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덫
따르르르릉...
전화가 울립니다. 아침에 일어나 여유롭게 커피를 내리던 75세의 남자가 전화를 받습니다. 사업도 망해보고, 암 판정도 받아보고, 얼마 전엔 딸도 앞세워 보낸 ,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이지만, 공부도 많이 하고 삶의 지혜도 풍부한 강한 남자입니다.
"여보세요"
남자의 목소리엔 이제 막 삶의 평온을 느끼기 시작하는 여유가 있습니다.
"네 딸을 우리가 데리고 있어. 살리고 싶으면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름 끼치게 위협적인 목소리는 순식간에 노인의 아침 분위기를 전복시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여자의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딸의 목소리 같다는 두려움이 심장을 내려칩니다. 노인은 딸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화기 너머의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뭐든 시키는 대로 할 태니, 재발 내 딸만 살려주시오. 내게 하나 남은 딸이란 말이오."
노인의 아내는 노인이 냅킨 조각 써 준 메시지대로 조용히 집 밖으로 나가 경찰에 신고를 하고, 노인은 납치범들이 시키는 대로 전화기를 켠 채 혼자 운전해서 납치범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은행으로 갑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 사이 노인의 딸에게 전화를 하여, 딸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중임을 파악합니다. 사기라는 걸 파악한 경찰이 노인에게 달려가 전화를 끊으라고 딸이 잘 있다고 말해줍니다.
노인은 경찰관이 건네주는 전화기 너머 딸의 목소리를 듣고 몇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깊이 안심하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합니다.
이 이야기는 애슐리 스탈(Ashely Stahl)이라는 출간 작가이자 리더십 코치로 활발히 활동하는 30대 젊은 여성이 자신의 테드 강연 (2019년 6월)에서 청중들에게 들려준 실화입니다. 이야기 속의 노인은 그녀의 아버지입니다.
애슐리는 아버지의 대성통곡을 듣고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어떤 힘든 일을 당해도 아버지가 그런 울음소리를 낸 적은 없었습니다. 많은 아픔을 겪고 힘들었던 아버지가, 이젠 좀 편하게 노후를 보냈으면 싶은 상황에서, 다 늙은 아버지가 그렇게 크게 놀라고 상처 받는 것이,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 그녀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그럴 수가 있을까? 왜 그런 사람들은, 누군가 힘들게 모은 재산을 강탈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할까? 우리 아버지같이 현명하고 똑똑하신 분이 어떻게 그렇게 의심도 안 해보고 그렇게 금방 속아 넘어갈 수가 있었을까? '
그녀는 곰곰이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아빠 전혀 의심이 들지 않았어요? (Did you ever doubt that this was real?)"
그녀가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I didn't think there was better option)."
그녀는 아빠의 대답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 가지 기대하지 않았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버지도 그 강도들도 같은 '생각의 덫'에 걸린 거라는 걸요. 아버지가 그 상황에서 다른 방도가 없다 믿고 두려움에 굴복해 버린 것처럼, 그 사깃꾼들도 먹고살기 위해서, 살아 남기 위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악행'에 굴복해 버린 거란 걸요.
그녀는 강연에서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어린아이들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마구 만지고, 과감하게 다가갑니다. 그러다가 점점 두려움이 생기고 무서운 게 생기기 시작합니다. 다치기도 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부모에게, 교사에게 야단맞는 과정을 수없이 거친 후에, 결국은 '비난/비평'을 몹시 두려워하는 어른으로 점점 변해가게 됩니다. 두려움 때문에 하기 싫은 공부, 원하지 않는 전공 분야에 억지로 매달리며, 가기 싫은 회사도 꾸역꾸역 다니고, 정말 아니라고 생각되는 결혼생활도 이어갑니다.
사람이 두려움에 빠지면,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내가 뭘 원하는 사람인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무기력한 자세로 살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When we go into fear, we give away our power and we disconnect from who we really are and what we really want.)
두려움에서 빠져나와 나를 나 자신에게로 되돌려 보내주는 방법 (to get out of fear and come home to yourself)으로, 애슐리는 세 가지 단계를 밟을 것을 제안합니다.
1. 자신의 내면을 점검할 것 (Do a self audit): 자신을 붙들어 두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진실에 눈을 뜰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직장, 커리어, 결혼, 건강,... 있는 그대로 파헤쳐 보기 두려워, 스스로 진실을 보지 못하게 묶어 둔 영역이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 자신과 솔직한 대면을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2. 자신을 자유롭게 해 줄 것 (Follow your freedom): 느낌이 좋은 것에 집중하고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미국 사람 70% 이상이 처방약을 복용 중이고, 50% 이상의 결혼이 이혼으로 끝나는 현실. 미국인이 고통받는 가장 큰 문제의 근원은 '완벽주의'입니다. 그럴듯한 대학도 가야겠고, 그럴듯한 학위도 좀 따야겠고, 잡지 광고에 나오는 것 같은 완벽한 가정의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스스로를 자꾸만 -느낌이 좋지 않은 것도 무시하고 - 원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묶어 강요합니다.
30세의 나는 25세의 나와 같지 않을 거고, 40세의 나는 30세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커리어를 평생 계속될 무엇으로 보지 마세요. 당신이 진짜 어떤 사람인가를 찾아내는 실험이며, 당신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신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 아이디어들 하고 싶은 것들 해야 할 것들을 종이에 한 번 다 써 보세요. 그리고 각각의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당신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느껴보세요. 완벽주의는 솔직히 느끼지 못하게 자꾸 가면을 씌우는 '적'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완벽주의라는 가면은 실패가 두려운 사람들이 즐겨 쓰는 것입니다.
3. 연결하고 실행하세요 (Connect and take action)
아무것도 안 하고 멈춰 있는 삶은 무기력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 기회가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던지, 당신은 '유턴*'을 할 기회가 있습니다.
*유턴: 여기서 유턴의 의미는 두려움 때문에 굴복했던 나를 속이는 삶에서 돌아서서, 나 자신을 다시 진실된 삶에 복귀시키고, 내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잘 듣고, 진심으로 즐겁고 자유로운 마음을 회복한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공대'를 갔던 것이 나를 납치했던 것이었음을 깊이 깨닫습니다.
제가 공대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와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었던 것은, 그곳에 갔을 때 내 몸이 느끼는 느낌이 너무 나빴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지금 깨닫습니다. 4년간 내 몸이 거부하는 것을 참았던 것은, 남자들이 하는 공부를 하고 남자처럼 살아가지 않으면, 내 할머니, 내 어머니처럼 비참한 여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니,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자꾸만 시험만 치고 나면 흩어지는 모래성을 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일들은 모두 조금이라도 느낌을 좋게 해 볼까 싶어 했던 행동이었습니다. 여자들이 많은 학교 자연대로 옮겨가 석사를 한 것도, 연구소에 취직을 해 본 것도,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해 본 것도, 미국 회사에 취직을 해 본 것도,...
스스로에게 완전한 자유를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납치를 풀어주지 않은 상황에서 이리저리 달래 보려 한 것이라, 모든 것이 결국은 힘들고 괴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임을 지금 확실히 깨닫습니다.
두려움에 빠진 상태로 삶의 선택들을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자유롭지 않은 마음으로는 공부도, 커리어도, 결혼생활도, 자녀 양육도 아무것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좋은 열매가 맺어질 수 없습니다. 납치된 상태에 있는 자유롭지 않은 사람의 선택은 어느 것도 정상적으로 굴러갈 리가 없으니까요.
너무 오래 납치를 했었기에,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과정도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납치된 삶에서 익힌 사고 습관을 깨고 나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여정을 반드시 걸어 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