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야기 5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참 좋은 일이었던 것 같다. 더 이상은 아버지 생각이 감당할 수 없는 폭풍 구름처럼 밀려들지 않는다. 아마 정리되지 않고 헝클어진 생각들이 혹 덩어리처럼 한없이 뭉쳐지고 커져서 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표류하며 자꾸 밀려왔던 것 같다. 어찌 감당할까 싶던 피고름이 잔뜩 묻은 곧 터질 것 같은 상태의 덩어리는 내 머릿속에 없거나, 사이즈가 확 줄어든 느낌이다. 하나하나 버릴 것 버리고 떼어낼 것 떼어내고, 고칠 것 고쳐서 서랍장 안에 하나씩 하나씩 정리되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라고 말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아주 어릴 때 '아빠' 하면서 울던 아이였고, 창밖으로 아빠를 내다보다, 아빠가 퇴근하고 집을 향해 걸어오는 게 보이면 정말 온몸을 던지며 달려가 아빠를 맞았다. 항상 잘 넘어져서 무릎이 성한 날이 없었다. 아빠 손에는 항상 과자며 먹을 것이 들려 있었고, 아침에 아빠가 출근할 때 따라 나가면 아빠는 꼭 100원씩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그 100원으로 '점빵'이라 부르던 곳에 달려가 '초코파이'나 '쥐포' 같은 것을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아빠가 잊어버리고 100원을 주지 않고 나간 적이 있었는데,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 날 하루를 어찌 버티나 난감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저 멀리까지 아빠를 따라가 100원을 받아내고야 말았던 기억도 있다.
그때는 아빠가 정말 나를 많이 예뻐했던 것 같고, 나는 무슨 심리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 아마도 어린 마음에도 아빠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는 것, 아빠가 집안 서열 1위라는 걸 알아서였을까? - '나는 누구보다 아빠를 사랑해'라는 걸 주장하듯 표현했다. 아빠는 그때 그 말들을 믿었던 것 같다. 나도 아빠도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시간, 그래서 서로에게 수없이 애정표현을 했던 그 시간...
이런 소소한 기억들, 수많은 과자와 빵과 선물과 100원들의 기억들이 몰려올 때, 나는 한없이 마음이 아파진다. 이런 소소한 정을 되갚아주지 못해서다. 받은 것은 뭐든 갚아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자식이 돈을 벌기 시작하면, 자식이 결혼하고 일가를 이루면, 많은 어른들은 자식이 표현하는 소소한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원하는 것 원하지 않는 것이 분명해지고, 가치 있는 물건과 아닌 것에 관한 기준도 높아진다. 아빠도 그랬다. 아빠에겐 소소한 정을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아빠에게 당장 필요한 건 '돈'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결혼하고도 계속 아버지에게 생활비를 보냈다. 결혼생활 10년 만에 관계가 매우 힘들어졌을 때도, 내가 남편에게 '큰 감사'를 느꼈던 또 한 가지의 이유다. 처음에 20만 원 정도 보내던 것이 점점 요구하는 액수가 늘어나 200만 원씩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미국에 사는 우리 상황이 너무 힘들어졌을 때, 돈 부치는 일을 끊었다. 정확하게 어떤 경로로 끊었는지, 내가 미리 경고를 해 주었는지 아닌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밤에 1시간마다 깨는 아기를 키우며 정신이 없었던 시간이었다. 아마도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있었으므로 그냥 돈도 모든 연락도 한꺼번에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빠는 아파트를 한채 가지고 있었으므로, 아파트를 팔아서 조그만 빌라 전세로 들어가고 남은 현금으로 생활했을 것이다. 내가 매우 미웠을 것이다. 자식에게 버림받은 느낌에 비참한 현실에 우울했을 것이다. 아마 엄마를 미국으로 빼돌리고 계획적으로 돈을 끊어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기분이 들 때 술을 따거나 담배를 피워 무는지 알 것 같다. 술 담배 전혀 하지 않는 내 입안에 쓴 침이 고여, 무언가를 입에 넣고 싶다.
