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기회
아난트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초대받은 자리는 그냥 단순한 가족 저녁 식사 자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디너파티였다. 부자들이 목적 없이 그냥 열어 돈만 쓰는 파티란 건 없다. 아난트의 아버지는 최근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딸- 아난트의 누나, 키아라 - 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리고 동시에 사교계에 인사시키기 위해, 모두를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여는 것이었다.
남편을 돕기 위해 잘 보여야 한다는 마음보다, 아난트에게 받은 것이 많았던 만큼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자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정성껏 꾸미고 파티 장소인 그들의 집안 건물로 갔다. 무엇을 들고 갈까 고민하다가, 아난트의 조언대로 화원에 들러, 장미와 백합을 섞어 꽃바구니를 만들어 갔다. 인도 사람들에게 꽃이 가장 무난한 선물이라며 그중에서도 장미와 백합이 안전한 선택이라며 조언해 주었다.
입구에서 벨보이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입장객의 이름 확인하고, 선물을 받아 선반에 진열해 주었다.
아난트의 부모님들은 미국에서 오래 산 분들이라 해도, 함께 초대받은 인도인들이 얼마나 보수적 일지 알 수 없고, 괜한 시선을 끄는 일은 누구를 위해서도 좋을 일이 없으므로 무더운 7월이지만, 유리도 나도 맨살이 많이 드러나지 않게 상의와 바지를 갖춰 입고, 인도 전통 복장인 사리를 한 벌씩 사서 둘러 입었다. 남편은 그냥 정장을 입겠다고 해서 말리지 않았다. 땀이 나기 시작해서 화장한 얼굴이 너무 번들거릴까 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건물 공기가 매우 시원하고 쾌적해서 금세 땀이 말랐다.
갑자기 어느 왕자님이 납신 듯한 후광이 비치며 주위가 환해지는 느낌에 돌아보니 아난트였다. 제복 같은 느낌의 네이비색 아즈칸을 멋지게 차려입은 그가 어느새 우리 곁으로 다가와 서 있었다.
"하이 아난트!"
"반가워요 아난트 선생님. 그동안 우리 딸을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편이 학부모의 자세로 공손히 악수하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유리 아버지. 오! 두 숙녀분의 사리가 참 잘 어울려요!"
"쌤도 넘 멋져요!"
옷차림이란 것은 참 힘이 있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귀티가 줄줄 흐르는 청년이긴 하지만,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다닐 때의 아난트와, 보석 박힌 고급 원단의 전통 정장을 입은 아난트는 분위기랄까 뭔가 자아내는 힘이 많이 다르다. 옛날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특정 색 특정한 문양의 옷을 입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도인들은 전통적으로 옷 색깔과 이마에 붙이는 빈디의 색상으로 계급을 드러내었으며,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들은 특정 집안의 문양을 넣어 옷과 장신구들을 만들던 장인들의 수공업이 사업화되면서 명품이 된 것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옛날에 살았고, 아난트가 이런 옷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이었다면, 말 한 번 걸어 보기나 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아니, 오히려 나야말로 그 시대에 왕의 딸, 공주였을 수도 있으니, 아난트가 감히 말을 못 걸었을 수도 있다.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니 함부로 스스로를 비하하면 안 된다. 나는 요즘 내 생각 속에서라도 내 편을 들어주려고,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노력한다. 이혼을 감행할지언정 스스로를 지키고 살려온 김종희의 씩씩한 전사 에너지에 전염된 것인지, 나는 요즘 죄책감도 자괴감 자기 혐오감도 느끼지 않으려고 나를 지키는 보호막을 만들어 보려고 애쓰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없이 올라가면서 지난번 아난트의 집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어떤 광경을 보게 되더라도 놀라지 말자 주눅 들지 말자 마음 단속을 했다.
