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동지들에게 상을 드리오!

'아직 살아있는 의병'이 '브런치 작가들'에게 보내는 서신 3

by 하트온



새해 첫날, 장한 그대들에게 '상'을 수여하오!


동지들, 힘들고 답답한 한 해를 이렇게 잘 견디고 2021 새해를 함께 맞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르오! 어려운 시간을 잘 넘어오신 그대들이 장하여 내 상을 수여하는 바요. 불안과 두려움의 파도가 세차게 몰아치는데, 굳건히 버티고 스스로와 가족을 잘 돌보고 계시는 모습이 어찌나 훌륭한지! 이 어려운 시기에 진심과 정성을 가득 담은 글로 온 대한민국과 세계만방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에게 위로와 격려를 건네며 정신적 지팡이가 되어주고 있는 그대들, 브런치 작가들이 너무나 아름답소! 내 한 분 한 분께 직접 상을 건네 드리며, 등을 다정하게 다독거리고 손을 맞잡아 드리고 싶은 마음이오만, 코로나 시국인지라 짧은 비대면 시상식, 손에 잡히는 것 없는 마음으로 주는 상과 격려로 만족해야 할 것 같소!





오늘은 특별히 남자현 독립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까 하오. 이 분은 우리들보다 100년쯤 전에(1872년, 경북 안동 출생) 태어나신 분으로 '여자 안중근'이라고 불릴 만큼 한 목숨 다 바쳐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이라 하오.



35세에 의병 단체를 돕기 시작


남자현 열사는 19세가 되던 해 (~1891) 김영주와 혼인을 할 때만 해도 평범한 듯했소. 하지만 남편 김영주는 1895년 을미사변 때 의병을 일으키고 그 길로 목숨을 잃고 마오. 남자현 열사는 그 이듬해 유복자, 김성삼을 낳아 기르면서 10년 넘게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살아가오. 그러다가 1907년, 남자현 열사가 35세쯤 되었을 때 그녀의 아버지이신 남정한 선생이 의병을 일으켜 당신의 자택을 임시 의병 장소로 삼고 여러 가지 활약을 하셨다 하오. 그때부터 남자현 열사는 장정 소집, 정보수집과 같은 임무를 맡아 의병단체를 위해 일하기 시작하셨다고 전해지오. 그리고 동시에 각 단체 및 마을을 순회하면서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그들의 독립운동에 정신적 지주 역할도 했다 하오. 또한 기독교를 전파하고 여성 교육회를 세워 여성을 계몽하는데도 열심으로 노력하셨다 하오.


47세에 만주로 망명, 독립운동의 대모가 되다


그러다가 1919년 47세쯤의 나이에 3.1 운동에 참여한 계기로 아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야 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드셨소. 김동삼의 서로군정서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독립운동가 옥바라지 등을 담당하여 활동하면서, 만주 지역 독립운동의 대모라고 불리셨소. 또한 무장 투쟁이나 테러 위주의 독립운동을 적극 후원하고 참여하셨고, 두 차례나 한국 내에 잠입하기도 하셨소. 심지어 두 번째 잠입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암살을 목적으로 잠입하신 것이라 하니, 얼마나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셨는지!


1928년, 그녀의 나이 56세에, 만주 길림에서 김동삼, 안창호 등 47명의 독립 운동가들이 일본의 사주를 받은 중국 경찰에 검거되자, 지성으로 간호하며 석방 운동에 힘써 보석으로 풀려나게 했으며, 1931년 김동삼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도 탈출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셨다 하오.


60이 넘은 나이에도,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고 타오르다


1932년 만주국 수립으로 영국인 리튼이 이끄는 국제연맹의 조사단이 하얼빈에 오자 손가락을 잘라 흰 수건에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써서 조사단에 보낸 일화가 유명하오. 1933년, 60이 넘은 나이에, 동지들과 주만일본대사이자 관동 사령관인 무토 노부요시 암살 계획을 세우고, 연락 및 무기 운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걸인 노파 차림으로 하얼빈에서 정탐활동을 하다가, 밀정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버리셨소. 6개월 동안 갖은 고초를 겪으시다가, 보름에 걸친 옥중 단식투쟁 후 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이미 건강을 잃으신지라 풀려나오신 직후 바로 사망하셨다 하오.




나는 그녀가 40이 다 된 나이에 그 당시 여자에게 요구되던, '평범한 아녀자'의 삶을 벗어버리고, 목숨을 건 치열한 삶을 택한 것이 참으로 놀랍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오.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애 키우는 엄마도 전사가 될 수 있음을,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우리 인생의 훌륭한 모델이라고 생각하오.


나는 지금 이 위기가 우리가 '평범한 내 삶'을 뛰어넘어, 적과 싸우는 전사가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하오. 그때는 일제 압제 속에서 조국을 되찾는 것이 열사들의 사명이었지만, 지금은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우리의 정신을 지키고, 서로를 돌아보는 인간성을 되찾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오.


코로나 감염자들이 늘어나고, 이 상황이 끝이 없으리라는 절망감에 낙담과 절망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요즘, 우리는 더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하오.

위험한 집단생활을 벗어날 수 없는 빈민들, 감옥에 갇힌 죄수들, 도움 없이 못 사는 장애인과, 거동이 힘든 노인들, 장기 입원 환자들, 그들을 간병하고 사는 삶의 무게가 힘에 부치는 보호자들, 그 외 모든 빠져나오기 힘든 인생의 바닥에 갇혀있는 사람들,... 일반 사람들과 더 나은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아, 자신을 위한 어떤 준비도 하기 힘든, 이 사회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사람들...


우리가 불안감을 느낄 때, 그들은 절망과 분노를 느낄 것이오.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정신을 적에게 내어주고 말게 되오. 절망과 공포가 분노가 되어 그들을 빠른 속도로 삼켜버리기 전에


이 세상이 꽤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
도처에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있다는 것,
서로 도우며 일어설 수 있다는 것,
정신만 지키면 어떤 적으로부터도 독립을 이루고 마침내 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것들을 알리고 실천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소.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강한 전사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하오. 그리고 나아가 서로에게 이 정신을 고취시키는 것이 우리들의 현재 임무라고 생각하오!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먹을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코로나를 이겨내야 하오!


내 마지막으로 남자현 열사의 사진과, 사망 직전에 남기신 유언을 전하오.


Screen Shot 2021-01-01 at 1.17.42 PM.png 사진 출처: http://www.moi.so/web/moi_pg.aspx?moicd=MM000105922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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