이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고 물 한 모금 마시고 계속 글을 이어간다. 나는 무척 강한 사람이고, 많은 것을 이겨 낸 사람으로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누구나 이상형을 마음에 쉽게 품는 것 같다. 연애 상대나 결혼 상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자식에 대해서도, 부모에 대해서도 말이다. 문제는 그 이상형이 너무 현실과 어긋나면 상대를 수용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상형 자식은, '당신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자식'이었을까?
내가 고3 수험생이었을 때, 대학입시 전이었는지 후였는지 기억이 명확치는 않지만, 그 겨울 어느 날, 아버지는 나에게 카드를 한 장 써 주었다. '못난 아버지가 미안하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카드 한 장에 내 마음은 먹먹해졌었다. 자식이라는 존재의 마음을 얻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아버지는 나에게 옷을 자주 사주시곤 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입고 다녔던 모든 예쁜 옷들은 아버지가 사 주신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술 마시고 가족들을 힘들게 한 일이 있으면 며칠 뒤에 예쁜 옷이 생기는 그런 패턴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백화점에 데려가서 사주셨던 코트가 있었는데, 그 코트만큼은 그런 패턴과 상관없이, 아버지의 죄책감 없이, '딸이 춥지 말고 예쁘게 입고 다니라고 사주신 코트'여서 내가 매우 아꼈었건만, 학교 운동장에서 벗어놓고 달리기 10바퀴를 하고 다시 보니 코트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빠가 맨 정신에 함께 백화점 가서 코트를 사주는 일 같은 건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때는 우리 집 형편이 어렵기도 했기에, 나는 그렇게 코트를 잃어버리고 그 겨울 아버지를 피해 다녔던 일이 두고두고 마음이 언짢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 같았다. 적어도 나에게 경제적 부담은 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고 내가 경제력을 갖출수록, 아버지의 이상형 자식은 '기댈 수 있는 능력 있고 자상한 부모 같은 자식'으로 변해갔다.
아빠는 내가 한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취직을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 딸이지만 참 존경스럽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싱글에 젊디 젊었고, 아빠를 위해 최선을 다해줄 수 있었으므로 그 말이 무겁지 않았다.
나는 그때도 여전히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을 말끝마다 달았었다. 나중에 엄마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버지는 나의 '사랑해요'를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지가, 말끝마다 날 사랑한다고는 하는데, 그게 뭐 진심이려고...'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아빠는 내가 미국에서 '엔지니어링 회사 연구소'에 취직했다고 말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한테 좀 기대 살자.
나는 그게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지혜가 없었다. 주어진 부담을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했고, 나는 매달 의무감이 시키는 대로 돈을 부쳤다. 문제는 결혼하고 자식이 생기면서, 아빠를 업고 사는 게 너무 무겁고, 힘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린 자식을 키우는 일이 너무 힘들고, 여러 가지로 상황은 힘들어지고, 내가 괜찮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더 이상 아빠를 떠받치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놓아버렸다.
나는 한 번도 입밖에 낸 적도, 내 의식 저변에 오래 머물게 한 적도 없지만, 무의식의 한 귀퉁이에 심어놓은 '이상적인 아버지 상'이 분명 있었던 것을 지금 깨닫는다. '제대로 된 어른, 믿을 수 있는 어른, 스스로 책임지고, 힘든 일을 겪어도 다시 굳건하게 일어서 자신의 길을 또 다져가는 어른, 언제나 바닥부터 시작할 수 있는 어른, 스스로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의미를 찾으며 조금 힘든 것들은 이겨내고 떨쳐낼 수 있는 멘탈 강한 어른,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자식이 표현해 주는 모든 사랑에 감사할 줄 아는 어른. 주변 사람들과 평화롭게 교류하며 존경받는 어른, 자애롭고 자상한 아빠.'