아난트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돌아 안쪽 공간으로 들어가니, 호텔 연회장 같은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생각보다 보수적이지 않았다. 많은 여자들이 어깨를 드러낸 서양식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며, 남자들도 대다수가 깔끔한 정장 슈트 사람이었다. 할리우드 연예인 파티인가 싶을 만큼, 서양인도 많았고, 이 동네 선남선녀들을 모두 모은 듯,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름답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우리는 백조들의 파티에 온 오리 세 마리처럼 뭔가 어색한 기분을 느끼며 아난트만 졸졸 따라다녔다. 아난트가 우리를 안내해 준 자리에 우리 이름이 고급스러운 필기체로 적혀 있었다. 그제야 우리도 특별히 초대받아 온 참석자라는 당당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자, 순식간에 서버가 다가와 물 잔에 물을 채워준다. 테이블 가운데 얼음 통 안에 와인과 샴페인이 들어 있는 것을 가리키며 어떤 술을 따라 줄까 물어보자, 남편이 샴페인을 가리킨다.
"우리 샴페인 마시자. 오늘 같은 날 유리도 한 잔 해라. 참 넌 이미 술 좀 마시는 애지?"
"부모가 곁에 있었으면 술을 마셨겠어, 애가?"
유리가 자신을 놀리는 아빠의 말에 아빠의 죄책감을 불러오는 반격을 한다.
"넌 어쩜 한 마디를 안지니?"
"아빤 어쩜 내 속을 박박 긁는 말만 할까?"
"아휴 쪼그만 게."
"아휴 아빠 속은 더 쪼그맣게 좁아터져 가지고."
유리의 화풀이는 점점 아빠와의 만담처럼 코믹해져 간다. 티격태격 하면서도 전처럼 남편의 표정이 심각해지지 않는다. 유리도 더이상 상처입은 아이의 서늘한 눈빛이 아니다.
아난트가 잠시만 실례하겠다고 사라졌는데, 연회장 한쪽 끝에 있는 강단 위에 아난트와 그의 가족들이 나와서 인사를 한다. 미국에서 왔다는 아난트의 누나로 보이는 세련되고 아리따운 아가씨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은 아난트의 아버지가 영어와 힌디어를 섞어 가며 길게 딸 소개를 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 눈빛과 몸짓에 딸을 향한 애정이 가득 묻어난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며 결핍감이 몰려온다. 내 눈에 눈물이 맺힌다. 내 안의 빈 구멍들이 터뜨리는 눈물샘을 들숨으로 메우겠다는 듯 크게 숨을 들이켰다. 유리가 가만히 내 손을 잡아 온다. 나도 아이의 손을 꼭 맞잡아 준다.
아난트의 가족들은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찾아온 손님들 한 사람 한 사람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다. 동시에 검은 앞치마를 두른 서버들이 부지런히 다니며 음료를 따르고, 애피타이저부터 시작해서 풀 코스의 음식을 내 오기 시작한다. 채식주의자 메뉴와 비 채식주의자 메뉴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남편은 비 채식 메뉴를 유리와 나는 채식 메뉴를 선택했다. 남편 앞에는 해산물 애피타이저와 탄두리 닭과 케밥 요리가 차례로 나오고, 유리와 내 앞에는 콩죽과 사모사, 야채 커리와 볶음밥이 나왔다. 정말 입에서 살살 녹는 환상적인 식감을 주는 저 세상 맛이었다. 남편이 탄두리 치킨을 잘라 유리와 내 앞에 놓아준다.
"맛봐봐. 닭이 그냥 입에서 녹아. 내 평생 먹어 본 최고의 닭요리야!"
"그냥 자기 거 자기가 먹어. 안 그럴 거면 아빠가 내 볶음밥 다 먹어. 난 살찌기 싫어. 살찌면 안 돼!"
유리가 짜증 내듯 볶음밥을 제 아빠 접시에 옮겨 놓는다. 남편은 딸이 주는 볶음밥에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올라간다.
