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5. 대학은 멍청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야

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Ch.5

by 하트온


챕터 5. 정직한 흙 (Honest Dirt)



대학을 가겠다는 미친 소리!


교통사고 나고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 사이 그들이 사는 산골짜기엔 눈이 녹고 봄이 오는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느 일요일, 타라의 셋째 오빠 타일러가 굳게 마음먹은 얼굴로 대학을 가겠다고 아버지께 말하였다. 첫째 아들 토니는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겨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을 찾아 산을 떠났고, 둘째, 숀은 아버지와 마음이 맞지 않아 몇 달 전 가출한 후 엄마에게만 가끔 연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셋째 타일러까지 떠나면 아버지를 도울 일손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는 셈이다. 도와줄 일손 없이는, 아버지는 헛간 짓는 일을 할 수 없고, 꼼짝없이 폐자재 수집일 (scrapping)이나 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너무 충격을 받아 처음엔 입도 열지 못했다. 작가는 그때의 정적이 아버지가 소리치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느낌이었다고 기술한다.


What's college?


그때까지 대학이라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타라가 묻는다. "대학이란 멍청한 사람들 교육시키는 데야." 타일러 오빠 대신 아버지가 대답한다. 아버지는 분이 풀리지 않아 대학과 교수에 대한 욕을 계속 이어간다. "대학 교수들은 두 종류야. 하나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 놈들하고, 자신이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놈들." ("There's two kinds of them college professors, those who know they're lying, and those who think they're telling the truth.") 아버지는 자꾸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며 아들의 마음을 바꾸고 싶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한 마디를 한다. "차라리 빗자루 가져다가 산에 흙을 치우죠 (You may as well take a broom and start sweeping dirt off the mountain)." 타일러는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마음을 바꿀 아이가 아니니, 괜히 헛수고에 힘 빼지 말란 의미다. 교통사고 이후, 빛과 소음에 두통이 예민해져서 대부분의 시간을 지하실에서 보내는 어머니가 결국 올라와 한마디를 하게 만든 것이다.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는다. 아들이 마음을 바꾸는 것 같지 않으니 더 조바심이 난다. 아버지는 '남자는 책과 종이로 생계를 꾸릴 수 없다 (A man can't make a living out of books and scraps of papers.)'고도 말하고, '너는 곧 가장이 될 건데, 책으로 가족을 어떻게 건사하냐?' (You're going to be the head of a family. How can you support a wife and children with books?)는 말도 한다. '대학에 가는 것은 사회주의자들과 일루미나티 간첩들한테 세뇌당하러 가는 거' (... standing in line to get brainwashed by socialists and Illuminati spies...)라고까지 표현한다.


아들은 조용히 아버지의 말을 다 듣다가 한 마디를 한다. "제가 가려는 대학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건데요." 안 하니만 못한 말이었다. 아버지는 더 열이 나서, 그런 대학을 운영하는 교회들은 다 일루미나티가 접수한 교회라고 더 펄펄 뛴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아들 타일러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타일러는 달랐다


타라의 기억에 타일러는 그 형제자매들 틈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독특한 사람이었다. 다들 산에서 늑대 소년들 같이 제멋대로 거칠게 싸우며 크는데, 타일러는 항상 차분했고 책 읽고 공부하기를 좋아했으며, 그의 방은 집에서 유일하게 정돈되고 깔끔한 공간이었다. 타일러는 아침마다 아들들을 불러 일을 시키는 아버지에게 오전에는 공부할 시간을 좀 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타일러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었으며, 수학을 좋아하여 학교에 갈 수 없을 때는 책을 구하여 혼자서 독학을 했다.


아버지가 처음부터 교육을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1992년 위버 포위 (루비 능선 대치) 사건*이 터졌을 때까지 그는 아들 셋을 학교에 보냈었다. 이 사건과 1년 뒤에 일어난 웨이코 사건은 아버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고,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전혀 보내지 않는 계기가 되었다.

