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감사 이야기'를 씁니다!
코로나지만 그래도 연말이라고 여기저기 소식 넣고, 선물 전하러 산타 배달하고 다니다 보니, 나름 이리저리 바쁜 연말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힘든 한 해였어도, 2020 한 해를 보내면서 잊어버리는 것이 없도록, 섭섭한 것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려 하니 마음이 분주하고, 그만큼 독서나 글쓰기에 집중이 잘 되지 않네요. 감사한 것들에 대한 글을 저도 써보겠노라고 생각만 할 뿐, 차분하게 앉아서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마음먹고 2020을 어떻게 보냈었는지 차분히 더듬어 보려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일단 순조롭게 적응
저희는 올해 3월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고 쿼런틴을 시작할 때, 이미 아이들은 많은 의논 끝에 작년 여름부터 홈스쿨을 시작했었던 터라, 온라인으로 공부를 해 오던 시스템이 있어서 아이들이 큰 사회적 변화에 놀라지 않고 혼란 없이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희 가족이 하는 교육 사업은 이미 30%가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었기에, 100% 비대면으로 돌리는 일은 저희에게 큰 어려움이 아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가 렌트하고 있던 오피스 주인이 쉽게 오피스를 비우고 나올 수 있도록 흔쾌히 조치를 취해주셔서, 저희는 천천히 이사를 하고 6월에 완전히 짐을 빼고 저희 집 지하실을 오피스로 꾸미고 재택근무를 시작했어요. 이런 팬데믹 상황에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처럼 그 모든 과정이 너무나 순조로워서, 저희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집에 오피스를 꾸밀 생각도 못했을 텐데, 집에 오피스를 꾸미니 렌트가 나가지 않아 한 달에 상당한 금액을 아낄 수 있게 되어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기적처럼 갑자기 터진 문제가 해결되고
여름에 오래된 수도관이 터져서 물난리가 한 번 났었어요. 이 동네가 40년쯤 된 동네인데, 이 동네가 지어질 때 수도관으로 썼던 재료가 불량품이어서, 집집마다 돌아가며 터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은 바가 있었어요. 작년 겨울에 옆집 앞 수도관이 터져서 공사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집 앞 수도관이 터지면 그 집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에 대한 방침은 주마다 도시마다 다릅니다. 집 밖의 수도관이 터질 때, 시에서 다 감당해 주는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쨌든 제가 사는 지역은 각 집에서 감당해야 한다고 하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이젠 우리 집 차례일까 염려하던 중에, 올여름 마침내 저희 집 앞 수도관이 터졌습니다. 여름이어서 땅이 얼지 않아 땅 파는 공사를 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으므로, 하루 만에 공사가 끝났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반올림해서 $3600불 (한화 400만 원 정도) 공사 비용이 급히 필요했는데, 정부에서 정확하게 $3600불 구제 자금이 나왔습니다. 저희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집을 돌봤던 시간
집이 오래되서 리모델링하고 고칠 곳이 많은 상황이었는데,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출퇴근과 밥사먹으러 나가는데 시간을 뺏기지 않아 그 시간을 집을 고치고 손보는 데 쓸 수 있었어요. 그래서 원래는 사람을 고용해서 하려던 일을 저희가 (디자인과 측정 설계도 그리기는 제가, 색 고르기와 막노동은 남편이, 재료 선정은 함께) 천천히 하고 있는 중입니다. 집구석구석 하나하나 고칠 때마다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내가 진짜 집을 관리하고 어른답게 책임지며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달까요. 주변 환경을 잘 돌보는 것과 나의 정신 건강이 이렇게 상관이 있는 것인 줄 이번에 절실히 느꼈어요. 누군가 유명한 강연가가 지금 당장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방 정리정돈부터 시작하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은 무척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주변부터 관리를 시작하면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는 성취감, 자신감도 생기고,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되는 그런 효과가 있는 듯합니다.
