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아버지의 장례식 4

아버지 이야기 4

by 하트온

장례식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장례식을 공개적으로 벌려놓고, 나는 자꾸 멈칫거린다. 이래도 되는 걸까. 이런 이야기까지 다 꺼내놔도 되는 걸까 곱씹고 또 곱씹는다. 내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보낼 사람 보내고 내 머릿속에 남을 이야기를 잘 정리하기 위해서, 오로지 나를 위해서 하는 장례식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격려해 본다.


아버지가 요즘 시대 풍족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었다면 어떤 스타일의 남자일까 상상을 해 본다.


아빠는 운동과 식단관리로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하는 스타일이고, 큰 키에 적당히 근육 잡힌 몸매에 스스로의 매력과 외모에 대한 자부심도 넘치고,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은 '관종' 성향에, 외향적 에너지와 끼와 배포도 있었으니, 연예인이 되었거나, '운동 유투버'로 활동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백종원'씨처럼 티브이에 수시로 나오는 사업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빠와 나, 관계가 좋았다면, 지금이라도 나는 늦지 않았다며 아빠를 설득해 '노인 운동 유투버' 해보라고 제안도 하고, 박막례 할머니 영상도 보여드리고, 영상 찍는 법, 편집하는 법도 가르쳐 드리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드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두려운 존재 앞에서 머리를 처박고 구석으로 숨어버리는 강아지들처럼, 아버지 가까이만 가면 덜덜 떨고 가슴이 요동치도록 컨디션이 되어버린 터라, 우리 중 누구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의 가까이에 가지 않았다.




가족들 신경 쓰지 말고 너 재밌는 거 다 해봐. 엄마 아빠가 최대한 지원해 줄게. 넌 뭐든 잘해 낼 수 있을 거야. 도전하는 거 두려워하지 않는 네가 참 멋있다.

내가 그의 부모일 수 있다면 그런 말을 한 번 해 주고 싶다. 그의 부모가 되는 상상을 해 보니, 그가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고통스러워했던 건, 그의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아서였을 거라는 생각에 이른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고, 아버지의 인격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면, 아버지가 자신을 위한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모두 대학 가고 도시로 가는 상황에서 대학을 가지 말고 농사 가업을 물려받으라고 해도 기꺼이 아버지와 함께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농사를 이어받아하라는 말을 했을까. 아들이 부산에 취직해서 집을 떠난다고 할 때, 할아버지는 무슨 말이라도 해 주었을까. 아들의 미래에 대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어떤 조언이라도 해 준 적이 있을까. 나는 그런 것들이 무척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할아버지가 어떤 이유로 마음이 너무 죽어버린 상태는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가 그렇게 가족들이 치를 떨 만큼 술버릇이 좋지 않았다는 건, 그는 정신이 많이 아픈 사람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여지를 준다.


내가 대학을 준비하는 수험생이었을 때, 아버지는 내가 교사나 약사가 되는 길을 가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나는 그 '무서운 아버지'가 제안하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결국 내 맘대로 '공대'를 선택했다. 나 또한 아버지에 대해 신뢰도 믿음도, 좋은 관계도 없었으므로 아버지의 말을 따를 근거가 없었다. 나는 내가 신뢰했던 교사들의 조언에 따라 당시 가장 뜨는 무언가로 보이던 '신소재'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재료공학'을 선택했다. 나는 '공대'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온 날, 홍일점으로 살아갈 공대 생활이 너무 막막해서, 내가 선택한 것을 되돌리지도 못하고,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도 내지 못하고 꺽꺽 울었었다. 감수성 예민한 나에게 홍일점으로서 '공대 생활'은, 곳곳에 인종차별이 도사리는 타국 생활에 버금가는 정서적 고통을 동반하는 힘든 생활이었다. 중간에 그만두고 다시 재수를 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으나, 나는 그런 일을 저지를 명분도 뒷감당할 자신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학업을 마쳤다. 나는 내 적성이 '교사'라는 직업과 맞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는데, '아버지 말을 듣고 교대에 진학했다면... 아버지와 관계가 좋았다면 그 말을 듣고 따랐을까' 무수히 후회하며 그때를 곱씹기도 했다.





아빠 사업이 부도나고, 빚쟁이들을 피해 아빠가 집에 숨어 계시는 날이 많았던 중학생 시절이 무척 고통스러웠던 반면, 고등학교 시절은 내게 천국 같았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학교에서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아빠와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엄마와 동생을 버려두고 나만 편하자고 도망 나온 것 같은 죄책감이 불쑥불쑥 올라와 마음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나는 엄마를 구출해 내겠다고 본능적으로 마음먹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능한 먼 곳으로 떠나 엄마까지 이곳으로 오시게 하는 절차를 밟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지도 모른다. 아빠는 내가 계획적으로 일이 그리되도록 만들었다고, '독한 년'이라고 원망하곤 하셨다고 한다. 아빠 쪽 친척들도 나에 대해 크게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어쨌든, 이젠 원망하던 모두가 죽었고, 원망의 대상이던 모두가 편해졌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죽은 자들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죄책감, 그들을 외롭게 죽어가게 했던 죄책감, 그들에 대한 연민, 그들도 진정으로 사랑받았었다면 그렇게 삶을 끝맺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시시때때로 뜨거운 불처럼 내 심장을 지지고 든다.