음식을 어느 정도 먹고, 금, 은, 다야몬드로 장식한 듯한 화려한 보석세트 같은 디저트가 테이블마다 한 접시씩 놓일 때쯤, 아난트의 부모님들과 아난트가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인사를 하러 왔다.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세 명이 동시에 일어서서 아난트의 가족을 맞는다. 가까이서 보니 아난트의 아버지 또한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상당한 미남이다. 나이에 맞지 않다고 느껴지는 이글거리는 눈빛에서 강하고 압도적인 힘이 느껴진다. 아난트의 어머니도 화려하고 우아한 자태가 동화 속 어느 왕국에서 걸어 나온 여왕님처럼 엄청난 아우라를 뿜는다. 아난트의 아버지가 남편과 저들 세상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난트의 어머니가 내 옆에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한다.
"지난번에 우리 아난트가 한국에서 좋은 대접을 받았더군요."
"아닙니다. 저희가 오히려 아난트 선생님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아난트 한국 여행 사진 모아서 만들어 주신 앨범 책 너무 좋던데요. 내 친구들하고 그거 보면서 우리도 한국 가서 이런 추억 만들어 오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혹시 나와 내 친구 몇 명과 한국에 같이 가서 아난트가 갔던 곳들 우리도 가 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나요? 앨범도 만들고요. 저도 그렇고 제 친구들도 한국의 최고급 호텔과 식당을 원할 것 같아요. 작가님 가족 여행 비용까지 당연히 우리가 다 내고, 사례도 섭섭지 않게 넉넉히 할게요."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섣불리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앨범은 내 능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이 퍼뜩 떠오른다. 그건 유리의 능력이다.
"사진 찍고 앨범 만드는 건 저희 애가 잘하는 일인데, 애가 다음 달부터 고등학교를 들어가서요."
갑자기 유리가 내 팔을 잡아끌고 귓속말을 했다.
"엄마, 나 학교 안 갈래. 엄마 이거 완전 절호의 사업 찬스 같아요. 이 여행 입소문 나면 더 많은 인도 상류층 아줌마들이 여행 문의할 것 같아. 나 학교 안 가고 이 사업할래."
유리는 머리가 멍해지는 나와 달리 아이디어가 팽팽 돌아가는 듯 신나서 말한다. 유리의 신난 귀속말에, 나는 더 정신이 없어진다. 어떤 결정을 당장 내리기 힘들 때 '의논해 보겠다'는 마술 문장을 겨우 친절과 정성을 다해 뱉어 낼 뿐이다.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번 가족들과 의논해 보겠습니다. 아난트 선생님 통해서 빠른 시일 내에 연락드릴게요."
아난트의 어머니는 기품 있는 여왕처럼 화사하게 웃어주고는, 디저트와 음료를 얼마든지 더 달라고 해서 즐기고 재미있게 놀다 가라며, 가족 모두 건강하고 앞으로 하는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란다며 덕담을 해 주고 본인들의 테이블로 돌아갔다. 아난트는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고 우리 테이블에 남았다.
"이 기회 놓치지 말아요. 앞으로 내고 싶은 책 다 낼 수 있게 출판 자금을 마련할 절호의 기회를 제가 만든 거예요."
아난트가 지난번 한국 여행에 대해 어머니께 엄청난 자랑과 홍보활동을 한 것이 틀림없다. 최고급 대접도 못 받았으면서, 최고급 고객을 물어준 것이다. 최고급 호텔에 최고급 식당에 최고급 차량을 섭외하려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김종희의 도움이 필요하고, 힌디어와 영어를 다 하는 아난트도 필요하고, 앱을 사용해서 멋진 앨범을 만들 줄 아는 유리가 꼭 필요하다. 일단 남편부터 설득해야 할 것이다.
아난트의 아버지 므케시와 대화가 좋았는지 남편은 신나 보인다.
