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찢고 나와 주인공이 서야 할 빛 가운데
힘이 없고 색이 분명치 않으면 남이 마음대로 편한 대로 꽂아 넣는 엑스트라로 살아가야 한다. 약점 잡힌 게 있든지, 돈이 궁하면, 죽기보다 싫은 역할도 마다할 수 없다. 나는 남규식에게 그의 온갖 괴상망측한 스토리를 마음껏 펼쳐 볼 수 있도록 자유자재로 꽂아 넣을 수 있는 엑스트라였다. 내가 그를 찾아갔을 때쯤 그는 '로맨스 게임'이라는 소설이 영화로 제작되고, 영화까지 대박을 치는 바람에 엄청난 명성을 얻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그 소설은 세계 10여 개국에 번역되어 출간되면서 세계적으로 독자 마니아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나를 유인한 것도 그 대단한 명성이었다. 그의 책은 현대인의 첫사랑에 대한 로망을 품위를 갖춘 세련되고 도회적인 감수성으로 그려낸다는 평을 받으며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던 때였으므로, 나는 그 사람이 내가 다니게 된 대학의 교수님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찾아가지 않고 그의 책만 읽었더라면 그는 끝까지 내게 신화적 존재로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가 기발한 작가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건 문학적 재능만이 아니었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둘러싼 무리가 있었다. 부모 때부터 집안 이해관계로 얽혀 하나의 악마 집단을 이룬 5인조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에이스 클럽'이라고 불렀다. 노력으로 이룬 에이스가 아니라 에이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었다. 이미 만들어진 자리에 오를 구색을 갖추기 위해 부모가 구해다 주는 답안지를 미리 봐가며 자기들끼리 술수를 공유하며 서로가 서로의 어두운 뒷면을 지켜주도록 구성된 그런 집단이라는 것을 4년간 그들의 곁에서 이리저리 갖다 꽂히는 엑스트라 시선으로 관찰하며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끼리 나누는 솔직한 대화에서 나를 소외하는 방법으로 일본어와 영어를 쓰곤 했다. 아무리 모르는 외국어도, 오랜 시간을 가까이서 관찰하다 보면 점점 그 의미가 파악되는 법이다. 어떤 뜻 모를 문장들이 나를 향하고 뇌리에 박히면 집에 와서 뜻을 찾아보게 되는 법이다. 그렇게 한 단어 한 문장씩 익숙해지면 언젠가는 언어 규칙 전체가 파악되는 법이다. 어쩌면 나는 그때 어느 정도 영어와 일본어에 익숙해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들을 일도 사용할 일도 없어 일본어는 자연스럽게 잊혔지만, 뭄바이에 와서 영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영어의 기본이 이미 내면에 자리 잡혀 있음을 깨달았다. 6개월 만에 귀가 뚫리고 입이 트였었다.
남규식이 그들 사이의 왕이 된 것은, 그들보다 집안이 나아서도, 재산이나 힘이 그들보다 많아서도 아니었다. 남규식은 그들의 무료한 일상에 끝없는 활기를 더해주었기 때문이다. 남규식의 실체를 모르는 독자들과, 그의 실체를 잘 아는 에이스 집단 둘 다를 열광시키는 것은 바로 그가 좋아하는 '로맨스'라는 소재를 이리저리 변형하며 기발한 상황극을 시도하는 데 있었다.
나는 결국 그 5인조와의 모든 상황극에 꽂혀 들어간 여주 같은 엑스트라, 엑스트라 같은 여주였다. 그냥 단순히 조용히 입을 닫고 술을 따르거나, 하룻밤 상대로 끝나는 그런 일이었다면 더 쉬울까 생각이 들만큼 이건 너무나 힘든 감정 노동이었다. 이건 마치 다섯 명의 남자와 동시에 사귀는 다중 인격 미친년이 된 느낌이랄까. 다섯 명의 남자 아이들 손에서 인형 놀이를 당하는 바비인형이 된 느낌이랄까.