제대로 미니멀리즘 하는 시간
집을 고쳐야 하다 보니, 거의 이사를 위한 짐 정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안 쓰고 모시고 숨겨져 있던 물건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특히 '이건 언젠가 쓸지 몰라', '이건 좀 귀한 건데 없애기 아까워' 하며 잠자고 있던 물건들이 많았어요. 특히 요즘 정말 구하기 힘든 '이베이'를 통해 겨우 구했던 60년대 타자기 - 제가 이런 아날로그 기계 욕심이 좀 있어요 - 를 보낼 때는 마음이 좀 쓰렸습니다. '우리보다 더 잘 쓸 사람이 있을 거야.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쓰게 하는 게 잘하는 거야'라고 설득하는 남편의 말을 결국 따랐습니다. 코로나 상황에도 도네이션을 받아주는 곳이 있어서, 도네이션 할 수 있는 것들은 도네이션을 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코로나라 온 식구가 집에 함께 있기 때문에 공간을 더 많이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빈 공간이 생겨야 필요한 공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쓸데없는 짐들을 비워내고, 코로나 상황에 맞게 공간을 재구성했어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진 아이들이 집에서 책 읽기나 온라인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학습 공간도 더 크게 만들고, 여러 가지 놀이나 만들기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넣고, 영화관에 갈 수 없고 집에서 영화나 티브이를 더 많이 보게 되는 상황이므로 '엔터테인먼트 룸'도 만들었어요. 이 '엔터테인먼트 룸'은 이쪽 끝에 소파 저쪽 끝에 티브이 밖에 다른 가구가 없는 긴 방입니다. 텅 빈 바닥에 매트리스 하나 깔면 '홈트' 공간으로 바로 변신이 됩니다. 그리고 부엌의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던 캐비닛 하부장을 뜯고, 그 자리에 긴 테이블을 놓고 부엌에서 가까워서 더 편리한 다이닝 공간을 따로 만들었어요. 아이들 놀이 공간으로 준 곳이 원래 다이닝 공간이었습니다.
좋은 습관 만드는 시간
코로나 시작 직전에 <아주 작은 습관의 힘 (Atomic Habits)>이라는 책을 구해두었지 뭡니까. 주말에도 '집콕'하며 시간이 남아도니 집에 있는 책들, 사두고 읽지 않고 있던 책들을 다 꺼내 읽게 되더라고요.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들고 싶은 습관 리스트를 만들어 보고, 그 습관들을 매력적이고 쉽게 만드는 방법도 연구했어요. 집에서 매일 비슷한 스케줄의 일상을 보내다 보니, 루틴을 만들고 실행하기가 훨씬 쉬워졌어요. 신기하게도, 매일 내가 할 일의 리스트에 집중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코로나 때문에 자꾸 불안해지려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머릿속에 불필요한 상념들이 들어 설 틈이 없게 운동, 독서, 글쓰기, 영어 공부- 이놈의 영어공부는 30여 년째입니다-,...로 꽉꽉 채워 넣었습니다.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낸 덕분에 '쿼런틴' 시간 동안 정신을 잘 보호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쭉 다시 읽어보니, 정말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었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힘들었던 한 해, 더 힘들 수 있었던 한 해라는 것을 깨달으며, 저는 편히 나와 내 가족 몸을 누이고 쉴 수 있는 피난처 집이 있었음에, 따뜻한 물과 전기를 계속 쓸 수 있었음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양식과 기기들이 다 갖추어져 있어 편리하게 살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한 때 쇼핑 타이밍을 놓쳐 휴지와 클로락스 소독용 물티슈(Clorox Disinfectant Wipes)를 많이 구비해 두지 못해 괜찮을까 싶은 불안감에 걱정이 되던 때도 있었고,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게 더 안전하다는 초기 미국 질병관리본부 방침과 뉴스 기사에 혼란스러웠던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모든 게 정비되고 갖춰지고 사회 전체가 코로나 상황에 적응을 하고 있어서 그것도 매우 감사합니다.
없어 보면 더욱 감사해지는 법인가 봅니다. 코로나 전에 누렸던 일상과 인간관계, 주변 사람들 또한 모두 감사함으로 기억됩니다. 코로나에도 서로의 안부를 물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고, 코로나에도 서로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네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고, 서로에게 힘을 주고 위로와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가족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제 삶에 크게 숨통을 틔워주었습니다. 매일 이곳에서 글을 쓰는 시간이 저에게는 신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공격하는 이 위기 상황에서 상당한 압력으로 목을 조아 오던 '고립감'을 헤쳐나갈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만난 작가님들의 아름다운 글들과 구독자들은 저에게 '코로나 치료제'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코로나 예방 비타민' 정도의 가치를 가진, 하루에 꼭 섭취해야 하는 무엇이 되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사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감사한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조금만 더 쓰면 눈물로 터져 나올 것만 같습니다. 저는 내일 아침에도 일정이 있어서, 눈이 부으면 안 되니 감사 풍선은 여기까지만 불고, 작가님들 구독자님들께 날려 보내겠습니다.
감사 풍선 받으신 분은, 당신의 감사 이야기 들려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