"내 자리는 당분간 안전할 것 같아."
나는 그의 표정이 밝은 틈을 타서, 아난트의 어머니가 부탁한 것을 그에게 말했다. 또한, 앨범 제작에 유리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말했다. 남편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유리에게 부탁하듯 말한다.
"유리야. 정말 미안한데..."
"알았어. 학교는 내년에 갈게. 이 일 도와주면 용돈은 많이 챙겨 줄 거지?"
"내년까진 아니고, 한국 갔다 오자마자 들어가면..."
"그러지 말고 1년 홈스쿨 하면서 영어 공부 열심히 할게. 영어 잘할수록 고등학교 공부가 더 쉬울 거니까 그 선택이 나은 것 같아."
"고마워 유리야. 아빠가 돈을 잘 벌어야 너 대학공부까지 다 시킬 수 있는 거니까, 조금 늦게 가더라도..."
"지금 아빠 돕는 게 옳다는 얘기지? 내가 희생하고 아빠 도와준 거 평생 잊으면 안 된다!"
"알았어."
유리는 좋아서 팔짝 뛸 것 같은 기분을 숨기고 아빠의 말을 탁탁 끊어 가며, 은혜를 베푸는 듯 유세를 부린다. 그리곤 나에게 귓속말로 속삭인다.
"나 진짜 기숙학교 혼자 가는 것만 생각만 하면 마음에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괴로웠는데, 학교 안 가게 돼서 너무 좋아요!"
똑똑한 애가 덜떨어진 어른을 갖고 노는 현장을 목격하며 나는 기함한다. 어쨌든 나는 유리가 절실히 필요하니, 아이에게 가만히 웃어줄 뿐이다.
연회장의 은은한 조명이 현란한 사이키 조명으로 바뀌고, 클래식 음악 대신 싸이의 '강남스타일' 신나는 전자음이 흘러나오자 젊은 청춘들이 모두 가운데 무대로 뛰쳐 나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흥부자 유리도 잘 아는 리듬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일어서 내 팔을 잡아 끈다. 이미 무대 한 가운데 자리잡은 아난트가 긴 팔다리를 멋지게 흔들며 춤을 추다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든다. 유리와 나는 사리를 벗어 던지고 무대로 나가 신나게 몸을 흔든다.
"와! 역시 내 집이 최고다!"
남편이 타이를 풀며, 소파에 털썩 앉아 허리띠까지 풀어낸다. 회사 소유의 건물이지만 몇 년째 정 붙이고 살고 있으니 이 뭄바이에서 가장 친숙하고 편한 공간인 건 틀림없다. 남편은 낯선 파티장에서 제 밥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을 신경 쓰느라 나름 많이 긴장했던 모양인지, 억지로 잔뜩 주고 있던 힘을 쫙 빼고 소파 위에서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린다. 그러면서도 입은 쉬지 않는다.
"당신이 지난번 아난트 선생님을 잘 모셔서 상류 사회에 입소문이 시작된 건가 봐. 이번 일 잘하면 진짜 명함 파고 본격적으로 사업해도 되겠는데?"
늘 사업성과 투자에 관한 생각만 하는 남편이 보기에도 이건 좋은 기회 같아 보이는 모양이다.
"최고급 장소들을 물색해서 예약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데, 처음 해 보는 거라 걱정돼."
"엄마한테 좀 도와 달라고 할까. 울 엄마 나름 강남 최고급은 꿰고 계실 건데..."
"한국에 도와줄 사람 있을 것 같아."
'우리 엄마가 젤 잘 알아' 타령을 시작하는 그 모습이 정말 마마보이 같아 나는 그의 말을 잘라 버린다. 나를 우습게 여기는 시어머니와 일을 같이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건 시작도 못하고 망할 일이다. 그런 관계의 케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이 상황에 본인의 어머니를 갖다 대는 그의 무능한 판단 능력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찬다. 사람의 무능함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니 나는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아, 지난번에 그 선배 언니라는 사람? 출판업 한다는?"
