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Ch.3
커뮤니티 안에서 무시당하는 집 딸
독실한 몰몬교인들은 술뿐 아니라 커피도 자제를 할 정도로 쾌락 추구를 자제하며, 성실하게 성경을 따르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떤 면에서는 유대인들과도 닮아 있는 면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마을 분위기 안에서, 부지런히 성실히 몰몬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쉽게 상종 못할 사람이 되고 만다.
타라 웨스트오버 작가의 외할머니가 그런 상종 못할 집의 딸이었다. 그 동네 유명한 술주정뱅이, 알코올 중독자의 딸이었던 외할머니는 교양 있는 집 자제들이 피해야 할 신붓감으로 진작에 낙인찍혀 버렸고, 그것은 그녀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She was deemed unmarriageable by the respectable men in town.)
자식들에게 좋은 가정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
다행히, 그 마을의 그런 분위기를 잘 모르는 해군을 막 제대한 성품 좋은 청년(타라의 외할아버지)이 나타나 타라의 외할머니와 결혼했다. 그녀는 그때부터 최선을 다해, 마을에서 인정받는 좋은 가정 좋은 집안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 했다. 남편은 우체부로 일했고, 아내는 마을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바느질 기술을 가진 침모(seemstress*)였다.
seemstress: 침모 a woman who sews, especially one who earns her living by sewing.
두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타운 한가운데, 하얀 펜스로 마당을 두른 예쁜 집을 샀고, 아내는 자식들에게 귀티 나는 멋지고 예쁜 옷들을 만들어 입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을 상처 입혔던 동네 사람들의 경멸로부터 자신의 딸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This would, she believed, shield her daughtors from the social contempt that had so wounded her.).
특히 장녀 딸 (타라의 어머니)의 경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옷차림이며 교우 관계며, 엄마가 굉장히 신경 쓰며 관리를 했다. 1970년대 소녀시절, 그녀에게서는 깔끔하고 정돈된, 괜찮은 집에서 자란 교양미가 넘쳤다. 그게 다 그녀의 어머니가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Her life had an air of intense order, normalcy, and unassailable respectability. The air of respectability was carefully concocted by her mother).
엄마의 낮은 자존감과 딸이 느끼는 고통과 속박
문제는 엄마가 '좋은 집안'을 주고 싶어 하는 만큼 그녀의 장녀 딸 (타라의 어머니)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에게서 흘러온 낮은 자존감의 고통에 시달렸던 것 같다. 타라의 어머니가 나중에 딸에게 고백하길, 자신은 people pleaser* 성향이 있다며,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 되려고, 강박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왜곡시키고 바꾸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She said she couldn't stop herself from speculating what people wanted her to be, and from contorting herself, compulsively, unwillingly, into whatever it was.).
*people pleaser: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타인을 만족시키고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
밖에 나갈 때, 특히 교회 가는 날 아침에 새벽부터 일어나 머리를 꾸미고, 옷을 고르고, 신발까지 꼼꼼히 어울리는 것으로 맞춰야 했다고, 흰색인지, 크림색인지, 굽이 얼마나 낮은지까지 꼼꼼히 외할머니가 체크하셨다며 타라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어릴 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린 타라는 엄마가 그런 피곤한 생활 - 흰색과 크림색을 구분해야 하는 복잡한 생활- 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게 돼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타라의 어머니는 산골 청년인 타라의 아버지가 마을에 나타났을 때, 크고 광대한 산을 누비며, 고립 속에서 프라이버시를 충분히 누리며, 주변 사람 신경 안 쓰고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사는 그의 모습에 뭔가 신선한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There's a sense of severeignty that comes from life on a mountain, a perception of privacy, and isolation, even of dominion. It's a tranquillity born of sheer immensity).
그를 따라 산골 마을로 들어왔을 때, 그녀는 마침내, 주변 사람의 시선과 비난을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어 자유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의 부모 형제 어느 누구도 이 결혼에 찬성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유를 찾아 기꺼이 산골 생활을 택했다.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의 반복
작가 타라는 문득, 자신의 삶이 자신의 외할머니의 삶을 닮아 있음을 느낀다. 부모로부터 내려온 편집증과 근본주의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 왔는지를 깨닫는다. 외할머니에게 하얀 담장의 예쁜 집과, 자식들에게 해 입힌 예쁜 옷들은, 자신에게 있어 자신이 일군 학위와 자격증들임을 깨닫는다. 교양 있는 괜찮은 사람 같은 분위기를 주는 무엇. 모양과 색깔만 다를 뿐 같은 삶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본다 (How the paranoia and fundamentalism were carving up my life, how they were taking from me the people I cared about and leaving only degrees and certifications- an air of respectabliity - in their place. What was happening now had happened before. That tape was playing in a loop.).
