미 있는 일을 하고픈 열정,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준 계기로 설명하는 그의 긍정성에 두 번 놀란다. 그는 어머니를 자신에게서 분리해 낸 사람이며, 자신의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 경험과 젊은 날 역경의 순간들을 치유와 회복 성장 스토리로 재구성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다시 세우고,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데 매우 성공한 훌륭한 사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7omHm_LPCsk
나는 '토니 라빈스'를 '완전한 아버지 장례식' 과정을 끝까지 이끌어 가는데 나의 멘토로 삼으려 한다.
나는 이 순간, 내 할아버지의 집안, 내 아버지의 핏줄에서 나를 분리할 것을 선언하고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감정을 최대한 빼고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소설 형식을 조금 빌려 쓰려한다. 극 중 인물의 하나로 만드는 차원에서 내 아버지의 이름을 '마점태'(가명), 내 할아버지의 이름을 '마강수'(역시, 가명)라고 부르겠다.
[ 마강수, 마점태의 아버지]
마강수의 직업: 감 재배 농부
마강수의 고통: 너무나 사랑하던 첫 자식의 죽음을 경험. 자식의 죽음이 불러온 아내의 신경 쇠약. 아내와 사이가 매우 나쁨.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낸 적이 있는데,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두 분은 거의 얼굴만 보면 싸우는 수준이었다.
마강수의 평소 성품: 자상하고 온순했다. 적어도 며느리였던 엄마와 손녀인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그랬다. 몸 약한 엄마가 갓난아기와 나를 돌보며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는 나를 잠시 봐주겠다고 시골로 데려갔는데 엄마는 그때 할아버지가 너무나 따뜻하고 고맙게 느껴졌다고 했다. 나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할아버지의 등이 생각난다. 읍내 장터에 나가지 않는 한 과자며 사탕 같은 도시 아이들이 찾는 먹거리를 구할 수 없던 시절의 시골에서 할아버지는 내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을 이집저집 다니며 물어물어 구해주곤 하셨다. 그런 시간들 내내 나는 할아버지 등에 업혀 있었다. 그 기억이 너무나 따뜻하고 좋았다.
마강수가 그의 아내와 자식들에게 준 고통: 나는 본 적이 없는 모습이지만, 할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선지 술을 마시면 완전 딴사람으로 변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첫 자식을 잃고 아내와 사이가 악화된 가운데 할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 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어마어마했는데, 처음부터 26살 노총각이 22살이라 속이고 18살이었던 할머니와 결혼했던 것부터 할머니는 너무나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왜 26살 먹도록 장가를 못 갔는지, 왜, 언제부터 술버릇이 그리 안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하지만 그까지는 알 수 없었다.
마강수의 집안 역사: 할아버지 위로 7대째 '독자'만 이어지던 아들이 매우 귀했던 집안이라고 한다. 그래서 집안은 불교 - 기복신앙이 많이 스며든 소승불교 계통인 듯하다 -에 깊이 발을 들여 불공을 들이고, 절을 지어 바치기도 하는 등 예언 능력을 가진 스님들을 집안의 멘토로 모시고, 시키는 대로 불교 교리를 철저하게 지키는 집안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때에 와서 집안에 처음으로 '독자'가 아닌 아들 둘이 태어났는데, 내 할아버지는 둘째 아들이었다. 내 기억으로 큰 할아버지는 뭔가 입신양명에 성공한 사람처럼 드라마에서 양반들이 입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집도 그 마을에서 가장 크고 으리으리한 기와집이었던 반면, 내 할아버지의 집은 훨씬 평범해 보이는 초가집이 었던 것이 기억난다. 큰 할아버지는 내 할아버지도 그의 자녀들도 냉대하고 무시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집안에 아들이 없다가 아버지가 태어났을 때 큰 할머니가 그를 사랑하여 데려가 키우다시피 했다고 들었는데, 그 집안에서 환영받았던 건 아버지, 마점태 뿐이었던 모양이다.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두 아들의 처지가 왜 그렇게 달라졌는지, 왜 내 할아버지가 친 형에게 무시와 냉대를 당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마점태, 마강수의 아들]
마점태의 직업: 20대에 직원 500명이 넘는 촉망받는 큰 수출업체 사장이 되었다가, 전두환 시절,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가의 기업을 박살내고 자기 사람만을 키우는 노략질의 나비효과로 사업이 망함. 신용불량자에 사업 실패자로 낙인찍히고 다시 재기하지 못한 채 40대 이후 폐인 라이프.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80년대 말 - 90년대 당시 한국은 부도나고 파산했던 사람이 다시 일어서기 힘들 뿐 아니라, 빚과 신용불량자라는 이름이 끝까지 따라다녔으므로 전혀 어떤 경제활동도 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가족이 버는 돈까지 차압하고 괴롭히는 등, 파산을 겪은 사람이 파산을 극복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힘든 시스템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점태의 어린 시절: 인물 출중하고 건장하고 머리 좋고 부지런하고 재치 있고 실력 출중했던 그는 아들 귀한 집안 전체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금지옥엽으로 컸다.