*루비 능선 대치(Ruby Ridge standoff)는 1992년 8월 21일부터 8월 31일까지 미국 아이다호주 네이플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한 일가와 정부 요원들 간의 총격전을 말한다. 퇴역 공병 출신 랜디 위버라는 사람이 자신의 가족과 그곳 산골짜기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다. 랜디 위버는 화기 법규 위반으로 기소되었지만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고, 그 결과 보안관 수색대 6명이 그를 체포하기 위해 산골짜기 그의 동네로 들어왔다. 하지만 위버는 체포에 불응하였고, 그들 사이에 총격전이 일어나, 그 결과 연방부보안관 윌리엄 프랜시스 디건(42세)과 위버의 아들 새미 위버(14세), 그리고 위버의 개가 죽었다. 이 일로 연방보안관 업무국(USMS)과 연방수사국(FBI), 인질구출반(HRT)이 동원되어 위버 일가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위버의 아내 비키 위버(43세)가 FBI 스나이퍼에게 저격 당해 죽었다. 이들은 반연방주의자들 사이에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한 영웅이 되었으며, 산골 마을에 터전을 잡고 사는 반연방주의자들로하여금 무장을 강화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고, 3년 뒤 웨이코 사건(Waco Massacre)과 함께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 사건의 범행 동기로까지 이어진다. https://en.wikipedia.org/wiki/Ruby_Ridge

어머니는 꽤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고, 홈스쿨로 공립학교보다 더 나은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꿈을 꾸며 아이들 홈스쿨을 시작하였으나, 점점 한계에 부딪치며, 결국 읽는 것과 기본 셈만 익히는 것으로 충분하며, 더 이상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사고에 세뇌될 위험이 있다며 아버지의 철학에 동의하는 쪽으로 점차 변해갔다.


오빠의 배신


대학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아버지 말만 듣고 자란 타라는 오빠 타일러의 선택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일루미나티, 악마 숭배자가 되려고 산을 버리고 대학에 간다고?' 이것이 타라의 마음에 처음 떠오른 생각이다. 여름 내내 아버지가 그토록 말하고 또 말하고 설득하고 노력했는데도 타일러 오빠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기만 했다.


어느 날 타일러는 타라를 데리고, 어머니의 부모님, 즉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사시는 타운 동네로 간다. 타라는 자신의 산골집과 너무 다른 정돈되고 장식된 환경에 당황한다. 아버지는 종종 그의 장인 장모에 대해 아이들 앞에서도 욕을 했다. 그의 입장에서 장인은 정부를 위해 일하는 멍청한 사람 (우편배달부)이고, 장모는 천박한 사람(frivolous*)이었다.

*frivolous: not having any serious purpose or value.


그만큼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들이 그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타일러는 그 집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그들의 조용하고 정돈된 분위기와, 교양 있는 말투를 좋아했다. 타라는 그것에 주눅이 드는 편이었다. 집에서 거칠게 노는 톰보이 소녀였던 타라는, 그 집에 가면 자신의 본성대로 행동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잔소리도 엄청 했다. 흙 묻은 신발은 밖에 벗어놓으라고, 집에 신고 들어오면 안 된다고.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나면 손을 씻어야 한다고.


그런 할머니가, 타일러가 대학에 가는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대학에 간다고! 넌 네 오빠가 무척 자랑스럽겠구나!" 할머니는 얼마나 좋은지, 이빨이 다 보이고, 눈이 짜그러질만큼 정말 기뻐 웃었다. 타라는 그때도 속으로 '세뇌당하는 게 뭐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할머니의 하얀 카펫을 보며 아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할머니가 카펫을 하얗게 유지할 수 있는 건 진짜 일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손톱이 까맣게 때가 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었다.


내 손이 더럽게 보일지 몰라도, 이건 정직한 흙이야 (My hands might be dirty, but it's honest dirt.)


타라는 그런 아버지가 옳다고, 자신이 안전지대에서 잘 자라고 있다고 믿고 싶다. 타일러 오빠가 떠나고 타라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녀는 집안을 배신하고 적의 진영으로 걸어 들어간 오빠도, 그런 오빠를 현혹한 게 틀림없어 보이는 그가 좋아했던 음악과 외할머니의 예쁜 집과 하얀 카펫도 다 미워진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오빠의 눈으로, 외할머니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 시선과 아버지가 말한 것들 사이, 그 틈 어딘가에서 허우적 대기 시작한다. 혼돈이 시작된다.




