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야기 3
어릴 때 나의 기억은 온통 감이다. 단감, 홍시, 곶감,... 정말 온 방, 온 창고에 감이 굴러다녔다. 나의 유아기는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다 홍시를 밟거나 홍시 위에 주저앉아 옷이 홍시 범벅이 되었던 기억, 겨울 내내 곶감을 쏙쏙 빼먹던 기억으로 가득하다. 매해 겨울마다 그렇게 많은 감을 마점태에게 가져다준 사람은 마강수였을 것이다.
감 농부, 감 장수 집안의 자식들 중에는 여름 태생이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감 농사 스케줄과 상관이 있었다. 감을 따는 시기는 10월 중순부터 11월 사이. 일단 감을 따고 나면, 최상품을 골라 장을 돌아다니며 팔아야 했고, 남은 감들로는 곶감을 만들고, 곶감이 준비되면, 그것도 장터에 가져나가 팔아야 했을 것이다. 감 장수들에게 10월 중순부터 봄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일감이 밀려드는 시기라 가족과 시간을 보낼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마강수의 집에 6월 30일생 여름 늦둥이가 태어났다. 마점태의 막내 동생, 마규태였다.
아기는 씨앗 같다. 처음엔 그것이 무슨 씨앗인지 모른다. 하지만 싹이 트고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 누구나 그 씨앗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알게 된다. 마규태는 다른 형제들과는 성격도 생김새도 많이 달랐다. 아무도 수면 위로 꺼내지 않지만, 어느새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결국 어린 마규태 자신까지도 아는 이야기.
그것을 대놓고 입에 올린 사람은 큰 고모였다. 고모는 삶이 참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고모의 이야기까지 길게 하기는 나도 지치므로, 그냥 이 이야기에서만 고모를 등장시키겠다.
그날 집엔 한 바탕 난리가 났었다. 나는 아마 5학년쯤이었지 싶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방안에 몰아넣고 상황을 보지 못하게 했지만, 깔끔 떠는 시어머니의 깔끔하지 않은 과거, 남편이 씨 다른 자식이라는 걸 알게 된 것에 너무 흥분한 마규태의 아내, 나의 숙모가 크게 떠들어 주는 것을 듣고, 나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고모는 어릴 때 채 잠들지 않은 자신을 옆에 두고 할머니가 외간 남자와 '그 짓'을 했다고, 어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얼마나 상처를 받고 힘들었는지 아냐고, 그래서 인생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게 되었다고 따져 들었다고 한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고모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자식이 아니었다. 게다가 할머니는 철저한 남존여비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여자는 죄인이고 더러운 존재라는 생각에, 남자와 여자의 옷을 함께 빨래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엄마로부터 평생 받은 차별과 상처를 꾹꾹 눌러 담았다가 고모는 그날 할머니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하며 제 상처를 터뜨려 보여준 것이었지 싶다. 할머니는 그날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는 걸로 알고 있다.
아무도 고모도 할머니도 감싸 안고 마음을 다독여 주지 않았다.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상처가 너무 많았고, 각자 자기 상처만 끌어안고 평생을 외롭고 한 맺힌 마음으로 살아갔다.
할머니가 성폭행을 당한 것일까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지만, 대놓고 바람을 피울 성격도 아닌 것 같기에, 사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당사자가 입을 꾹 닫았으므로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아는 것은 할머니가 마규태를 끔찍이 예뻐하며 키웠다는 것 정도. 사실 대부분의 집에서 막내는 가장 예쁨을 받으므로 그것도 특별한 무엇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내 나이 6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할머니와 한 방을 쓰며 함께 살았지만, 할머니는 술 먹고 혀 꼬인 신세한탄을 하는 순간 외엔, 본인의 과거든 뭐든 자랑거리가 아닌 것은 들려준 적이 없다.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깔끔한 성격인 탓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아들 마점태와 많이 닮은 성격이라고 생각된다.
할머니의 자랑은 항상 당신이 양반집 자제였으며, 할머니의 아버지는 동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훈장 어른이었던 것. 할머니의 작은 아버지가 숙명 여대 총장이었던 것.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집안에 관해서건 자식이나 손주에 관해서건 자랑의 연속이었으므로 주변 사람들은 할머니를 얄미워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또한 할머니는 자신이 모든 옳고 그름의 기준인 것처럼 행동했다. 한 번은 학교 가사 숙제로 한복 만들기를 했는데, 내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한복을 만드는 것을 보고 할머니가 가사 선생이 엉터리로 가르친다고 데려오라고 펄펄 열을 내시던 게 생각난다. 또한 행동 기준도 분명했다. 어떤 행동은 양반 행동이고 어떤 행동은 상놈들 행동이라고 말끝마다 구분 지어 주었다. 가령 우리가 할머니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 "그래야 양반이지." 우리가 마음에 들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러면 상놈이다." 이런 식이었다.
그의 한 많고, 상처 깊고, 자존심 강한 어머니가 마점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녀가 씨 다른 동생 마규태를 낳아 기르며 그를 편애한 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 어떤 상처였을까를 나는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모두가 알고도 쉬쉬하는 이야기긴 했지만, 동네 사람들의 눈빛에 말투에 비웃음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을까. 마점태는 도시에서 성공한 후, 한 번 가족과 함께 시골에 내려갔는데, 마점태가 성공해서 비까 번쩍한 자가용 끌고 내려왔다고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술판 잔치판을 벌였다. 그 술자리 끝에, 마점태는 술에 잔뜩 취해 동네 사람과 시비가 붙어 몸싸움이 났고, 아빠는 그들을 흠씬 때렸고, 결국 경찰서에 모두 끌려갔고, 그들에게 큰돈을 주고 합의를 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동네 건달들이 부자가 된 마점태의 돈을 뜯어내려는 술수를 쓴 것이었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그토록 쉽게 자극할 수 있었던 마점태의 취약한 마음의 어떤 부분에 대해 나는 어린 마음에 뭐가 뭔지 몰라도 속이 상했었다.
그는 시골 고향 마을에 자신의 성공, 자신의 능력을 자꾸 입증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고향 마을 처녀 총각들을 도시로 올라오게 하여 자신의 회사에 고용시키고 집에서 숙식을 시켜주기도 하는 그런 오지랖을 계속 부려, 모르는 사람들이 집에 드나들었던 기억이 많다. 계속 밖에 나가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 때문에 그만큼 가족은 희생과 고통을 감당해야 했던 것 같다. 특히 내 어머니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너무나 신경 쓸 사람들과 일이 많아 자식에게 마음을 쓸 겨를이 없었다. 할머니 삼촌들 숙모들까지 다 함께 살고, 손님들까지 수시로 드나드는 대가족 생활은 겉에서 보기엔 멋진 집에 3대가 같이 사는 정겨운 가족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문제와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그곳은, 아이들, 특히 여자인 나에게 결코 좋은 영향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내가 할 말이 많아야 하는데 여기까지 쓰고 지쳐버렸다.
그는 사업이 부도가 난 이후엔, 고향에도 발길을 완전히 끊었고, 삼촌들은 분가해 나갔고, 오롯이 할머니와 우리 가족만 남았다. 하지만 밖에 나가 인정받고 환대받고 싶은 아버지의 욕구는 여전했기에, 가정은 결코 단란해지지 않았다.
마점태의 사업이 부도가 난 이후의 엉망진창 시간들을 말로 풀어내야 할 타이밍이 서서히 오고 있다는 걸 느끼며 내 마음은 또 움츠러든다. 지금은 너무 지쳐, 좀 쉬고 또 글을 이어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