마점태의 고통: 사람들의 호감을 쉽게 사는 재치와 매력 넘치는 자신의 겉모습과 실제 자신의 처지 사이의 괴리로 고통받았던 것 같다. 깔끔하고 반듯한 외모의 그를 보면 사랑 많이 받고 큰 부잣집 아들, 대학교육받은 사람으로 사람들이 쉽게 착각하는 반면, 실제 그는 가난으로 대학을 가지 못했고, 술버릇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그에게 근본적인 수치심의 고통을 주었던 것 같다. 그는 사업이 번창하던 시기에 내가 다니던 학교에 기부도 많이 하고 육성회 회장을 도맡아 했는데, 내 어린 기억에, 그는 "선생님들이 물으면 아빠 **대 나왔다고 해라" 시키던 기억이 있다. 또한 아빠는 '점태'라는 자신의 이름도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죽은 아들 뒤에 얻은 자식이라 이름을 최대한 천하게 지어야 오래 산다는 스님 멘토의 조언에 따라 그렇게 이름 지었던 것이 그에게는 평생 콤플렉스였다. 그는 호텔 방명록 같은 것을 쓸 때, 일부러"마점태"가 아닌, "마정태" 정도로 보이도록 흘려 쓰곤 했던 걸로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그는 새로 나오는 신문물을 빨리 접하고 사들이는 일에 매우 부지런했는데, 그것 또한 시골 출신이라 는 자신의 배경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수치심과 낮은 자존감의 고통에 매우 시달렸던 인물이라고 판단된다. 마점태는 씨엔블루 기타리스트 이종현과 거의 흡사한 외모였는데, 다 잘생겼는데 코가 조금만 더 높았으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바로 코 성형을 하기도 했었다. 어느 날, 마점태는 시골 아버지에게 내려가 언쟁을 벌였는데 - 누구도 어떤 언쟁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마점태의 아버지, 마강수는 다음날 농약을 마시고 음독자살을 한다. 그것이 마점태에게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죄책감이 되었으리라고 짐작한다.
마정태의 평소 성품: 잘 웃고, 재치 있는 호감형 매력남이었다. 하지만 그가 처한 환경, 낮은 자존감과 부정적인 사고 습관이 그의 심리를 불안하게 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주변 사람에게 잘하고 잘 지내다가, 한 번 뭔가가 틀어지면 완전히 틀어지게 만들었다.
마정태가 행복했던 시절 가족과 함께 즐겼던 것: 가족 소풍, 가족 나들이, 화단 가꾸기, 동요 부르기, 클래식 음악 듣기, 옛날 영화 함께 보기, 운동 하기, 코미디 같이 보고 웃기,...
마점태가 아내와 자식들에게 준 고통: 그의 부정적인 생각과 낮은 자존감은 자식을 보는 그의 시선에까지 연장되어, 자식들의 장점보다 단점을 자꾸 부각하고, 자신이 보기 싫은 자식의 모습을 없애려고, 혹은 무엇을 배워야 한다고 여기고, 강박적으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었다 (가령 게으른 모습을 보기 싫어서 어린아이들을 새벽같이 깨워 산에 억지로 데려가 등산을 시킨다거나,...). 그리고 사업이 실패한 이후에 자신이 점점 술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은 손가락질받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느낌은 그를 점점 더 걷잡을 수 없는 밑바닥으로 몰아갔던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매우 에너지가 많고 키 180의 건장한 남자였으므로, 그 에너지가 사업에 쓰였을 땐 젊은 나이에 큰 사업체를 일구어 낼 정도로 힘을 발휘했지만, 그것이 우울증, 낮은 자존감, 술과 결합했을 때는 아내와 자식을 벌벌 떨게 하는 폭력과 학대가 되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외모를 보고 반하는 여자들의 환대를 늘 즐기고 싶어 했는데, 그것이 자신의 낮은 자존감에 혹은 나르시시스틱 성격에 일시적인 충족감을 주었던 것 같다. 그의 그런 성향은 결국 '바람기'로 발전했으며, 아내를 고통스럽게 하고 자식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하며 가정을 산산조각 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결국 그는 수많은 여자들에게 고통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엄마가 결혼해서 살고 있는데, 집까지 찾아와서 절망하고 간 여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저지른 일 중에, 내가 가장 용서하기 힘든 몇 가지 일이 있는데 여기에 쓰지 않았다. 그것은 마음의 준비가 되는 대로 따로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