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Ch.4
애리조나로의 여행
기분도 좋고 컨디션이 좋았던 아버지가 크리스마스가 지나고부터, 상태가 확연히 나빠져가는 게 눈에 보였다. 처음엔 말수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눈빛도 점점 어두워지고, 걸어 다니는 자세가 축축 처지는가 싶더니, 1월이 되자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천장만 멍하니 보며 사람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의 아내, 타라의 어머니는 시부모님이 겨울을 보내고 계신 애리조나로 가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아마도 남편은 해바라기 같은 사람이라, 이렇게 따뜻한 햇볕을 못 보고 눈산에 갇혀 있으니 죽어가는 거라 생각한 것이다.
타라의 가족은 12 시간을 꼬박 달려 애리조나 사막에 있는 모빌홈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첫 이틀을 집 앞마당에 꼼짝 않고 누워 햇볕을 쬐더니, 3일째부터는 그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점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을 먹고 그의 어머니(타라의 할머니)는 전화 메시지 온 것들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메시지 중 하나가 그녀가 다음날 의사와 약속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병원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그 전화가 아버지 안의 어떤 큰 감정을 건드려 버렸다.
하나님의 치료방법인 '허브 요법'만을 따르지 않고, 병원도 다니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척하면서 사탄도 숭배하는 행위와 같다며, 그는 그의 어머니가 일루미나티 비밀요원이라고 주장했다 - 한 마디로 자기 어머니를 악마 숭배자라고 몰아가는 상황. 하나님이 그러한 배교 행위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며 열변을 토했다. 하나님 대신 의사와 약을 믿는 것은 우상 숭배이며, 영혼의 더러운 매춘 행위라고 소리쳤다 ("Doctors and pills, that's their god, and they whore after it"). 아버지는 저녁 내내 몇 시간 동안, 같은 말을 하고 또 하며 작가의 기억에 또렷이 남는 싸한 저녁 분위기를 만들었다.
타라의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어른들은 -타라의 어머니와 할머니, 그들도 몰몬교 신자들이지만 - 허브는 건강 보조제일뿐, 심각할 땐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던 것을 작가는 기억한다.
아파치 부족과 흑요석의 전설
며칠 후 할머니는 타라를 데리고 애리조나의 돌산 공원으로 경치를 보여주러 나섰던 듯하다. 거기서 타라는 신기한 검은 돌들이 널려있는 것을 보았는데, 할머니가 그 돌의 이름을 '아파치의 눈물(Apache tears)' - 이 돌의 학명은 흑요석(obsidian)-이라고 알려주며, 돌에 얽힌 전설을 말씀해 주셨다.
수 백 년 전 미국 서남부를 누비며 살던 아파치족은 이 땅에서 미국 군대에 대항*하여 전쟁을 했었다. 아파치족은 미군 병력에 비해 열세한 입장이었고 결국 전쟁에서 졌다. 아파치족 전사들은, 완전히 포위된 막다른 상황, 이제 남은 것은 죽음뿐인 상황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말을 타고 산을 향하여 전력 질주하며 미국 기병대를 뚫고 지나가는 동안 그들의 몸은 발기발기 찢어져 그렇게 한 명씩 죽었다. 후에 아파치족 여자들이 전사들의 토막 난 시체들이 돌산 바위 위에 즐비한 것을 보고 대성통곡을 하였는데, 그 눈물이 떨어져 땅을 건드리자, 이 흑요석 돌멩이로 변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와 이 돌의 이름이 아파치의 눈물이 되었다고 한다.
*19세기 중후반, 미국과 아파치족은 오랜 전쟁을 벌였다. 당시 아파치족의 영역은 매우 넓었고, 지금의 캘리포니아 남부, 텍사스 서부, 애리조나 북부에서 멕시코와 오클라호마 일대까지 누비며 생활했으나, 그들의 땅을 뺏고 차지하려는 유럽인들의 침입으로 아파치 족은 40여 년간의 전쟁 끝에 많은 수가 죽고,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된다. https://www.ducksters.com/history/native_american_apache.php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타라의 마음에 떠오른 단어는 '학살/도살 (slaughter)'이었다. 한쪽이 싸울 마음도 싸울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 맞는 말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농장에서 닭들을 잡을 때 도살한다고 하지, 닭들과 전쟁을 벌인다고 하지 않듯이 말이다. 전사들의 용맹스러운 결단이 그들의 삶을 도살로 이끌지 않았을까 타라는 생각한다. 그들은 영웅답게 장렬하게 전사했지만, 그들의 아내들은 노예로 살다가 죽는 결과를 가져왔다. 작가는 사람들의 조그만 결정들이 오랜 시간 모이고 모여, 어떤 결정적 운명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파치족 여자들의 운명을 결정지은 선택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쌓여온 것이리라는 생각을 한다. 수많은 모래알들이 층을 이루고, 압력이 가해지고, 뭉쳐져 침적물이 되고, 그 침적물이 바위가 되고, 돌산을 이루듯이 말이다.