그래, 그렇다. 내 속에 그런 이상형을 품고 있었으니, 나는 아빠를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고, 수용한 적도 없다고 해야 참말이다. 아빠에게 했던 말은 모두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거짓말투성이가 아니었을까. 여차하면 '성질 부림'과 '욕설'이 튀어나올 것 같으니, 나는 그런 사랑 표현을 남발하며 그렇게 생겨먹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크고 작은 아버지의 영향 중에 옳지 않은 것은 지워 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상대의 심기를 긍정적으로 유지하려고, 비위를 맞추려 노력하는 '아부 근성'이다. 그렇다고 윗사람한테 잘 보이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별 목적 이유 없이 상대를 지나치게 칭찬하는 버릇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그룹 '지오디' 일화 중에, '박진영'이 '김태우'를 소개할 때, 눈은 '류시원'을 닮았고 허우대 바탕은 '정우성'을 닮았다고 해서 멤버들을 매우 기대하게 만들었다고, 평소에도 '박진영'이 약간의 긍정적인 특징을 극대화해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나랑 닮은 영혼인 듯'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자각하지 못했기에, 오랫동안 그런 말버릇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 그것이 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박진영'의 과장된 칭찬이 '김태우'의 외모에 다른 멤버들이 더 실망하고 더 모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박진영이라는 사람의 '사람 묘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버린 것처럼, 내 말버릇은 결국 상대방에게 실망을 불러오고, 내 말에 대한 신뢰를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란 걸 자각하게 되었다. 브런치는 이 '아부 근성'을 많이 처단하고 시작한 것이므로, 여러 작가님들의 글에 댓글로 쓴 내용은 정말 절제하고 절제해서 진심만을 표현하려 노력한 것이니 오해 마세요.
또 다른 한 가지는, 내가 아빠를 통해 경험한 것들, '폭력, 술, 가부장적 사고,...'에 예민하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자각하지 못했었다. 예전 남자 친구가 나에게 자기를 위해서 찌개 만드는 연습 많이 해 두라고, 자긴 찌개류를 좋아하는데 특히 '꽃게탕'을 좋아한다고 했었을 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은근한 프러포즈' 중이었는데, 나는 그에게 정이 뚝 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술을 절제하지 못하는 남자들은 남자 친구 후보 예선 탈락이었으며, 남자 친구와 사귀다가 헤어진 대부분의 이유는 남자 친구가 본인 아버지의 폭력성, 혹은 자신의 폭력성 - 싸움을 잘한다는 걸 과시하느라 - 을 노출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폭력과 술에 관한 이야기, 가부장적 사고에서 출발하는'정해진 성역할의 틀' 관념 같은 걸 느끼는 순간, 내 마음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이제 나는 자각을 한다. 내가 어떤 종류의 주제, 관념에 예민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조금은 더 둔해지고 유연해지려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를 자각하게 하고 나를 변화시킨 것은 역시나 '아이들'이다. 남자아이들이 거칠게 노는 모습, 서로 싸우는 모습에 나는 경기하며 반응하곤 했다. 그것은 큰애를 너무 많은 부정적인 말로 야단치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것 때문에 큰애와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을, 아이로 하여금 중2병을 심하게 앓게 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자각했다. 내가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달리 먹었고, 달라진 마음은 내 태도를 변화시켰다. 아이들에 대한 반응을 좀 더 절제하게 되었고, 좀 더 신경이 둔해지고 무던해졌다.
나는 자식에 대해서도 '이상형'을 품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내 마음을 샅샅이 뒤졌고, 무엇이 있었건 걷어 모아 쓰레기통에 넣었다. 중2병을 앓고 있는 아이의 현재 모습 그대로를 내 마음 깊숙이 있는 그대로 품었다. 아이 위에서 지시하고 야단치는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오직 사랑의 눈으로만 바라보기 위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내 시선의 위치를 바꾸자 아이는 그저 사랑스럽고 기특하고 아름답기만 했다.
우리는 다시 사랑을 회복했다. 이제 큰애는 다시 내 품에 자주 와서 안기고, 우린 소통의 문을 열고 이런저런 주제로 자유롭게 대화하고 있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져 가고 있으며, 나는 이 아름다운 아이를 오로지 사랑의 눈으로만 바라본다. 시선의 위치를 바꾸면 감정도 달라진다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닫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는 '내 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을까, 이렇게 '글'을 쓸 의지를 가질 수 있었을까. '내고 싶은 목소리'를 만들 수 있었을까. 매일 나를 성찰하고 돌아보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자각하고 변하고 다시 주변 소중한 존재들과 사랑을 회복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 것이라고 믿는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라고 했던 '사도 바울'의 말을 곱씹으며 ' 내 안의 착한 일'에 집중해 바라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