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아버지의 장례식 6

아버지 이야기 6 - 마지막

by 하트온

아빠가 무겁고 무서웠다.


아빠가 내 인생을 무겁게 힘들게 만든 것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아빠가 내 아빠라서 비참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아빠가 잘해줬던 순간들, 아빠에게 사랑받았던, 관심받았던 순간들도 많았다. 아빠 입장에서는 잘 해준 날들도 많은데 자식들은 왜 일 년에 한두 번 힘들었던 날만 기억할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잠재적 폭탄'같은 존재가 되면, 가해자 입장에서는 일 년에 한두 번 성질부리는 날이, 곁에 있는 사람은 365일 내내 덜덜 떨며 살게 되기 때문에 폭력이 없어도 정서적 학대를 당하고 사는 셈이 된다.


나는 이제 알겠다. 그 시간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그 시간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빚어갔는지.



나는 동부에 오기 전에 서부 워싱턴 주 시애들에서 1년 반 정도를 살았고, University of Washington의 '사리카야'라는 재료 공학과 교수의 실험실에서 짧은 연구원 생활을 했다. 교수는 터키 사람이었는데, 나를 처음 보자마자, 내 영어가 '아름답다'는 칭찬을 시작으로, 한국과 터키의 조상 - 돌궐 족, 투르크 - 이 같다는 논리를 펼치며, 우리 사이를 그토록 가까운 '형제 나라'의 '친척 같은 사이'로 몰고 갔다.


그 교수의 평소 모습은 첫 만남에서 받았던 인상과 상당히 달랐다. 수업을 하다가, 혹은 연구 미팅을 하다가 뭔가 못마땅해지면 언성을 '버럭' 높이는 경향이 있었고, 미국 학생들은 그의 그런 태도를 매우 싫어하여 뒷말이 많았다. 한 번은 학생들이 매 수업 마지막 날에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교수/수업 평가지'에 불만을 잔뜩 적었는데, 그것을 중간에 교수가 낚아채서 본인이 다 읽어보고 불만을 적었던 학생들에게 학점적으로 불이익을 주었다는 루머도 있었다. 그의 실험실에서 그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나와 '핸슨'이라는 홍콩계 박사과정생은 되도록이면 교수와 대립하지 않으려고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나는 옆 실험실의 '몬다나'라는 이란에서 온 박사과정 여학생과 가깝게 지냈다. 그녀와 내가 나이가 같았던 것과, 미국에 온 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이 그녀와 나를 특별히 가깝게 만들었다. 그녀는 같은 이란계 미국인과 결혼을 했다가, 몹쓸 경험을 하고 7개월 만에 이혼을 했다. 이혼하고 그 트라우마가 다 가시기도 전에, 자신의 삶을 세워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품고 울면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고 했다. 힘든 상황을 겪었음에도 무척 씩씩하고 항상 밝은 표정으로 웃고 다니는 활달한 여자였다.


그런 그녀의 사정을 알고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사리카야' 교수는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도 아닌 '몬다나'에게 멘토처럼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며 챙겨주곤 했다. 나는 '몬다나'와 점심을 거의 매일 같이 먹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사리카야' 교수가 무슨 이야기를 해 주는지를 대부분 들을 수 있었다.


하루는 '몬다나'가 곤란한 얼굴을 하며 내게 슬며시 언질을 주었다.


너하고 친하다고 하니까, 너는 '마음을 숨기는 스타일'이라고 조심하래.


그 말을 듣고 나는 그 순간 기분이 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배신감이 팍 들었다. 일단 '마음을 숨기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나빴고 - 그때까지만 해도 그 말이 나에 대한 개인적 평가라고는 자각하지 못했다-, '형제 나라'니, 조상이 같니 하더니 결국은 내 뒤에서 그런 평을 하며 뒤통수를 치는 것이 배신감이 들었고, 그때까지 그에게 맞춰서 '핸슨'과 내가 희생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곧 동부의 '엔지니어링 회사 연구소'로 옮겨가게 되었으므로 짧은 시간만 머물고 떠났기에 그에 대한 기억은 다 사라졌다. 하지만 '마음을 숨기는 스타일'이라는 그의 말은 내 뇌리 한 편에 줄곧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깨닫는다. 그가 사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한국인들끼리 모여 있으면 드러나지 않는 어떤 점들이, 외국인의 눈에는 더욱 선명히 드러나는 점들이 있다. 내가 내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한국에서는 '온순하다', '착하다' 정도의 평이 다였지만, 미국에서 오래 산 '사리카야' 교수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젠 나도 그것을 인정하려고 한다. 그래야 그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내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거나 자신까지 속이는 몹쓸 버릇을 가지고 있다.


