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을 지켜보다 깨달음이 왔던 날의 일기

아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하루

by 하트온
지금 사춘기 자녀를 돌보는 것이 힘든 누구에겐가 힘이 되어 주고 싶어서, 힘든 날 제 마음을 날 것 그대로 토로했던 일기를 공개합니다.


2019년 4월 27일,


아들의 이유 없는 반항이 시작된 지 여러 날이 지났다. 아들의 급격한 성장에 재빨리 적응하기가 참 힘들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사실 갈피를 완전히 잡은 건 아니고, 여전히 내일도 모래도 힘이 들겠지 마음은 먹고 있다. 다만 오늘 하루 갈등이 없었던 것에 나는 감사하며 자축하고 기뻐하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있다. 이 조그만 평안에도 나는 샘솟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지를 깨닫는다. 이 시기가 지나면 나는 훨씬 잘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오늘 사실 이렇게 평화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하루 종일 아빠가 데려나갔다가 저녁 먹을 때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이런저런 자료와 강연을 찾아보며 사춘기 청소년에 대한 공부를 좀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나의 권위적 압박이나, 격한 감정표현들이 쌓이고 쌓여 아이의 자존감을 많이 손상시켰을 수 있었겠다는 깨달음. (가능한 자유함 속에서 존중하며 키우려고 어릴 때부터 매우 신경 쓰고 감정 코치하며 키웠음에도 불구, 나의 인격적 한계 때문에...) 첫아이라, 더 많이 야단치고 동생을 잘 데리고 놀고, 돌보라는 과도한 책임도 힘겨웠을 거라는 깨달음. 상대적으로 엄마 말을 잘 따르는 편인 둘째와 저를 저울질하는 비교의식에 시달렸겠다는 깨달음. 한국과 미국 두 문화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도 상당했겠다는 깨달음. 동시에 사춘기를 겪는 같은 반 아이들도 서로가 서로를 감당하기 힘들겠다는 깨달음.


두뇌발달이 급격히 일어나면서, 예전엔 몰랐던 것들이 깨달아지고, 가치관과 성품에도 변화가 왔을 것이다. 이 모든 변화가 아이에게 불안감과 혼란을 주고, 그것은 일상의 큰 스트레스가 되겠다는 데까지 이해가 가 닿았다.


아이가 집에 왔을 때, 나는 아이에게 거의 말을 시키지 않고, 말을 걸 때만 대답해 주고 말과 관심을 아꼈다. 눈이 마주치면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거나 웃어주기만 했다. (표정으로라도 긍정적 메시지를 주려고)


되도록 작은 아이에게도 냉담하게 대하고, 두 아들 사이에 갈등의 시초가 보이면, 전처럼 큰 아이에게 연장자 책임을 묻기보다, 작은 아이가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잘하고 있는지 리마인드 해주며 분위기 전환을 시켰다. 그랬더니, 큰애가 오히려 작은애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기도 하고, 큰 갈등으로 번지지 않는다.


지금 큰 다행이다 싶은 건, 우리 부부 관계가 어려웠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 마음 한 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상황을 견뎌주기가 훨씬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지금부턴, 격한 불안감을 더 잘 떨쳐내고, 이성적으로 차분히 대화를 이끌어 가는 강하고 담대한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이의 자존감 회복을 도울, 사랑의 말들을 지혜롭고 긍정적으로 잘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날 이후, 심한 갈등으로 치달았던 아들과의 관계가 점점 더 나아지고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아들의 사춘기 반항은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이때부터 제가 보다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어떤 중심을 단단히 잡고 아이를 대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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