어느 누구도 미화할 마음도, 희생자로 몰고갈 마음도 없다. 감정을 차단하고 이성이 이 장례식을 주도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저 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서 자꾸 일상에 쏟아지는 감당하기 힘든 '흙탕물'이 되지 않도록 정리될 수 있기만을 바랬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이성의 철벽을 강화시켜 본다. 수용성 감정들이 스미지 못하도록 방수 페인트도 덧발라 놓는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공통점은 어쩔 수 없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았고, 진정으로 사랑받지 못했기에 진정으로 사랑할 줄 몰랐고, 인생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엔 모두 죽었다. 그중 두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과 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유전자로 인해 만들어진 공통점들. 외모의 일부, 성격의 일부.


사실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그 안에서 예전의 내 모습을 발견한 부분들이 있다.


성공해서 증명해내야 한다는 심리, 자꾸자꾸 명예와 존경, 찬사를 바라는 심리적 욕구에 시달렸던 것.

어떤 일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일어서 도전할 생각보다 수치심에 취약해졌던 성향.

목표를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성격.


전반적으로 수치심, 실패감에 취약하고, 자신의 바람과 자신이 처한 환경 사이의 괴리에서 방황했다는 점이 비슷했던 것 같다.


나의 아버지와 나는 차이점도 많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엄마와 배우자를 만나 큰 사랑을 받았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지만, 그는 술을 좋아하였고 결국은 술이 그를 삼켰다.

나는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내 삶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과 감사를 회복했지만, 그는 부정적인 사고관에 갇혀 끝까지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버지가 그의 자녀들에게 가장 잘못한 것은, 사업에 실패해서 경제적인 트라우마를 만든 것도, 술 마시면 무섭게 변하고 폭력을 써서 상처 입힌 것도 아니다. 가장 나빴던 것은 그가 일상적으로 우리를 찔러댄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시선이었다. 우리에게 스며든 그는 낮은 자존감이 가장 문제였다. 물건을 구매하고 보니 불량품이라는 듯 쯧쯧 하는 그런 시선. 그의 그런 태도는 그에게 주어진 모든 소중하고 감사할 것들을 가치 없는 불량품으로 만들었다. 아내와 자식들조차 말이다.


그의 아내는 이 세상에 쉽게 찾아보기 힘든 어진 성품의 강하면서 선한 좋은 사람이다. 그의 자식들도 재능 있고 가능성 많은 인재였음을 그는 알아보지 못하고, 늘 조바심내고 못마땅해하며 자신의 감정에 따라 일관성 없이 몰아붙였다.


세상에 나가 봐. 전쟁이야.

이런 불안하게 만드는 메시지를 자꾸 불어넣었다.


덕분에 나는 평생을 달리고 또 달리고, 오르고 또 오르며 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무엇을 위해서 내가 달리고 있는지를 골똘히 생각하는 순간, 그다음 순간 모든 것이 스톱했다.


그 이후의 과정은 내 삶을, 내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 내 길을 찾는 시간이었고,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하며, 나답게 삶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내가 온 힘 다해 거부한 사람이었다.


좋은 관계, 사랑의 관계가 되지 못한 것이 참 아쉬운 관계. 그렇다. 따뜻한 사랑을 받은 기억도, 내가 온 힘 다해 사랑해 준 기억도 없어서 안타깝고 미안한 관계고 아쉬운 관계다. 내가 이제야 삶을 정비하고, 여유가 생겼는데, 이제 아버지는 없다.


인생은 그렇다. 늘 타이밍이 맞지 않고,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다. 내 조상, 내 부모, 내가 이끄는 삶은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선택을 했고, 하나님이 이끄는 완벽한 타이밍을 의지하고 도움을 받는다. 완전한 존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은, 나처럼 부서지고 결핍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미워하지 않고, 비관하지 않고, 감사와 평안, 신뢰와 충만함을 느끼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넘치게 사랑받으며 잘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다. 나처럼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모두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부서진 삶과 결핍을 인정하고, 완전한 존재에게 의지하고 사는 비결을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그것마저도 하나님의 타이밍과 하나님의 처리 방식에 맡기려 한다.


그들이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을 하며 다음 세상을 풍족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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