작가는 쳅터 3에서 그녀의 아버지의 부모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아버지의 아버지 (타라의 할아버지)는 굉장히 화를 잘 내는 성미 급하고 예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타라의 할머니)는 일을 하러 다니셨는데,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집에 성마른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여자가 일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아버지의 보수적 태도는 여자들이 일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믿음보다, 아마도 어릴 때 엄마가 일하러 밖에 나간 것이 자식의 입장에서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 근본 이유가 아닐까 작가 타라는 짐작한다. 보수적이면서도 관습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태도는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작가는 또한, 아버지의 젊은 날 웃는 인상의 편해 보이는 사진과, 지금 공포와 두려움에 찌든 아버지가 너무나 다른 사람 같아, 조울증이라거나 어떤 정신병력이 성인이 되어 발현된 케이스가 아닐까 아버지의 문제를 짐작하고 있다.
나는 챕터 3을 읽으면서 나의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 자신의 과거 선택들에 대한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1921년 생이시고, 그녀의 아버지는 한글과 한문을 가르치는 마을의 훈장 선생님이셨다. 일제시대였고 일본말을 하지 않으면 어딜 가도 몽둥이질이 도처에 도사리던 시대였으므로, 상당수의 아이들 -특히 여아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훈장 선생님께 배우는 아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할머니를 비롯한 딸들은 굳이 글을 배우라고 강요받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바느질을 훨씬 좋아했고, 8명의 딸들 중 여섯째였던 할머니는 언니들과 바느질하는 게 너무 좋아서 글 배우기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고, 그때 배워두지 않은 게 너무 아쉽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그녀는 결혼하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존경받는 집 괜찮은 집 딸이었는지를 깨달았던 것 같다. 일제시대에 위험을 무릅쓰고 한글을 가르치는 훈장 어른의 딸이 었으니, 자식을 맡기는 입장이었던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스승으로 귀하게 대접했을까.
그녀가 18세의 나이로 결혼하고 보니, 남편은 나이도 많고 -22세인 줄 알고 왔는데 26세 노총각- 시어머니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사람이었다. 상상을 좀 가미하자면, 26세의 노총각은 술버릇 혹은 뭔가의 이유로 마을 제대로 된 집에서 아무도 딸을 주려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존경받는 집안 출신의 한창 꽃다운 나이, 미모가 피어나는 18세의 자신보다 못해도 너무 못하다 싶은 형편없는 집안의 늙은 추남이 아니었을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몹시도 무시하고 경멸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할머니는 할아버지만 보면 정말 싫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할머니는 말끝마다 '이래야 양반이지, 그러면 상놈이다'라는 말을 달고 사셨다. 또한 유명 여대 총장이며 대단한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 집한 사람이라는 말씀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스스로를 양반 신분이라 여기고, 할아버지를 상놈 신분으로 여겼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 결혼을 하게 된 것이 평생 견딜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할머니는 뛰어난 바느질 능력으로 자식들을 깨끗하게 입혔을 것이고, 음식도 누구보다 잘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자식들에게 늘 강조한 것은 양반같이 행동해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아버지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술주정 한 번 부리고 나면 마을 사람의 손가락질이 항상 다가왔을 것이고, 자존심 강한 할머니와 아빠는 그 모욕감, 사회적 멸시가 너무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들은 순하디 순한 내 엄마를 호령하며 그 잘난 자존심과 권위를 있는 대로 부리며,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의 가정을 이뤄보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버지가 사업에 성공하고 큰돈을 벌던 시절에는 자신들이 그런 괜찮은 집안을 만들고 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벌어도 대학을 나온 사람들 앞에 설 때, 당신처럼 자수성가 스타일이 아니라 대대로 잘 살아온 사람들과 마주할 때 낮은 자존감의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돈이 생길 때마다 그 빈 마음을 채울 쓸데없는 것에 돈을 쓰는 낭비를 일삼았을 것이다. 동네에서 제일 큰 집을 짓고, 자신을 모셔 줄 기사를 고용하고, 비싼 자동차에 비싼 옷을 사 입고, 아이들을 비싼 옷을 입히고, 비싼 외제술을 모으고, 고향 마을에 잔치를 열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애쓰고 대접하고,...
아버지의 낮은 자존감은 나에게 흘러들어왔을 것이고, 항상 결핍을 느끼는 삶에 고통받는 아빠를 안쓰럽게 여긴 나는 괜찮은 집안, 좋은 학벌을 만들어 아버지의 삶을 채워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고, 줄줄이 학위를 따고 아버지가 내 등에 부리는 무게에 시달리다가,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미국에 와서도 그 부담감이 벗어지지 않아 계속 학위를 따고 끝없는 공부를 하고 끝까지 나를 몰아붙이며 달렸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다 어느 순간, 타라의 어머니처럼 산골짜기 마을 같은 타국에서 더 이상 아무도 나를 재고 판단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자유를 느끼기 시작한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심리적 습관적 욕망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고, 혼돈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 타라가 느끼는 세대를 반복하며 돌고도는 무엇, 존경받는 삶을 이루고 싶은 욕망이 무엇인지 나도 알 것 같다. 그 욕망이 진짜 중요한 본질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마음의 자리를 차지해 버리기 쉽다는 것도 절감한다.
나는 이제 본질이 아닌 것들 - 존경받는 삶, 괜찮은 집안, 좋은 가정,... 같은 막연한 허상적 욕망 - 을 확실히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