미국에는 랜디 위버나, 타라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들 사고의 뿌리는 연방 정부 간섭의 최소화를 주장하는 반연방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사상이나,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들만의 독립된 삶과 사상을 너무 주장한 나머지, 교육받기를 거부하고 정부 법규와 시스템을 완전히 무시하고 지냄으로써, 산속에 숨은 은둔자들이 되어버렸다.

*반연방주의 사상: 연방 정부의 지나친 권력 독점 횡포를 막고 주 정부와 국민들의 권리를 수호하겠다는 사상으로, 그 사상을 기반으로 정치적 토대를 마련한 대표인물은 토마스 제퍼슨이며, 반연방주의 사상은 미국 공화당의 창립 정신이기도 하다. 미국 민주 정치는 연방주의와 반연방주의가 각축을 벌이며 성장해온 독특한 케이스이다.

1992년 위버 사건과 1993년 웨이코 사건이 차례로 잇달아 일어난 것이, 이들처럼 정부 요원들의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크게 불러일으켜, 현재 연방주의 정부에 대한 적대감이 매우 팽창된 상태다. 많은 미국 사람들 입장에서 이들은 옛날의 백인들 세상 미국으로 되돌아 가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주의자를 자처하는 집단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차에 총을 싣고 다니며, 트럼프 지지 시위에 총을 들고 나오기도 하는 레드넥, 극우주의 집단으로 불리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정부에 대한 적대감, 공포 망상이 심해진다면, 테러나 폭력 사태를 일으켜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도 있는 간과할 수 없는 잠재적 사회문제 요소다.


타라의 아버지는 남자가 땅을 파고 집을 짓고 노동을 하는 것이 신앙적으로도 바른 행위이며, 가장 정직하고 고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부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며,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은 하나님과 멀어지기 위해 세뇌를 당하는 길이라고 믿었고, 손에 흙 묻히며 일 하지 않고 도시에서 깨끗한 손으로 깔끔 떨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경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살아가면서, 내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어떤 이해를 얻었던 시간이었다. 그들이 산골에서 독립적으로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종교적 소신을 지키는 것도 학대나 억압으로 이어지는 것만 아니라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가지 않는 것 또한 본인의 선택이라면 문제일 리가 없다. 다만 그들이 법규를 지키지 않는 것은 큰 문제의 소지가 있다. 법규를 지키지 않는 것이 그들의 정신에 두려움을 심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법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처벌하러 누가 올 거라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이미 있는 정부를 거부함으로써 정부를 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들의 사상과 신념과 소신의 가치를 내가 함부로 재단할 자격도 이유도 없지만, 무슨 종교를 가지고 무엇을 믿고 살건, 법을 지키지 않고 사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닌 듯하다. 요즘 시대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응급실에 갈 선택을 못했던 사람들, 교통사고 후유증과 흉터를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타라의 가족들 이야기가 안타깝고 마음 아프다.


최근에 '나의 아저씨'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았다. 거기에 나오는 이지안 (아이유)이라는 인물과 타라의 가족이 오버랩되었다. 요즘 시대에 저렇게 사는 사람이 있나 싶은, 타라 가족에게 느꼈던 그 안타까운 심정이, 지안이에게도 느껴졌다. 물론 지안이와 타라 가족은 완전히 다른 입장이고 다른 문제다. 하지만 공통점을 본다. 두려워 도망 다녀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계속 범법 하는 삶을 이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깨고 빛 가운데 스스로를 드러내고 나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지만, '나의 아저씨'도 없는 그 사람들, 너무 많이 선을 넘어 버린 사람들에게 -게다가 배움을 거부함으로써 사고가 오랫동안 두려움에 쩔고 굳은 사람들에게 - 그것이 너무나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이해가 가는지라, 미국의 깊은 사회문제가 해결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영어도 잘하면서 왜 저렇게 사누? 쯧쯧...


미국에 사는 한국 할머니들이 지난 100년 이민 역사 동안 내내 해오신 말씀이다. 이 질문은 항상 미국 내 세 종류의 사람을 향한다.

일하지 않고 낮에 할렘가를 어슬렁 거리는 흑인 청년들

영어로 구걸하는 홈리스(노숙자들)

그리고 위에 설명한 산에 둥지를 틀고 배움을 거부하고 공포에 휘둘려 사는 극우집단들


눈치 빠르고 통찰력 깊은 한국 할머니들이 미국의 가장 큰 사회 문제들을 꿰뚫어 보고 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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