내가 2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자꾸만 소환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내가 느끼는 어떤 결핍이 있는데, 그게 정확히 뭔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결핍감이 가슴에 차오를 때마다 그저 막연하게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문젠가, 저게 부족한 건가, 이런 걸 못 배운 건가 계속 나의 결핍을 곱씹을 때마다 아버지는 자동 소환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버지를 보내드리고자, 완전한 장례식을 하고자, 한 판 승부를 뜨겠다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아버지라는 존재가 내 안에 드리운 그림자가 서서히 정확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를 정확히 보기 전까지 나는 현상에만 집중했었다.


나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을 잠재적 분노조절 장애자, 혹은 잠재적 학대자로 보는 그러한 사고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은, 나타난 현상이지 근원이 아니었다. 근원은 내가 솔직히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거였다.


내가 솔직하지 않으니까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었고, 스스로를 믿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없는 거였다.


내 아버지와 같은 사람 앞에서 솔직하기란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버지의 전성기 때 6척 장신의 혈기 왕성한 그와 맞짱을 뜨려면, 목숨을 거는 용기까지 필요했을 것이다. 사실 미국에 와서 전화통화로 솔직히 내 마음을 말할 기회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내가 미국에서 보낸 세월만큼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마음을 말하는 걸 배운 적이 없는, 두려움에 떠는 강아지 같은 내 심장은 한 번도 용기를 발휘한 적이 없다.


그것이, 솔직한 내 마음을 전한 적이 없는 것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중요시하는 사람인지 보여준 적 없는 것이, 나라는 사람의 진짜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던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회한이다.


아버지와 맞서 싸웠어야 했다. 당신이 자식들과 소통하는 방법들이 옳지 않다고 말해주었어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고, 아버지에게 맞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므로, 한 번도 세상에 맞서 본 적도 없고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맞서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불의와 학대 앞에서 참을 뿐 아니라, 웬만한 모든 부담과 불편함 앞에서도 참는다. 마음을 드러내서 솔직하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지 못한다. 당신이 지금 나에게 부담을 주고, 부당하게 하고 있는 것을 말해주지 못한다. 친구가 나에게 실수하고 잘못하고 있어도 말해주지 못한다. 마음을 숨기고 맞추고 적당히 넘어가면 인간관계, 사회생활은 더 힘들어지는 법이다. 자신의 '경계선'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에 어딜 가든 결국 아파지는 것이다.


사춘기 아이들이 대들며 맞서는 것은 건강하고 당연한 성장과정이다. 그것은 반드시 차분한 태도로 받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는 세상과 맞서는 것,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정면 승부하는 것을 연습할 데가 부모밖에 없다. 부모가 그 연습을 받아주지 않고 거부하면 아이는 세상과 맞짱 뜰 줄 모르는 아이가 된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앞으로 나아갈 줄 모르는 아이가 된다.


아버지 잘못은 아버지가 안고 가셨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과오만큼 이미 본인이 큰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내 안의 잘못된 것은 내가 안고 갈 것이다. 나는 솔직하게 내 마음을 말하고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나의 '경계선'을 지키는 것을 연습할 것이다. 그건 오롯이 내 숙제다. 아버지를 소환할 일이 이제는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악영향'은 내 선에서 끊어질 것이고, 아버지의 '좋은 영향', '좋은 캐릭터'만 대대손손 흘러갈 것이다.


내 마음은 항상 당신을 우러러보고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한 마음을 전할 용기를 한 번도 내지 않았던 것 미안합니다. 숨고 도망만 다녀서 미안합니다. 아버지도 저희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다면 깨끗이 비워 내고 편해질 수 있기 바랍니다. 아버지 이제 평안히 가세요. 편히 쉬세요. 당신 몫의 삶은 끝났고, 이제 아무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좋은 곳에서 신의 사랑 속에서 행복하시기를, 훨씬 나은 삶을 누리고 계시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이 무겁고 어려운 장례식에 함께 해 주신 분들께, 두서없는 제 넋두리를 가만히 들어 주신 분들께, 따뜻한 댓글 남겨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장례식에 오신 손님들께 국밥 한 그릇 대접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대신,


하시는 모든 일이 잘되고 복받으실 거라 축복을 빌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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