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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Feb 14. 2021

발렌타인 데이를 저주했던 밤

한국과 조금 다른 미국 발렌타인데이

남자들이 줄을 서는 밸런타인데이 미국 마트 풍경


어제 (2월 12일) 설날 느낌을 내 보려고 떡을 사러 나온 김에 장도 보려고 마트에 들렀다가, 사람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마트 한가운데 풍선과 꽃, 초콜릿이 한 무더기 있는 것을 보고, 밸런타인데이가 코앞에 다가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진 1
사진 2


사진 3

사진 1, 2, 3 출처: https://apnews.com/article/valentines-day-united-states-coronavirus-pandemic-restaurants-d2f8f4aee7b351bc213f59cd04e6a6db


밸런타인데이 무렵에 마트에 장 보러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밸런타인 데이 당일 아침에는, 새벽부터 남자들이 꽃을 사려고 줄을 서 있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다. 여자들 중 꽃이나 초콜릿을 사고 있는 사람은 한국계나 중국 혹은 일본계로 보이는 동북아시아계 여자들 뿐이다. 동북아시아 쪽은 확실히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정착된 듯하다. 반면, 미국은 남자가 여자에게 꽃이나 초콜릿을 주고 음식을 해서 대접하며 데이트하는 날이라는 의미가 큰 것 같다. 우리 동네만 해도, 밸런타인데이 오후엔, 퇴근길에 아내 혹은 애인에게 줄 꽃을 사서, 장 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남자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예전에 실수로 밸런타인데이에, 길을 잘못 들어 우범 지역에 운전해서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길에서 마주치면 좀 무서울 것 같은 검은 후드를 푹 둘러쓴 음산한 느낌의 남자들이 손에 꽃바구니와 하트 풍선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신선하고 재밌었던 기억이 있다.


전 국민이 즐기는 밸런타인데이


또 한 가지 차이는, 한국은 밸런타인데이를 중요시하는 연령층이 한정되어 있는 반면, 미국은 밸런타인데이가 한국의 '단오' 정도 느낌으로 전연령층이 함께 하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벤트 같은 느낌이다. 오늘 새 대통령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직접 만든 밸런타인 기념 하트 작품들을 백악관 앞에 전시하였다.


사진 4
사진 5

사진 4, 5 출처: https://slate.com/human-interest/2021/02/valentines-day-hearts-jill-biden-white-house.html


발렌타인 데이를 저주했던 밤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유아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반 아이들 모두에게 보낼 밸런타인데이 카드나 구디백을 준비해 오라고 하는 미국 학교가 대부분이라, 학부모 입장에선 귀찮아 죽는 날이다. 밸런타인데이 따위에 관심 1도 없는 남아 둘을 키우면서,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할 만한 캐릭터가 그려진 밸런타인데이 카트 한 세트를 찾아 - 이 과정이 너무 어려움 - 사서,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서 초콜릿을 하나하나 붙여서 준비하느라, 밸런타인 전날 밤늦게까지 작업하며 밸런타인 데이를 저주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이들을 키우지 않아도, 직장 분위기에 따라, 여초 직장은 서로 밸런타인데이 카드나 초콜릿을 주고받는 편이다. 특히 도서관이나 학교에 근무할 때,  밸런타인데이를 포함해서, 이런저런 데이, 이벤트에 같이 근무하는 직원 40-50명 분의 카드를 종종 만들어야 했던 일이, 처음에 적응하기까지 고역이었던 기억이 있다. 


엔지니어링 연구원으로 남초 직장에 근무할 때 딱 하나 좋았던 건, 각자 알아서 자신의 가족이나 애인을 위해 조용히 준비할 뿐, 직장 전체가 그런 이벤트를 챙기는 분위기가 아닌 게 마음에 들었다. 단, 스포츠 시즌에 스포츠 이벤트로 대동단결 하는 편.

 


밸런타인데이를 즐겁게 보내는 소소한 투자


글을 써 놓고 보니, 확실히 나는 이런 세상 시끄러운 날들이 좀 귀찮은 것 같다. 그래도 이런 날 아무것도 안 하고 넘어가며 이런 날들에 대해 불평불만하는 마음을 쌓는 것보다 - 내가 싫어한다고 없어질 날이 아니므로 -, 나름의 방법을 찾아, 즐겁게 하루를 보낼 기회로 삼는 것이 낫다는 쪽으로 마음먹었다. 한동안 어린애들을 키우면서는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을 찾아와야 하는 초콜릿 담당이었는데, 올해는 함께 마트에 나갔던 김에 온 가족이 나눠 먹을 초콜릿을 함께 골랐다. 이 지역 로컬 제품이라고 무더기로 쌓아놓고 팔 길래, 속는 셈 치고 사 보았다. 그리 달가울 게 없는 날들,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날들도, 소소한 투자로 재밌게 즐겁게 보낼 기회로 만들어 내는 나를, 또 칭찬해 줄 수밖에 없다.


가족과 함께 먹으려고 사다 둔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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