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글쓰기'
고3, 대입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이 저에게 1주일 정도밖에 살 시간이 남지 않았다고 했어요. 저는 그때 하루에 국영수 문제지 몇 장씩, 암기과목 문제풀이 몇 개, 단어 몇 개,... 이런 식으로 매일 공부할 리스트를 정해 놓고 지키던 공부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걸 계속해야 하나, 아니면 학교를 벗어나, 지금까지 못해 본 거 하고, 못 가 본 거 보러 돌아다녀야 하나 꿈속에서 깊이 좌절하여 미칠 것 같은 고민을 하다 깼어요.
꿈을 깨고 나서도 그 감정이 어찌나 생생하고 강렬한지, 저는 계속 울먹거렸습니다. 그냥 꿈이었구나 하고 털어지지 않았습니다. 꿈속에서 했던 고민은 그냥 넘길 수 있는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인생 최초의 '삶'과 '죽음'에 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어쩌면 내가 '불멸의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하고 동화 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린 눈에는 내가 자라는 것도, 노인이 늙는 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어쩌면 시간이 이 정도에서 멈추고 나는 그대로 어린 이 모습 그대로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간절히 바라듯 믿었어요. 그러면서, 죽음에 관한 생각들은 모두 무의식 저편으로 밀어냈어요. 고2 때 비극적인 첫사랑으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죽음에 관한 진정한 고민이 아닌, 잠시 영혼이 이 세상에서 길을 잃고 우주 밖으로 내쳐진 상태 같은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무의식으로 밀어냈던 인생과 죽음에 관한 자각의 조각들이, 고3 그때에 꿈을 통해 확실히 밀려온 것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의식 속에서 어떤 생각들과 자각들을 무시하고 거부해도, 무의식의 바다에 던져진 그 파편들은 떠돌아다니며 퍼즐을 맞추고 뭉치고 커져, 결국 내가 눈을 감고 의식을 내려놓을 때 내게로 거대한 빙산이 되어 밀려오는 법이며, 우리를 그것을 '꿈'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요?
한 번 죽음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하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뭣이 중헌디' 하는 생각으로 공부를 내팽개치고 정말 중요한 것을 찾아 나서는 과감하고 추진력 있는 성격은 아니어서, 일단 하던 공부는 마무리하고 대입 시험도 치르고 하던 거 다 했습니다만. 내가 일주일 뒤, 한 달 뒤, 혹은 1년 뒤에 죽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만큼은 끊이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의식 속에서 활개 치기 시작한 이상, 확실히 알아야만 되겠는 것이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사후 세계가 있는 것인지.
인간의 죽음과 삶,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신이 진짜 있는지.
신이 있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신은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고 있는지.
대학생이 된 내가 할 일은 남들 따라 미래를 위해 취직 준비하고, 틈틈이 연애하고 음주가무 쾌락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 맞는지.
신이 나를 만든 목적이 있는지.
그런 사명이 있다면 그건 어떻게 찾는지.
이후의 제 인생의 시간들은, 제가 만 19세에 품었던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삶이 죽음 앞에서, 신 앞에서 가치 있는 삶인지, 저는 정말 처절하게 매달리며 답을 구했습니다. 신을 만나기 위해 끝없이 길을 걸어 보기도 했고, 끝없이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려보기도 했습니다.
신이 계시다면 나에게 나타나 주세요. 단 너무 무섭지 않게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자정이 되면 귀신이 나타날 것 같아, 새벽까지 공부해야 하는 고3 생활이 고통스러웠던 겁쟁이였던 저에게 '신'과의 만남을 각오하는 일은 거의 '귀신'이 내 앞에 나타나는 걸 감수하겠다는 수준의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기도를 드린 후 내 삶에 기적 같은 만남들이 일어났고, 어느새 신은 내 곁에서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신과 함께 어떻게 인생길을 함께 쭉 걸어가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때때로 신 없이 살던 예전의 습관대로 혼자 몰두해 보고 싶은 일들, 혼자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귀찮다는 듯 신을 밀어냈고, 그럴 때마다 신은 나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며 멀찌감치 떨어져 주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나의 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신과 아주 가까이 느끼며 한 몸처럼 살아가는 법을 아직 잘 몰라요. 그렇지만, 항상 거기에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아직 부족한 사랑, 부족한 마음이지만, 나는 나의 삶을 신에게 드리고 싶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은 나를 고통에 빠뜨릴 뿐이라는 것을, 나의 인격은 선한 일로 마무리 짓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부족한 실수 투성이 존재라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나서, 내 맘대로 다 해보고 나서, 남은 것이라도 쓰시려면 쓰시라고 하는 것이 너무 알량하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저는 쓰임 받고 싶고, 온전히 신이 이끌어 가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신이 저에게 '글', '글을 쓸 기회'를 주셨다고 믿습니다. '글'이야말로, 제가 태어난 '목적'이며, 저의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의미 있는 '과정'이고 마쳐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엔 '대단한 작가'가 되어보겠다는 욕심에 가려져서 '사명으로서의 글쓰기'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기분이 나면 글을 쓰고, 내 글이 성에 차지 않으면 몇 달 몇 년씩 글을 쓰지 않는 오만방자하고, 게으른 태도로 글쓰기에 임했습니다. 욕심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허비한 시간들이 인간의 마음으로는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 안타까움 마저도 내려놓고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가는 글쓰기', '성실한 글쓰기'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 날', 내 죽음의 날이 오기 전에 해야 하는 것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저는 모릅니다. 저는 제 삶을 내가 계획하지 않기로 했고, 하루하루 신이 주시는 기회와 책임에 최선을 다 하기로 했으므로, 제 삶은 그저 '해'를 따라가는 '해바라기' 삶일 따름입니다. 지금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글을 꾸준히 써 나가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젠 다시 고3 때와 같은 똑같은 꿈을 꾼다해도 제 선택은 고민 없이 '글쓰기' 입니다. 그리고 신과 더 가까이 함께 지내며, 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사람을 지금보다 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글쓰기'와 함께 나아가야 할 저의 '목적지'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이 글들이 어디로 가는지, 누구의 마음에 가 닿을 것인지, 무엇이 될지는 아직 저도 모릅니다. 신이 제 글을 어떻게 사용하실지 어디로 이끌어 가실지, 무척 기대가 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