다섯 명이 한꺼번에 나를 애인처럼 대하고 나에게 각기 다른 캐릭터의- 각자의 로망과 욕망대로 - 애인의 역할을 요구했다. 나는 당시 유행하던 영화 드라마 소설 여주 캐릭터들을 한 번씩은 다 연기해야 했었다. 몇 부작만 연기해 내면 극이 끝이 나는 배우들은 좀 나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남주도 여주도 모두 관객의 욕망을 위해 동등한 입장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니 서로를 마주하는 일이 비참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내 입장은 달랐다. 나는 남주의 욕망대로 움직여야 하는 엑스트라 취급받는 여주라, 그것도 언제 극이 끝날지 모르는 끝없이 이어지는 악몽 속에서 내 영혼은 수십수백 번 총알탄이 뚫고 지나간 패잔병의 깃발처럼 너덜너덜해져가고 있었다. 관심과 사랑이 깨끗이 결여된 욕망과 욕구, 가까이 들이대는 눈빛에 드러나는 경멸과 조롱의 빛은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나 같은 관종에겐 총칼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때 너무 많이 고갈당해 진짜 누구도 말릴 수 없이 고파 허덕거리는 관종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나라는 엑스트라가 등장하기 전에도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후에도 했으리라는 걸. 그들이 나에 대해 사용했던 표현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There are so many desperate poor girls.... after all she is replaceable..."
그들에게 나는 너무 가난해서 무슨 짓이라도 시키는 대로 할 간절한 마음을 가진 수많은 여자애들 중 하나이며, 언제나 교체 가능한 존재임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으나,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그날 밤 사전을 찾아가며 깨달으면서 나는 새삼 비참했고 동시에 안도했다. 내가 언젠가 사라져도 그들은 나를 굳이 귀찮게 찾지 않을 거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들은 두려울 것도 없었던 게, 성추행이나 성폭행의 여지가 남지 않도록 모든 '사귀는 연기' 과정동안 사진과 문자 증거를 수집해 두었던 것이다. 왜 자꾸만 진짜 연인 포즈로 사진을 같이 찍자 하고, 문자 데이트를 하자고 하는지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아마도 김종희가 같은 짓을 당했고, 그것에 대해 '미투 폭로;를 한 것이었다면, 그녀는 결국 그 악마들이 수집한 사진과 문자를 풀어 버린 순간, 동시에 남자 여러 명과 놀아난 그렇고 그런 여자로 몰려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김종희가 그들의 피해자였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짐작하지 못했었다. 어느 날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걸었고, 성경공부를 같이 하자고 해서 그저 대학 캠퍼스에 흔한 기독교 단체에서 나온 사람이겠거니 여겼었다. 내가 그녀가 가자는 대로 성경공부를 해 보겠다고 따라갔던 건, 그림자 유령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나에게 누가 길에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열의를 가지고 말을 걸어오는 일을 처음 겪어 본 탓이었다.
그녀는 성경을 펼치며 말씀을 같이 읽자고 했다. 그녀와 함께 읽었던 내용은 대략, 예수가 사마리아라고 하는 유대인이 상종하지 않는 사람들의 땅 어느 우물가에서 그 때 물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예수가 그녀에게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자, 그녀가 남편이 없다 말했고, 예수는 남편이 다섯 있었으나 지금 함께 사는 사람도 진짜 남편이라 할 수 없으니 남편이 없다는 여자의 말이 옳다고 했다. 여자의 삶을 훤히 알고 하나님처럼 말을 하는 이 분이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분명하다 믿은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예수의 이야기를 전하고, 모두 예수를 믿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고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어느 마을의 신화 같은 그런 이야기일 뿐인데, 나는 그날 그 성경을 함께 읽으면서, 내 앞에 앉은 이 여자가 나의 사생활을 알고 내게 접근한 건 아닌가 불안해지기 시작했었다. '죄인'이라고 인생 최초의 손가락질을 받는 느낌. 내 죄가 낱낱이 드러나고 발가벗겨진 느낌. 칼날 같은 죄의식과 수치심이 샘솟아, 위장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성경을 다 읽었을 때 즈음 내 얼굴을 새빨개 졌고, 극심한 두통을 느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나는 토하고 또 토하고 괴로워 뒹굴면서, 다시는 성경공부 따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미칠 노릇인 게, 그녀는 내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내가 피하는 것 같으니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편지에 써 주는 성경 구절들의 손가락질마저도 너무 아파, 그녀의 이름이 적힌 편지 봉투를 뜯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내가 대학 3학년생이 되었을 즈음부터는 연락이 끊어졌다. 문득, 내가 그녀를 처음 본 대학 2학년 초에, 그녀가 4학년이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졸업을 했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4학년 마지막 학기에 그녀에게서 마지막이 될 편지를 받았다. 그때쯤엔 나는 문신과 피어싱이 가득한 센 언니가 되어 있었으므로 편지를 뜯어볼 용기가 충분히 있었다.
