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옆집 아줌마 시점

청소년 아들과 사이좋게 사는 법

by 하트온
그냥 옆집 애가 놀러 와서 앉아 있다 여기고 관심을 좀 줄여.


첫애가 사춘기를 시작할 때, 폭풍처럼 치고 들어오는 변화에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나보다 좀 더 일찍 이 시기를 보낸 친한 언니가 해 준 조언이다. 다른 어떤 조언보다 이 조언이 내게는 상당히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감정이 북받칠 때, 많이 섭섭할 때 내가 과잉 반응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었고, 아이들이 두는 거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지난 2-3년 동안 '옆집 아줌마 정신'으로 참 잘 버텨왔다 싶은 생각이 들어, 이 옆집 아줌마 시점을 낱낱이 분석 고찰해 보려 한다.



옆집 아들에게는 이미지 관리 좀 해야 함


놀러 온 옆집 아들에게는 가서 일러바칠 부모, 나중에 뒷말을 나눌 부모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아들을 '옆집 아들'로 보는 일에 핵심 콘셉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 친구 엄마가 어떤 차림으로 지내는지, 하루 종일 뭐하고 사는 여자인지 미주알고주알 캐물어 볼 수도 있다.


내 삶의 모습부터 점검해야 했다. 옆집 아들 앞에서는 잠옷이나 무릎 나온 낡은 운동복 바지 차림으로 있고 싶지 않다. '와 너네 엄마 미인이시다!'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멋지신데!' 하는 쉬크하고 트렌디한 느낌을 주고 싶다. 그래서 운동복도 요즘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아디다스 운동복으로 나름 멋 내며 차려입고, 아침 일찍 '옆집 아들'이 찾아오면 우아하게 - 과연 우아할지? - 요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후에 찾아오면 함께 베이킹도 하고, 가끔은 게임도 함께 해주고 - 요새 아이들 게임을 다 알고 있는 트렌디한 친구 엄마라니! -, 지들보다 최신 기기도 많이 갖추고, 해 보고 싶다 하면 '마지못해 하게 해 준다는 듯이' 선심 쓰기도 한다. 사실은 아이들이 내게 한 마디라도 더 걸게 유혹하려고 갖춘 거임.



옆집 아들은 좀 어른 취급해 줌


'옆집 아들'은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이라서 내 아들 대하는 마음과 좀 다르다. 얼굴을 마주치면 그냥 지나가지 않고, 적절하고 쿨한 인사를 던져준다. '안녕'이라든가 '좋은 아침이야'라는 친하지만 가족은 아닌 직장 동료에게 할 법한 인사를 무심하게 투척. '이 집 엄마 좀 쿨하고 매너 짱이신듯' 요정도 느낌을 연출하고 싶다. 또한 아들 친구에겐 음료수와 간식 대접을 소홀히 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도 자신만의 기호라는 게 있을 수 있으니 먼저 물어보는 건 필수. 가끔 스타벅스 바리스타 분위기 잡고 커피를 내리면서, '너도 커피 한 잔 할래?' 무심하게 당연하다는 듯 물어보면 아이는 지금까지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제안에 속으로 좀 놀라더라도,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선택을 해 볼 기회, 완전 어른 대접받는 기분을 잠시 누려볼 수 있다.



옆집 아들의 장래에 대해서는 신경 꺼도 됨



옆집 아줌마는 남의 집 아들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다. '얘가 지금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앉아 있으면 앞으로 뭐가 되려나'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옆집 아들은 우리 집에 온 손님으로 그냥 오늘 하루를 잘 보내게 도와주면 된다. 사실 그다지 관심을 둘 필요도 없다. 그냥 내가 나중에 그 부모에게 욕을 먹지 않을 만큼, 사고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지켜보고, 간식이나 원할 때 차려주면 된다. 우리 집에 오는 게 재밌고, 친구 엄마도 꽤 편하고 좋아서 자주 찾아오고 싶어 하기만 하면 된다.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게 옳다는 게 아니라, 힘든 사춘기는 하루하루 잘 보내는 것만으로도, 관계를 무난하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그만큼도 쉽지 않은 벅찬 일임.



'옆집 아들' 이름은 '유아인'으로 정했다. 시점도, '옆집 아들' 이름도, '옆집 아줌마' 스타일도 내 맘대로, 다 마음대로 바꾸는 즐거운 사춘기 아들 엄마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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