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진 건가
첫 장편 소설을 쓰고 걸린 글병
2015년, 1여 년의 시간에 걸쳐 첫 장편 소설을 썼었다. 나는 이 소설을 출간하지도 못했고 이후 한동안 소설을 쓰지도 못했다. 아니, 소설을 수없이 시도했었다. 2016년부터 2020년 초반까지 시도했던, 몇 페이지 쓰다 그만둔 소설이 100개쯤 내 컴퓨터 안에 잠자고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신나서 몇 페이지를 쓰다가 점점 내가 내 글이 너무 재미가 없어져서 더 이상 글을 이어가지 못하게 된다. 내 글에 대한 나 스스로의 관심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정도가 졸려 쓰러져 한 줄도 더 이상 못쓰겠는 그런 현상. 다시는 그 글을 펼쳐 볼 마음이 없어지는 그런 이상한 글병이었다.
글을 쓰는 이유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다시 점검했다. 다시 바닥으로 몸을 낮추고, 글에 대한 모든 관념을 꺼내 정리했다. 내가 쓰고 싶은 스타일의 글, 공모전, 웹소설,... 나를 누르던 모든 것들을 쓰레기통에 넣고 머릿속을 깨끗이 비우고 다시 시작했다. 목표는 1일 1페이지로 잡고 매일 무슨 글이든 쓰려고 했다. 다시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이런저런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점점 어떤 방향이 보였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내가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구나. 깨닫고 확인했다. 자연스럽게 내 마음, 내 삶 속에서 우러나는 그런 글을 쓰는 일은 어렵지도 않고, 뭔가가 계속 샘솟는 느낌이었다. 글이 그냥 술술 흘러나왔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그냥 내 목소리를 들었고, 나는 내 글이 마음에 들었으므로 글을 쓰다 졸려 쓰러지는 현상은 오지 않았다.
'뭄바이 관종 여우'라는 소설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장편 소설을 시도할 수 있으리라고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 처음을 시작했더니 소설이 절로 술술 풀려갔다. 한동안은 거의 하루에 몇 페이지 씩 쓰기도 했다. 뭄바이 소설은 이제 마지막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며칠 째 한 두 줄 쓰다 잠들고, 다음 날 일어나 전날 쓴 몇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고 있다. 다시 그 졸림 병이 도지는 걸까. 소설에 손을 대려고 하면 몰려오는 이 익숙한 불쾌감은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 쓰지 않고 말을 거는 사람 저리 가라다.
소설의 마지막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갑자기 커져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담담하게 떠오르는 대로 써 나갈 땐 재미있게 쓸 수 있었는데, 마지막에 와서 내 마음에 담담하게 떠오르는 것들을 누르는 무엇이 생겼다. 마지막이 신명 나고 기상천외하게 진행되며 정리되기를, 아주 멋진 일들이 일어나기를, 그런 멋진 아이디어들을 멋진 문장들로 실감 나게 그릴 수 있기를 바라는 욕심. 그래서 결국 마음에 드는 완결 소설을 들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원하는 출판사에 투고할 수 있기를... 좋은 결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내가 아닌 글, 내 것이 아닌 목소리를 내려는 욕심이 들어간 것이다. 어느새 생겨난 출간이라는 목표에 마음이 눌리고 있는 것이다. 이 욕심을 빼내야, 출간의 억압에서 빠져나와야 나는 '뭄바이 관종 여우'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내가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하루에 한 페이지씩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출간이라는 목표를 지우고, '오늘도 한 페이지'라는 목표를 새로 적어 넣었었다. 이것이 나의 초심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나는 무엇이든 쓸 수 있게 되는 사람이다. 초심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나의 글쓰기에 해로운 것이다. 글을 쓰다 급속도로 피곤해지는 이 글병은 내 글쓰기 습관을 그만하게 하려고 미친듯이 공격하는 징그럽고 악독한 괴물이다. 나는 초심이라는 검을 붙들고 이 괴물의 습격과 싸워야만 한다.
다시 목표를 마음에 새긴다.
오늘도 한 페이지. 나는 내가 내는 목소리를 듣고 나의 글을 쓰는 것이 목표다. 내가 내 글을 억압하지 않도록 조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