타라 가족의 운명을 결정지은 선택들
할머니의 애리조나 모빌홈에 머무른 지 6일째 되던 날, 저녁을 먹고 나서 아버지가 밤에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게 짐을 싸라고 한다. 12시간을 운전해야 하는데, 밤에 쉬고 아침에 출발하라고 할머니가 말리고, 어머니도 아침까지 기다리자고 했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일해야 하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린다.
그들은 그날 밤 기어이 출발을 했고, 타라의 오빠 타일러가 운전을 했다. 밤새 운전한 17세의 소년은 도저히 졸음을 참을 수 없었고, 날이 서서히 밝아 오기 시작하던 아침 6시쯤, 운전을 하다 잠들어 버린다. 차는 중앙선을 침범해 들어가 하이웨이를 벗어나, 갓길 구덩이로 뛰어들어 전봇대를 들이받고, 농가 트랙터 한대를 들이받고서야 멈추었다.
아무도 안전벨트를 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다들 심하게 다친다. 그중에서도 어머니는 심한 뇌손상을 입는다. 하지만 그들은 보험도 들지 않은 등록 안된 차량에, 안전벨트도 하지 않고 달리다 이런 사고가 난 상황이라, 두려운 아버지는 결국 가족을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이 사고는 가족 모두에게 흉터를 남겼지만, 특히 어머니의 뇌기능에 가장 큰 흉터를 남겼다. 어머니는 다시는 전과 같은 상태가 되지 못했다.
운전자였던 타일러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며 자책 속에 살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타라는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 타일러는 가장 잘못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파치 여인의 운명처럼, 애리조나의 돌산처럼, 이것은 수많은 선택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 하나의 큰 운명적 사건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후 어른이 되고,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씩 달라져갔지만, 이 사건이 상기될 때마다 항상 아파치 부족 여인들에 대한 생각과 모래가 돌산을 이루는 것 같은 운명과 선택들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나는 부산 사상 공단에 위치한 신발 공장 사장의 딸이었다. 1980년대 아버지의 공장은 당시 국내외적으로 잘 팔리던 프로스펙스 신발을 만들어 대느라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고, 직원 수도 공장 규모도 날로 커져갔다. 아빠의 노트는 새로운 신발에 대한 구상과 디자인으로 가득했다. 나와 동생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 공장에서 불량품으로 분류되어 폐기처분해야 하지만 버리긴 아까운 운동화를 주워 신으며 자랐다. 신발에 관해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초반 인생이었지만, 우리는 자랑스러워하며 '아빠의 신발'을 열심히 신었다. 아빠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어린이 신발들을 기증하기도 하였으므로, 내 친구들 중에도, 친척들 중에서도 아버지 공장에서 만든 신발을 신어보지 않은 이는 없었다. 주말이나 방학엔 가족 모두 공장에 가서 신발 실밥을 따는 경험도 했었다.
80년대 중후반, 국제상사의 해체와 함께, 부산의 신발 공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사태가 일어났었다. 코로나 시대에 노래방이나 영화관이 어려워지는 현상처럼,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시대적 흐름으로, 지나가는 일로 느껴졌을 것이다. 세계시장이 더 값싼 노동력 (중국 공장)으로 옮겨가는 시기이기도 했으므로, 신발 수출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나는 그 일이 얼마나 많은 선택들의 결과로 일어난 일이었는지를 옆에서 보고 들었으며, 평생을 그 일에 대해 생각하고 어떤 이해를 가져보려고 나름의 연구를 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의 회사에, 우리 집에 일어난 경제적인 사건들은, 그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의 선택, 국제상사 회장의 선택, 세계 각국의 신발 수입사들 사장들의 선택, 그리고 내 아버지의 수많은 인생의 선택들과 많은 사람들의 복잡한 선택들이 어우러져 일어난 일이었음을.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던 것에 대해, 누군가들을 탓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의 성품과 선택들에 대한 원망과 결부되어, 내 안에 크고 복잡한 원망 덩어리로 자리 잡았다. 나는 어쩌면 그 일에 대해 아직도 화가 다 풀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타라의 가족에게 일어난 교통사고는, 우리 집에 일어난 신발공장이 부도난 사건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라가 그 일에 대해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하나의 일어나야 할 선택들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나도 그랬어야 했을까. 지금이라도 그래야 하는 걸까.
타라의 가족들이 이 교통사고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일어서는지에 대한 다음 이야기들이 기대가 된다. 다음 이야기들이 내 생각을, 내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원망의 그림자들을 깨끗이 청소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