"응. 그 언니가 출판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생계를 꾸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거든."
"잘 됐네. 빨리 알아봐. 아예 지금 전화 넣어서 물어봐. 사람 일이란 게 타이밍이잖아. 그분이 다른 일 시작하면 어떡해."
남편이 이렇게 간섭을 하는 걸 보니, 아난트의 어머니가 부탁한 일이 자신의 밥줄이 달린 일이라 느끼는 게 틀림없다. 남편의 성화에 못 이긴 척하며, 나는 내일 넣으려 했던 전화를 지금 바로 김종희에게 넣는다. 다행히 그녀가 전화를 받는다.
"어, 은수야."
"지금 일하는 중이에요?"
"아냐, 집이야. 요새 학교 방학하고 손님이 너무 없어서 난 요새 집에 일찍 와."
"혹시 잠 깨운 거 아니에요?"
"잠은 무슨. 난 새벽 1시나 돼야 자. 지금 네 딸이 쓴 글 편집 작업 한참 하고 있던 중이야. 곧 마무리해서 보내 줄 게. 근데 무슨 일이야?"
나는 오늘 아난트의 어머니에게 받았던 제안을 김종희에게 말해주고, 한국에서 숙박과 차량 식당을 예약하고 스케줄 짜는 일을 도울 수 있는지 물었다.
"어머 당근이지! 너무 잘됐다. 지금 내 친구가 안 그래도 술집이 대학가라 세가 너무 비싼데, 요즘 힙한 데가 너무 많이 생기고, 어설픈 아줌마 둘이서 장사도 잘 못해서, 업종을 바꿔야 하나, 지방으로 내려갈까 한참 의논 중이었거든. 이 일 잘 되면, 인도 상류층에 마구 입소문 퍼지고 그러지 않을까? 일단 첫 손님맞이를 최대한 잘해 보자. 내가 친구하고 의논해 보고 다시 전화할게."
김종희의 목소리에 반색하는 기색이 묻어나는 걸 보니, 이게 정말 될 것 같은 기회이긴 한가 보다. 30분쯤 후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들어왔다.
"야, 기회 물 건너가기 전에 빨리 진행시켜! 내 친구 술집 접기로 했다. 그리고 이 일에 올인해 볼 거라나 어쩐다나. 우리 잘해 보자! 네 덕분에 관광사업을 벌이게 생겼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는데, 올인은 좀..."
"우리 성격이 원래 그래.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라도 올인하는 편."
"고마워요. 든든해요 정말."
"정말, 농담 아니고, 최선을 다해 잘해 보자 우리."
"그래요. 꼭 그렇게 해요, 우리!"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잘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설레고 겁내기를 마구 반복한다. 흥분되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인도의 상류층을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 한국의 최고급 장소들을 몸으로 느낄 기회. 작가로서 좋은 글감을 엄청나게 얻을 기회다. 동시에, 정말 생계를 꾸릴 내 사업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를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 또한 강하게 든다. 벌써 김칫국부터 마시는 감이 있긴 해도, 아난트의 어머니로부터 직접 의뢰를 받은 상태이니 이건 알짜배기 김치에 고기와 밥도 곁들인 김칫국이라 마음껏 마셔도 안전할 것 같다.
나는 유리와 아난트하고 이야기하는 단톡 방에 문자를 넣었다.
[종희 선배가 도와준대]
[오! 잘됐네요! 굿굿! 유리도 학교 안 가고 도울 수 있어서 굿! 나도 힘닿는 데까지 도울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요]
[와 대박! 좋은 예감 뿜뿜입니다! 우리 진짜 잘할 거예요!]
기쁨과 축배의 이모티콘이 마구 날아다니고 난리가 났다. 우리 셋이서 밤이 늦도록 문자로 손잡고 방방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