대충 읽고 찢어 버렸으므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언젠가 마음을 쏟아 놓고 의논하고 싶은 사람이 필요하면 자기에게 연락하라며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대형 출판사에 취직을 한 모양인지, 익숙한 출판사 로고가 적인 명함도 하나 들어 있었다. 나는 결코 내 내면을 아는 척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던 때였으므로, 미련 없이 모두 쓰레기통에 넣고 잊었다.
그렇게 재수 없어하며 잊고자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뭄바이에서 다시 듣게 되는 입장에 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가 자신도 피해자라고, 좋은 꼴 볼 일 없으니 이 길에서 빠져나오라고 처음부터 솔직히 말을 했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아마 그때의 나는 오히려 더 싫어했을 것이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을 마치고 작가의 꿈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에 목숨을 걸고 있던 때였으니까. 영혼을 팔고, 양심에 불을 지져 굳히고 있던 때였으니까.
아난트를 만나고 돌아와서, 지난 3일 내내 그녀의 페북을 들여다보고 있다. 페북 포스팅들을 근거로 그녀의 삶의 자취를 더듬어 추적하고 있다. 그녀는 마치 세상과 맞서 혼자 싸우고 있는 독불장군 투사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도 그녀에게 칭찬 한마디 해 주는 사람 없는데도, 그녀는 꾸역꾸역 페북 활동을 하고 있다. 1인 출판사를 차렸다는 광고나, 강연 행사 광고도 있지만, 대부분의 포스팅이 주어가 없거나 주어가 있어도 전체 문장 내용과 맞지 않는 난해한 글 일색이다. 명예훼손 죄로 다시 걸려 넘어질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기다리고 있다. 동지들이여, 이제 앞으로 나와 같이 싸우자.' 같은 선동 문구 느낌의 포스팅들이다. 성경책을 들고 다니던 조용하고 차분하던 김종희와 지금 이 페북의 김종희가 같은 사람일까 의심마저 든다. 페북 사진은 그녀의 뒷모습인 데다, 매우 짧은 쇼트컷에 모자를 쓰고 있어서, 그때의 단발머리 그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그녀의 페북 대문 창 오른쪽 '메시지' 단추를 꾹 누른다.
'혹시, 저 기억하세요. 이은수예요. 예전에 성경공부 같이 한 번 한 적 있고, 편지도 많이 주셨었는데...'라고 썼다가 문득, 내가 왜 이 사람에게 연락을 해야 하지 라는 질문이 메시지 보내기 단추를 누르지 못하게 내 손목을 꽉 잡는다.
김종희의 페북 분위기로 봐서는 분명 피해자 둘이서 같이 고소를 하든 뭘 해보자고 덤빌 것 같다. 나는 그럴 수 없다. 남규식이라는 대작가에게 덤비는 여자 둘이 누구일지 전국적으로 화젯거리가 되는 일에 나를 내칠 배짱이 없다. 다섯 명의 악마들이 사귈 때 사진과 문자라며 다 풀어 댈 것이고, 그런 이미지를 등에 업고 나는 작가 활동을 할 자신이 없다. 남규식이 힘닿는 대로 다 막고 다닐 게 분명한 데도 나는 아직도 이 작가 꿈, 글로 먹고 사는 꿈을 못 버린다. 대한민국 최고 인기 작가의 반대편에 서는 일은 대한민국에선 안될 꿈일까.
대한민국 최고 인기 작가의 반대편에 서는 사람이 둘이 되면 좀 나을까. 혹시 셋이 되고 넷이 되면 좀 더 나을까. 김종희에게 연락하는 일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예전처럼 성경공부에 질질 끌려가는 멋모르는 촌뜨기도 아니고, 내가 원하지 않는 일에 힘없이 휘둘릴 20대도 아니다. 나는 지켜야 할 나름의 가족이 있는 '엄마'고, 아직은 법적 '아내'이기도 하다. 김종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몰라도, 이제 와선 그냥 또래 아줌마일 뿐. 그녀가 나를 마음대로 휘두를 여지도 권한도 없다.
나는 그녀에게 미리 엄포를 놓는 것처럼 메시지 보내기 단추를 팍 힘껏 눌러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